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산의 깊은 곳에서 흘러나와 계곡을 만들면서 흐르는 투명한 물소리와, 인고의 세월을 견디고 나온 매미의 여름 노래가 내 몸 안에 가득 고일 즈음에 일주문이 나타나고, 완만하고 오목하게 꺼진 경사진 오르막길을 느릿느릿 걷다보면 봉황문이 나타난다.
다시 급경사의 계단을 오르면 해탈문에 이르게 되는데, 바로 앞에는 구광루가 2층으로 서 있다. 나의 그리움이 시작되는 곳은 바로 여기서 부터다
구광루 아래를 통해 대적광전으로 올라가던 길이 지금은 구광루를 우회하여 오르게 되어 있는데, 나의 마음은 몸과는 다르게 구광루 아래를 통해 오르게 된다
구광루 아래를 통과하는 누하 진입을 통해야만 정중탑이라고 불리는 삼층석탑이 대적광전의 중앙과 일치되어 보이게 되는데, 현재처럼 구광루를 우회하여 대적광전 영역에 이르면
정중탑의 위치는 대적광전의 중앙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누하(樓下) 진입이 아닌, 누 우회(樓 迂回) 진입이 만든 정중탑과 대적광전의 기형적인 시각구조에 적응하지 못한 나의 마음은 구광루를 지날 때면 마음속의 기억을 따라서 누하 진입을 고집하곤 한다.
몸과 마음이 분리되어 구광루를 지나, 정중탑 앞에서 다시 하나가 되어 합장을 하고 대적광전에 들어가 삼배를 한 후, 장경각에 이른다.
장경각 안마당에서 느끼는 가야산의 흐름과 소박하고 평범한 판각 속에 봉안된 부처님의 가르침을 마음속에 새기다 보면 오래전 몸담았던 근원적인 고향에 다다른 느낌이 든다.
어릴 적 고향마을 앞에 정자와 소나무 숲이 있었다.
오래된 나무들은 마을 어귀의 허전한 부분을 보완해주면서 우리들의 놀이터로 애용되었던 곳이었다.
고등학교를 다니면서부터 고향은 가끔 가는 곳이 되었다. 갈 때 마다 정자와 소나무들은 지난 시간들을 나에게 들려주던 그리운 곳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소나무들이 하나, 둘 사라지더니, 급기야는 한그루만 외롭게 서서 정자와 마주보게 되었다.
마치 자식들을 모두 외지로 떠나보낸 부모님이 서로 의지하면서 자식들을 기다리듯이....
그런데, 마지막 남은 소나무마저 어느 날 사라져 버렸다.
논두렁에 불을 피우던 마을 어르신의 실수로 모두 타버렸다는 것이다.
한동안 그렇게 시커멓게 탄 채로 서 있던 소나무는, 비바람과 눈보라를 견디면서 마지막 이야기들을 힘겹게 전해주다가 정자만 외롭게 남겨둔 채 흙으로 돌아가 버렸다.
이젠, 심상의 이미지가 되어 버린 고향 마을의 소나무!
지금도 가끔 고향에 갈 때면, 그곳으로 가서 그 시절의 소나무를 가슴에 품고 한참을 앉아 있다가 오곤 한다.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는 소나무가 있던 풍경과 그 시절을 생각하면서...
태어나고 자란 곳만이 아니라, 나의 마음이 찾아가서 쉴 수 있는 곳 또한 고향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모습이 희미해 질 때 고향을 찾게 되는 것 같은데, 그 곳에 가서 지난 세월들과 만나 이야기를 하다보면 희미해지던 모습은 어느새 생기를 되찾고, 그로인해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곤 하는 곳이 고향인 것 같다
그러한 고향들이 자연스럽게 변해가는 것 이 아니라, 사람들에 의해서 무리하게 인위적으로 사라지고 변해 갈 때, 고향은 마음에서 멀어지고 나의 모습 또한 어떤 지점으로부터 멀어지리라 생각된다.
시간 속에 모든 것이 통합될 때 고향은 진정한 고향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