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보광명전第二會 普光明殿
문수가 회주가 되어 십신법문十信法門을 설하고 양족륜광兩足輪光으로 방광하시고 정定에 들지 않았다.
아직 신信에 들지 못했기때문이다. 이 보광명전에서 6품을 설하는데, 믿음 신信도리의 출발점이며 출발은 땅에대고 서는것이어서, 믿음 신信의 설에는 법계法界의 대지를 밟는 발아래 족하足下의 상륜相輪으로 부터 방광을 한다.
여래명호품제7如來名號品第七
보리장에서 등정각等正覺을 이룬 몸과 여래명호의 광협廣狹과 지혜로 중생 교화함을 밝히고, 불佛, 락樂, 과果, 명名을 들어서 신해信解를 발하게 하고 중생들로 하여금 자신의 근본무명이 그대로 여래의 근본지根本智임을 깨닫게 하여 항상 성불의 신력信力을 이루게 한다. 인행에 여래십호를 갖추어야 여래가 될 수 있음을 보인 곳이다. 여래를 성정각成正覺이라고한 것은 시방에 모든 부처님들이 정각해서 여래如來, 응공應供, 정변지正遍知, 명행족明行足, 선서善近, 세간해世間解, 무상사無上士, 조어장부調御丈夫, 천인사天人師, 불세존佛世尊을 구족하고 십호의 대지광명大智光明으로 모든 법과 모든 중생을 비추기 때문에 비로자나인 것이다.
각수기류위현신통各隨基類爲現神通
각각 그 류를 따라서 신통을 나타낸다.
마갈제국摩竭提國 아란야법보제장阿蘭若法菩提場에서 정각을 이루시고 보광명전에서 연화장 사자좌에 앉으셔서 여러가지 신통으로 중생을 제도하신 부분이다.
대중문법大重問法
“그 때 보살들이 이런 생각을 하였다. 만일에 세존께서 우리들을 애민이 여기사 우리들이 좋아함을 따라서 모든 보살의 십주十住, 십행十行, 십회향十廻向, 십지十地, 십장十藏, 십원十願, 십정十定, 십통十通, 십정十頂등을 우리들을 위해서 말씀해 주옵소서”라고 청하자, 사종불찰四種佛刹(佛住佛刹. 莊嚴佛法性佛刹, 淸淨佛所說佛刹, 體性佛威德佛刹)과 32가지 물음에 답을 하는데 부처님의 과果를 들어 신信을 보이고 모두가 본래 부처인 것을 믿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보리장과 보광명전이 다르지 않고 법보이체法報二體의 성상性相이 하나임을 밝혀서 인과가 본래 다름이 없음을 밝히고 십지十智의 두루두루 자재함을 찬탄하고 있다.
계내시방界內十方
그 때 부처님이 보살들의 생각을 아시고 각각 종류를 따라서 신통으로 시방불보살을 나타내는데,
➀동방 - 부동지불不動智佛 (육수보살이었으며) ➁남방 - 무애지불無碍智佛 (각수보살이었으며)
➂서방 - 멸암지불滅暗智佛 (재수보살이었으며) ➃북방 - 위의지불威儀智佛 (보수보살이었으며)
➄동북방 - 명상지불明相智佛 (공덕수보살이었으며) ➅동남방 - 구경지불究竟智佛 (목수보살이었으며)
➆서남방 - 최승지불最勝智佛 (정진수보살이었으며) ➇서북방 - 자재지불自在智佛 (법수보살이었으며)
➈하방 - 범지불梵智佛 (지수보살이었으며) ➉상방 - 관찰지불觀察智佛 (현수보살이었으며)에 티끌수
세계를 지나서 한 세계이며, 열세계의 티끌수 세계 보살들과 함께 부처님께 공양하고 연화장사 자좌에 앉았다. 즉 불국토와 부처의 머무심과 장엄, 범성, 세계청정, 설법축현, 세계성취, 아뇩다라삼약삼보리등이 불가사의 함을 말하고, 각 세계마다 백만 억 가지가지 명호가 있어 중생들로 하여금 제각기 알고 보게 한다.
법왕문수보살法王文殊菩薩
문수보살이 설법주로 여러 보살에 둘러쌓여 있다.
여래께서 미간에서 방광하여 문수의 이마에 대고 부처님 출현의 과법果法을 묻게 하시고, 입으로 광명을 놓아 보현의 입에 닿게 하여 부처님의 과덕果德을 설하게 한다. 비로소 인과를 확실하게 하여 제불의 명호를 설명하게 하고 있다.
문수가 대중을 관하고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법을 연설하자 여래께서 사바세계에 갖가지 형상을 나타냄을 설하고 사제법문을 설해서 신행信行을 두루 하고, 보리菩提에 대해서 의심을 풀어 주는데, 역시 보현행원의 사상에서 설해짐을 알 수 있다.
사성제품제8四聖諦品第八
앞 여래명호품에서는 여래의 신업身業을 통하여 방향따라 명호가 각각 다름을 말했고, 여기서는 어업語業을 알게 하는데, 방향을 따라 법문을 해도 사성제를 여의지 아니한 법문임을 보여준 품이다.
제諦는 진실의 뜻으로 여래께서 十世界마다 4종의 진실을 설하여, 중생들에게 믿음과 이해를 돕게한 품이다. 어째서 오직 이 4가지로만 말했는가? 이 사성제가 일체세간의 고집苦集과 출세간의 멸도滅道를 여의지 않고있기 때문이다. 삼승三乘의 입장에서는 고苦를 끊고 집集을 멸滅하고 도道를 닦고 열반을 증득하여 정토에 태어나는 것을 본위로 하지만, 여기서는 고성苦性이 그대로 진리라. 기뻐하고 싫어하는 것이 없어서 타방불찰他方佛刹에 가고 오는 것이 따로 없는 것를 법문하고 있다.
이 사제를 설한 것 역시, 보리심을 발하고 즐겁게 믿을 수 있게 하는 방편이다. 같은 사제법도 대소의 근기에 따라 이해가 다르기 때문에, 시방세계 방위를 따라서 문수보살은 사제법을 설하고 있다. 그래서 이 품에서는 자기가 믿고 정진해가는 소신所信의 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일체중생이 본래 똑같은 부동지불不動智佛인데, 어찌 염정染淨에 걸리게 되는가. 그것은 메아리가 소리를 따르는 이치를 잘 모르고, 물이 파도치는 이치를 모른 때문이라고 법문한다. 물속에서 파도를 보는 것은 식識이다. 식識 가운데서도 파도와 물이 따로가 아닌데, 범부는 둘로 본다는 가르침이다. 파도에도 물에도 속지 않는 자는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법문이다. 여기서 처음 부동지불을 나타냄은 근본지체根本智體이기 때문이다.
문수를 처음 든 것은 묘혜妙慧, 묘한 지혜가 문수로 부터오기 때문이다. 대중이 연화좌에 앉은 것은 법계로서 좌체座體를 하여 믿음 신信을 이룸을 말하고 있다. 천만억 부처님이 내 앞에 있어도 믿음이 없이는 믿지도 보지도 못한다는 법문을 들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