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이 작을 것이라 했지만 들어선 방은 마치 요술 상자 같은 신비의 공간이였다. 작지만 반둣하고 정갈한 방에 발을 드려 놓는 순간 그 속에 마치 우주를 들여다 놓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불현듯 들었다.방 안에는 아무런 장식이나 가구가 없는데 제일 먼저 눈에 띄는게 창문 아래 벽에 박흰 못 세 개였다. 그리고 벽장속에는 나붓이 개어져 있는 홑 이부자리와 베게가 멀리서 온 손님을 반기고 있었다. 참으로 오랫동안 그리워만 해 왔던 고향의 정든 소품들이다. 마음은 부풀어지고 마냥 날라 갈듯이 가벼워 지면서 동시에 조용한 평온이 깃들었다. 실로 나그네가 하루 잠을 청하는데 그 이상의 무엇이 더 필요할 것인가 ? 최고의 영접이자 누릴 수 있는 최대의 사치였다. 나물 먹고 팔 베고 누웠으니 세상에 부러운 것이 없도다 라는 게 바로 이것이려니.
나란히 기다리고 있는 못 3개에 지친 영혼의 옷들을 하나씩 걸어 본다. 참회와 감사 그리고 발원이라는 옷들을 ....승방의 겸허함 속에서 무소유의 가르침을 전율하게 된다.
달빛에 젖은 덧문과 창호지며 가리막으로 내려진 대나무 발을 보노라니 까맣게 잊고 살았던 시골 외할머니 집 의 문풍지가 바람에 스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 아득한 어린 시절의추억이 도래질 한다. 댓돌위에 가지런히 올려진 신발을 보니 벗어논 신발 속에 자신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는 어느 스님의 말씀이 무섭게 가슴에 와 닿는다
새벽 예불을 꼭 하려했던 의지와는 정반대로 피곤이 엄습하여 일어 나려던 바로 그 시각 쯤에 잠이 들고 말았다. 멀리서 들리는 경 읽는 소리와 타종의 울림을 마치 자장가인양 들으면서 이곳이 어디며 나는 무엇인가 하는 풀수 없는 긴 실타래를 안고서 꿈길로 들어섰다.
그게 꿈인지 나의 이성으로 사고하는 것인지가 도무지 혼미했다. 아무튼 그 시간 까지 기다리다 바로 그 직전에 꼬박 잠이 들어서 국내 사찰 중에 보기드문 의식이라는 해인사의 새벽 예불에 동참하지 못했던 것은 두고두고 후회스럽다.
능선과 곡선
아침에 일어 나서 문 밖을 보니 절경이 눈 앞에 놓여 있다.
동양의 산수화는 화가의 상상력으로 그린 그림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산천을 그대로 옮겨 놓은 사진이자 거울이다.
아침 이슬이 채 가시지 않은 산들이 한폭의 수묵화처럼 축축하게 펼쳐져 있다.
알프스 자락에서 자고 난 다음 날 아침 눈 앞에 펼쳐져 있던 그 웅장함에 감탄했던 그런 감동이 아니라 우리네 산천은 부드러운 귓속말 같기도 하고 훈훈한 임깁과도 같은 그런 정감으로 사람의 가슴을 한없이 적신다.
이제야 나의 고향에 왔음을 직감하게 한다.
벌집 같은 아파트의 아우성과 밀림을 이루는 고층 빌딩밖에 보이지 않는 서울이라는 괴물에서 도저히 찾을 수 없던 고향의 안온함을 드디어 느끼게 해 준다.
고향의 품이자 어머니의 앞 치마 자락에 안기는 것 같은푸근함이다.
그런 밤과 이런 아침을 선물한 지인과 스님께 감사드립니다.
전생에 무슨 인연으로 제가 이곳에서 이런 큰 대접을 받을 수 있습니까?
나무아미타불.
설친 잠을 깨우려 기지캐를 켜면서 해인사 경내를 한 바퀴 돌았다.
늘어져 있는 지붕의 추녀를 쳐다보면서 그 완곡한 곡선에 또 한번 반하다. 중국 이나 일본, 아니 그 어느 곳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편안하고 자연스런 휘어짐. 그건 정말 우리 건축만이 가지고 있는 보석이다. 심미의 극치라고 하겠다.
독일에 살면서 늘 그리운 것이 우리의 한옥과 그 곡선이 만드는 아늑함이였다.
유럽 교회의 건축 양식은 거의 압도적이다.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그 모든 것을 활용하였다고 보아도 좋을 것 같다. 그러나 우리 한옥이나 사찰의 곡선미가 주는 그러한 아름다움은 부재하다.
그래서 향수라는 피안에서는 그 배흘림의 늘어진 곡선이 늘 나를 부르고 있었다.
가야산의 크고 작은 능선들이 마치 그대로 경내로 옮겨진 양 크고 작은 법당 지붕들로 어우러진 곡선들은 자연과 건물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저 높은 곳에 있는 신에게 오르고자 하는 소망과 마음 속에 있는 부처를 만나고자 하는 깨달음이라는 두가지 길, 그것이 기독교와 불교 그리고 교회와 사찰 건물이 주는 차이다.
사찰에는 경건함은 있으나 위압감은 없다. 인자한 부처의 얼굴부터 절의 풍경은 참으로 인간적이고 세속적이기 까지 해 보인다. 음식들을 올려 놓은 제단은 마치 혼례나 제사를 올리는 인간 세상의 모습들과 별로 다를바가 없어 보인다. 그래서 또 나는 고향 집의 나즈막한 울타리를 들어서는 착각을 한다.
서울이라는 괴물
해외에 오래 살다가 서울에 도착하면 맨 먼저 느끼는 것이 국적 불명의 도시라는 점이다. 화려한 스카이 라인,고층 빌딩들의 숲. 찬란히 빛나는 전광판들. 그야말로 세계화 되어버린 대 도시들은 대동소이한 모습이다. 고향이라는 것은 자신만이 간직한 유일한 어떤 한 장소나 정경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이다. 돌이킬 수 없는 지난 시절 어느 한 시점에 대한 연민이다. 아니 어쩌면 부질없은 갈구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은 이미 나에게 무엇 하나 고향적인 것을 감지하지 못하게 한다.
오랜 타향 살이를 하는 사람에게는 발전상을 감탄하기에 앞서 그저 서운하고 실망적일 뿐이다.
밤낮으로 거리를 메꾸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답답하고 좁은주거 공간들 , 앞산을 찾아 볼 수 없는 높은 건물들의 오만함, 그 뿐아니라 도시 원래의 풍광을 고려하는심미안은 아예 폐기한 채 하나 같이미운 네모 상자들을 높게 높게만 쌓고 있다. 그런 서울에서의 실망을 나는 해인사에서 만회 하게 된 셈이다.
사찰의 아름다운 건물들과 불교라는 우리들의 본성적인 종교를 다시 만나고 어머니 픔 같은 안온한 산들이 에워싼 그 속에 오랫동안 잊어버린, 아니, 서울이란 괴물이 상실시킨 본연의 고향을 찾은 것이다. 해인사에 와서 나는 비로서 잊여버렸던 고향의 향기를 되찾게 되었다.
인간세상의 향기
이번 체류 기간에 꼭 한번 해인사를 가리라고 다짐을 한 것은 관광이 목적이 아니라 실상 두가지 개인적인 연유에서 출발하였다.
독일에서 알고 지내는 한 기러기 아빠가 실직을 하여 급기야 귀국하게 되자 무작정 찾은 곳이 해인사라고 하였다. 무조건 3000배를 올렸다 한다. 그리고는 기적이 이루어졌다. 취직도 되고 다시 회사를 대표하여 독일로 돌아 오게 되었다. 그가 3000배를 올렸던 절박한 심경을 헤아리고 싶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 해인사를 꼭 찾고 싶었던 간곡한 이유는 몇 년전에 어린 자식을 먼저 보내고 망연자실한 어느 어머니의 비통함을 바로 이 해인사에서 거두어 주셨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뒤늦게나마 그 눈물의 흔적을 찾아서 닦아 주고 감사의 합장을 드리고 싶은 마음에서 였다.
40년 전 기억 속의 해인사는 팔만대장경이라는 육중한 역사의 무게를 안고 있는 박물관적 사찰이였을 뿐인데 이제 이렇게 가까운 이웃들의 아프고 소중한 이야기들이 살아 숨쉬는 인간 향기가 풋풋이 나는 현재형이 되어서 고향을 그리워 하던 한 나그네를 환히 맞이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