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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주지 선해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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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계삼소 - 정영 2012년 09월 367호

해인사 일주문에 들며 주련을 살핀다. ‘역천겁이불고歷千劫而不古, 긍만세이장금 亘萬歲而長今’ 천겁을 지나도 옛날이 아니오, 만세를 뻗쳐도 항상 오늘이란 말씀이다. 무더위에 모든 게 멈춘 듯한 해인사의 오후, 이제 주지로 오신지 한 달여쯤 된 선해 스님이 고요한 선열당에 앉아 말씀하신다.
“천겁이 지나도 만겁이 지나도 해인사는 그대로 잘 있습니다. 대중들은 공부 잘 하고 있고 선열당도 그대로 있어요. 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스님은 20여 년 전에 해인사에서 큰 법당의 부처님을 모시는 의전 부장 소임을 보며 선열당 한켠에서 11년간 살았다. 법전 스님이 주지를 하실 때부터 성법 스님, 보광 스님, 지관 스님, 세민 스님이 주지를 하시는 동안 스님이 의전 소임을 보았다. 그러고는 떠났다가 11년 만에 다시 이 선열당에 주지로 돌아왔다.
“전생에 해인사 중이었던가 봅니다. 전생에 해인사에 빚을 졌는지, 빚 갚으러 온 것 같아요.”
스님은 해인사에 의전 소임을 보러 들어올 때부터 새벽 세 시 도량석은 꼭 하겠다는 사명감을 갖고 들어왔다. 11년 동안 외부에 머물러야 할 때를 제외하곤 꼭 도량석을 했다. 그렇게 신심을 낼 수 있었던 건 방장스님께서 새벽 세 시도 되기 전에 먼저 법당에서 108 참회를 하고 계셨기 때문이다. 방장스님을 모시고 출타를 했을 때도 뵈면 방장스님은 외부 호텔에서 묵는 날에도 새벽에 동쪽을 향해서든 해인사를 향해서든 꼭 108 참회를 하셨다. 방장스님의 그 모습은 선해 스님이 지금껏 신심을 잃지 않고 살게 하는 본보기였다.
선해 스님이 해인사의 주지로 임명을 받고 인사를 드리자 방장스님께선 한 마디 당부를 하셨다. 그동안 전임 주지들이 총림의 모습을 일신하기 위해 많은 건물 불사를 했으니 이제는 인재 불사와 대중의 수행 환경을 지키는 데에 전력하라는 말씀이었다. 그 뜻을 첫째로 따르겠다는 생각이다.
“무너진 조계종의 쇄신을 위해서는 해인사가 바로 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절실합니다. 선원과 승가대학과 율원의 3원 체제를 공고히 해야지요.”
스님은 성철 스님이 남기신 대중 생활의 지침인 삼단유시를 말씀하신다. 첫째, 지계청정持戒淸淨 청정한 계행을 지켜라. 둘째, 화합애경和合愛敬 서로 사랑하고 공경해서 화합하라. 셋째, 이익중생利益衆生 부처님 가르침대로 모든 중생을 이롭게 하라. 그 말씀을 받들어서 화합되는 승가의 모습을 보여주겠단다.
“해인 총림은 여느 산중과 달리 여러 문중이 모여서 살고 있어요. 선원, 강원, 율원 외에도 후원에서 수행하시는 노덕스님들도 많이 계십니다. 계속해서 이런 모양새가 유지되는 것이 진정한 총림의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해요. 화합하면서 가야지요.”
선해 스님은 역대 주지 중에서 가장 많은 살림 비용을 물려받으셨다. 어찌 살림을 이끌어 가실지 여쭙는다.
“전 주지 스님과 소임자들께서 살림을 아주 잘 사셔서 그걸 저한테 물려주셨어요. 그래서 경제적 어려움 없이 방장스님이 말씀하신 대로 인재 불사와 수행 환경을 지키는 데에 전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복이 많습니다.”
스님은 이것이 11년간 대적광전의 부처님을 모신 공덕이 아닐까 하신다. 또한 영암 노스님 덕분이 아닌가 하신다. 해인사가 가장 어려웠을 때 해인사를 바로잡아 주신 게 바로 영암 스님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부족한 사람인데 다 부처님과 조상님의 은덕이지요. 그리고 앞으로의 길에 있어서는 대중의 힘을 믿고 주지로 왔습니다.”
스님은 인수인계를 받고 이제야 여유를 조금 찾았다며 멀리 마당을 한번 보신다. 그것이 낯설지 않다. 이 선열당에 오랜 인연이 있으니 스님도 보는 이도 편안한 것이리라. 전생의 인연까지 더하니 이토록 편안할 수가 없다.
“열일곱 살에 충청도에서 해인사까지 혼자 왔어요. 무슨 마음이었는지…. 가야산 계곡을 따라서 올라와 돌다리를 건너서 일주문 앞에 섰는데, 꿈에 봤던 곳이야. 여기가 인연 터구나 싶었지요.”
속가의 아버지도 어머니도 형제가 없으셔서 참 고독하게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니 인생이 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고독하게 살았는데 다시 이 고독한 수행 터에 온 거예요.”
그렇게 행자 생활은 시작되었고 그 고된 행자 생활이 그저 좋았다. 갱두 소임을 보며 초발심자경문을 외었다. 그리고 스님은 해인사에서, 마치 전생에 그랬던 것처럼 염불을 외었다.
“내가 염불을 하면 대중들이 참 좋아했어요. 행자 때 배운 것 밖에 없는데. 내가 염불을 하고 종성을 하면 신도들이 환희심이 난다며 좋아했지요.”
스님이 뒷방에서 경을 읽으면 신도들이든 스님들이든 걸음을 멈춰 듣다가 가곤 했다. 그러다보니 주지스님이 네 번 바뀌는 동안 의전 소임을 도맡아 했다.
“저는 어느 순간에든 염불을 하면 힘이 솟아요. 전생부터 해오던 것인가 봅니다.”
스님은 해인사에서 강원을 졸업하고 몇 철 선방을 다니다가 부산 사리암에서 포교를 했다. 그리고 11년간 해인사에 살다가 다 쓰러져 가는 용추사로 갔다. 비가 줄줄 세는 작은 집 두 채가 있는 절이었다. 스님은 10년 넘게 그곳에 살면서 32억 불사를 했다. 그러고는 방장스님의 부름을 받고 해인사로 왔다. 이제부터 또 해야 할 일들이 많다.
“우선 내년에 제2회 해인국제비엔날레를 개최하는 데에 힘을 쏟아야지요. 한국 불교 대중화와 해인사의 세계화를 위한 일이니만큼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천도법회를 잘 이어가야지요.”
스님은 인재 불사를 위한 장학금을 지급하는 것은 물론 봉사단의 활동에도 직원들의 처우 개선에도 힘쓰고 있다. 그리고 지역민들과의 화합을 위해 해인사 포교당을 활성화 시키는 것에 힘을 기울일 생각이란다. 그런 스님께 포교의 방향을 여쭙는다.
“스님들이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포교입니다. 포교를 아무리 잘해놓아도 잘못된 사건 하나가 크게 보여 지면 오래도록 세운 게 한 순간에 무너져 버립니다.”
기본이 갖춰진 불교를 말씀하신다. 기본이 안 된 수행자가 어찌 중생의 행보를 가르칠 수 있는가 하는 말씀이다. 그런 수행자를 어느 중생이 뒤따라오겠나 하는 말씀이다. 스님이 벽에 걸린 붓글씨를 가리키신다. ‘진아眞我’, 스님의 좌우명이라 어딜 가든 들고 가는 글씨란다.
“나를 바로 보지 못 하고 어디 가서 나를 찾겠어요. 나를 모르고 어찌 남을 제도하겠어요. 원효 스님 시 중에 이런 내용이 있어요. 눈 덮인 산을 걸어갈 때 어지러이 걷지 마라. 뒤에 오는 사람이 따른다. 스님들부터 잘 사는 모습을 보여줘야 해요. 우리 해인 대중들은 지금도 열심히 용맹정진하고 있습니다.”
해인사에선 성철 스님의 청규를 이어서 가풍을 단 한 번도 깨지 않고 7일 밤낮 용맹정진을 하고 있다. 선해 스님은 내일 용맹정진하는 스님들을 응원하러 가신단다. 스님은 어디에 머물든 늘 마음에 품고 있다는 부처님 말씀을 꺼내놓으신다.
“마음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와 같은 것/화가의 마음대로 온갖 것을 다 그리듯/인간의 몸도 생각도 마음이 만들며/우주의 삼라만상 그 무엇이든/모두가 내 마음이 만든 것이다.”
스님은 이곳에서 회향 불사를 멋지게 하겠다는 원을 세웠다. 대중들의 힘을 믿고 해인사 주지로 온 만큼 회향하겠다는 생각이다.
“변방에서 조용히 포교하며 살아도 될 사람이 무슨 욕심이 있겠어요. 임기 동안 무탈하게 살다 가는 것이 원이지요.”
그러면서 스님은 말씀하신다. 부모 곁을 떠나서 절에서만 살았으니 사회를 참 모른다고, 그러니 살림이 가난해질 지도 모르겠다며 웃으신다. 그러더니 절에 처음 와서 읽은 시인데 늘 상기하고 있다면서 나긋나긋 읊어주신다.
“부모 형제 따뜻한 정 집에 두고 왔어요. 이름도 나이도 집에 두고 왔어요. 추억도 우정도 집에 두고 왔어요. 입던 옷 쓰던 물건 집에 두고 왔어요. 찾지 않는 거래요. 집에 두고 온 것은….
시의 여운이 감도는 내내 스님은 또 한번 마당을 멀찍이 내다보신다. 청춘도 아닌데 무얼 욕심내겠냐는 조용한 말씀이 시 뒤에 덧붙는다. 두고 왔으니 찾을 것도 없고 두고 갈 것도 없는 게 인생이니 욕심낼 것 또한 무엇 있겠냐는 그 뜻이 단출한 선열당에 조용히 감돈다. 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우리 도반들이 제게 그래요. 선해야, 넌 앞을 봐도 중이고 엎어놔도 중이다. 너는 항상 중이다. 그 말이 나를 더 잘 살게 합니다.”
열일곱 살 소년이 충청도에서 해인사까지 부단히 걸어왔던 것처럼 지금껏 부단히 수행자의 길을 걸어오신 선해 스님. 스님은 당신의 자리가 어느 곳에 있든 상관없이, 어제와 별 다를 것 없이 또 내일도 부단히 걸어가실 모양이다. 이리 저리 걸음을 옮기시는 품새가 권위의 옷은 입은 적도 없다는 듯 단단하고 날래시다. 전생에 해인사에 진 빚을 갚으려고 이생에 일하러 오신 게 맞긴 맞는 모양이다. 어느새 스님은 또 문 밖으로 훌쩍 사라지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