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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계牧谿 <나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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續 선과 그림이야기 - 김현정 2012년 06월 364호

Muxi(牧谿), <나한도(羅漢圖)>, 남송(13세기),
비단에 수묵, 106.1×52.4㎝, 東京都 靜嘉堂文庫美術館 소장.

전에는 너무 고리타분하게 생각되어 읽기를 미뤄왔던 『논어(論語)』를 요즘 읽고 있다. 내 안목으로는 논어는 깊은 철학적 사유를 추구한다기 보다는 사람 사이에서 기본적으로 갖추어야하는 관계와 관계를 아름답게 만들기 위한 자신의 노력에 대한 것을 강조한 글이다. 그러니 한 글자 한 글자에 매이기보다는 그 대목마다 언급된 내용과 내 생활 태도를 비교하여 자신을 스스로 돌아보게 하는 매력있는 글이다. 이런 논어의 글이 나에게 매력적이었던 적은 별루 없었다. 물론 지금도 젊지만(!) 지금보다 더 젊은 얼마 전까지 내 취향은 온 우주에 걸림이 없고 세상살이에 허덕이지 않는 노자나 장자의 자유분방함에 더욱 매료되어 있었다. 공맹(孔孟)왈 모름직이 군자란 이렇게 해야 하고 저렇게 하지 말아야한다는 일관된 가르침이라는 것이 얼마나 재미없는 일인가 하면서 말이다. 그러던 내가 논어를 읽으며 요즘말로 폭풍 공감을 하면서 마음을 달래고 있으니 나도 이제는 명실공이 꼰대(!)가 되었다해도 크게 변명할 말은 없다.
논어에는 공자 자신이 얼마나 공부하기를 좋아 했는가 하는 구절이 자주 눈에 띈다. 술이(述而)장에는 자기 스스로를 ‘학문을 좋아한 나머지 밥 먹는 일도 잊고, (학문을 통해 무엇인가를) 안 뒤에는 그 즐거움으로 걱정을 잊으며, 늙는 것조차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자처하고 있다. 나 역시 공부가 밥벌이 이긴 하지만 않지만 밥 먹는 일도 잊고 걱정을 날려버릴 만큼이라고는 절대 말하지 못하겠다. 이 글을 읽으면서 공부를 좋아한다면 이 정도는 해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난 그냥 시늉만 했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 공자의 공부는 글자에 담겨있는 공부만 이야기 한 것은 아니고 원만하고 완성된 인격의 도야가 궁극적인 목표였다. ‘덕(德)을 좋아하기를 아름다운 미인에 당연히 끌리듯(자한(子罕))’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배불리 먹기를 바라지 아니하며 거처에 편안하기를 바라지 아니하며, 일에는 민첩하고 말을 앞세우지 아니하며 덕행이 높은 이에게 나아가 스스로 바로잡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고 한 것이다. 배불리 먹지 않고, 편한 자리를 마다하면서 열심히 수행하는 것을 강조한 것을 두고 어떻게 유, 불을 구분해서 이야기 하랴 싶다.
북송과 남송의 사대부들은 마치 노장의 그것과 같이 자연 속에 머물며 세상의 명리를 추구하지 않은 채 자유분방한 태도로 걸림 없이 사는 선사들의 수행을 동경했었다. 이는 선 수행을 통해 세속 생활의 장애와 인간적 예의를 개의치 않는 자유분방함에만 몰입해 있었던 것이지 그렇게 되기까지 그야말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치열한 수행은 고려하지 않은 셈이다 .
하지만 남송 대 목계(牧谿)가 그린 <나한도>는 삼매에 든 수행자의 경지와 치열한 수행의 모습을 보여준 그림이다. 목숨을 걸 수 있는 정도의 수행을 강조한 선불교의 모습은 당시 크게 유행하던 노장과 가장 크게 대비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림에는 배불리 먹지 못하고 거처하기에도 절대 편안하지 않을 산 속 어딘가 기암절벽 아래에서 가사 하나를 뒤집어쓰고 좌선삼매에 들어있는 나한이 주인공이다. 수행에 대단히 몰입하고 있는지 앉은 자리를 구렁이 한 마리가 똬리를 틀어 위협하고 있지만 주인공은 알지도 못하거나 혹은 개의치 않는다. 수행의 투지와 경지가 그림 전반에 잘 드러나 있는 것이다. 공부의 치열함이 이 정도는 아니어도 지금보다는 많이 분발을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그림이기도 하다.
오래 전 해인사 방장 혜암 큰스님께서는 하안거 초하루 법문 때마다 선방에 앉아 있는 신도들을 향해 ‘여기서 공부하다 죽어라, 공부하다 죽으면 내가 잘 꼬실러 줄테니(장사를 잘 치러줄테니) 아무 걱정 말고 죽도록 공부하라’고 다그치셨다. 목계의 나한도를 보면서 그때 큰 스님의 꼬장꼬장하시던 그 법문이 자꾸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