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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도들의 빈 마음이 종단을 떠받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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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해인 편집실 2012년 06월 364호

백양사 방장 수산 스님의 사십구재가 열리기 하루 전날인 4월 24일 여덟 명의 스님이 백양사 입구 호텔에서 도박을 했다. 밤을 새워 카드놀이를 하고 사십구재에 참석했다. 밤새 돈이 오가며 즐긴 시간은 열 세 시간이라고 한다. 이 장면은 고스란히 동영상에 담겨 9시뉴스를 통해 세상에 전해졌다. 보기 민망하기 이를 데 없는 장면이었다. 불자들은 이를 어쩌나 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보고 싶지 않은 장면은 신문과 잡지를 장식했다.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봉축 기자간담회를 갖는 자리에서 스님들의 도박에 대한 질문을 받은 진제 종정예하는 “중생의 습기는 참으로 무섭다. 여자, 돈, 화려함 등을 탐내고 욕심을 낸다. 스님들이 삭발염의하고 수행하고 있지만 (도박한 스님들은) 발심도 못한 사람들”이라고 질책했다. “중생의 습기에 놀아나 일시에 중생의 모습을 떨치지 못했다. 부처가 되겠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진 자만이 희로애락에 떨어지지 않는다. 습기를 쫓아 못난 짓을 한 것이다. 내가 대신 참회한다. 총무원에 관련 기구가 있으니 잘 지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종단의 최고어른인 종정예하께서 사과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총무원의 부실장스님들이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냈다. 그러나 상황은 일만만파로 커져갔다. 도박이 특정한 스님들의 행위가 아니라 종단의 고위소임자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폭로로 이어졌다. 급기야는 총무원장 자승스님이 10여 년 전 수행자로서 출입하기에 적절치 않은 룸살롱을 다녀갔다는, 업소 이름까지 거론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원로의장 종산 스님이 총무원장 자승 스님과 중앙종회 의장 보선 스님을 불러 특별기구 구성을 당부했고, 원로의원과 집행부, 중앙종회의원, 교구본사주지가 참여하는 ‘승가공동체 쇄신위원회’가 구성됐다. 자성과쇄신결사추진본부 자문위원회에서는 쇄신의 기본방향과 원칙이 제시됐다. 자문위원회는 조계종단을 일대 쇄신하여 한국불교의 미래를 새롭게 열어가기 위해 ▶종단의 출가자는 수행과 교화, 재가자는 운영과 신행을 담당하는 체계를 수립 ▶부처님의 정법사상에 입각한 올바른 불교관을 확립하여 전 종도의 의식개혁을 이루고 ▶향후 종단은 종헌정신에 입각하여 사부대중 공동체 체계를 확립하며 ▶중앙종회는 부작용을 낳는 종책모임(계파)을 해산하고 종도들 기대에 부응한 대의입법기관으로서 기능을 다하고 ▶종단은 과도기 상황에서 제정된 종헌 종법의 한계와 문제를 넘어, 율장과 청규정신을 근간으로 하는 한국불교 백년대계의 종헌종법을 완성시킬 것 등을 기본방향과 원칙으로 천명했다.

이어 5월 말에는 ‘청정성 회복과 정법 구현을 위한 사부대중 연대회의’가 출범했다. ▶종단은 범계행위 근절과 단호한 재발을 막는 쇄신책 마련을 위해 사부대중이 참여하는 진상조사 및 대책위 구성 ▶총무원, 본사주지, 종회의원, 주요사찰 소임자는 무소유정신에 입각해 기득권을 내려놓고 종단 개혁에 앞장 설 것 ▶중앙종회는 권력화, 이익집단화한 계파 즉각 해체하고 종단 개혁에 나설 것 ▶사찰재정 투명성과 체계적 집행을 위해 사찰운영위원회, 종무회의 활성화 등 제도적 장치 강화와 사부대중이 함께 운영하는 사찰공동체 방안 마련 ▶비이성적이고 무책임한 폭로와 제소, 비방행위 즉각 중단 ▶언론은 폭로자 위주의 선정적, 과장 확대 보도를 지양하고 객관적 사실에 부합한 공정보도 등을 촉구했다.

출재가, 종단기구와 재야를 망라한 쇄신을 향한 큰 흐름이 형성됐다. 도박사건으로 드러난 종단의 구태와 악습이 마침내 ‘쇄신’의 깃발을 들어 올린 것이다. 위기의식이 그만큼 크다는 것이다. 불교를 먹칠하는 오랜 관행과, 그런 관행에 젖어 전철을 되풀이하고 재생산하는 구조를 타파하고 인적 쇄신을 통해 혁신을 이루겠다는 취지의 움직임이다. 수좌들도 자괴감을 떨쳐내고 혁신을 호소했다. 총무원장의 사퇴를 처음으로 언급했다.

이런 가운데 몇 가지 사항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먼저, 도박이냐 아니냐를 두고 비판과 반박이 오가고 있다. 검찰에 고발되어 수사 중인 사안이니 머지않아 법적으로 가려질 것이다. 그러나 도박이 아니라 하더라도 수산 스님 사십구재 전날 밤새워 판돈이 오가는 카드놀이를 떳떳하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오간 돈은 어디서 나왔으며, 밤새워 즐기는 행태는 참 할 일 없는 스님들의 문화의 단면을 보여준 것이니 얼마나 빈약한가.

무엇보다 종단의 안정이 고려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 기회에 종단권력을 쥐겠다고 이리 저리 모의하고 이합집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지금 할 일은 어떻게 쇄신할 것인가에 모아져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위기에서 종단을 건져 본래면목을 드날리겠다는 애종심을 발휘할 때다. 흔쾌히 거름이 되어 꺼져가는 등불을 다시 밝히겠다는 위법망구의 마음을 다질 때다. 쇄신은 지난한 일이다. 저항이 있을 수 있으며, 쇄신을 힘차게 추진할 동력을 마련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불교의 본래면목을 회복할 청사진, 이를 만들기 위한 활발한 논의의 장을 어떻게 만들어 이끌어 갈 것인지. 그런 속에서 총무원장을 비롯한 스님들의 취를 거론해야 한다. 광범위한 지지를 받는 구심점의 형성이 지금 가장 큰 과제다.

총무원장 자승 스님은 5월 25일 중대 선언을 했다. 교구본사주지스님들과 함께 108배 참회를 하는 자리에서 “저는 재임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또한 임기에도 연연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고 했다. “종단의 책임자로 있는 동안 완성할 수 있는 것도 완성할 수 없는 것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재임을 통해 이루겠다는 것도 부질없는 욕심입니다. 자성과 쇄신이라는 든든한 기반이 조성되고 여법한 승계를 생각하면 소임의 기간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고 했다.

자승 스님은 이어 “6월 초에 수많은 관심 속에서 종단 쇄신안을 공포할 예정에 있다”면서 “종단에서 발표하는 쇄신안이 제대로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교구본사의 적극적인 동참과 실천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미 지나간 과거에 연연하는 사고방식으로는 한국불교의 미래를 열어 나갈 수 없습니다. 지금 이 고통의 시간을 미래를 향한 성장의 아픔으로 삼아 역사적 노고를 함께 이루어나가기를 기원합니다”라고 당부했다.

총무원에서 발표할 쇄신안을 기다려볼 때이다. 총무원은 실현 가능하고 실질적인 쇄신안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흔쾌히 사부대중의 도움을 구해야 한다. 총무원이 쇄신안을 내놓을 즈음이 또 한번의 고비가 될 것이다. 갑론을박할 것이고, 종권 경쟁이 불거질 가능성도 있다. 이때 진정으로 종단을 쇄신할 그룹의 역할이 요청된다. 종도들의 참여가 절실해지는 때다. 종단이 스러지는데 종권은 한낱 신기루일 뿐인 만큼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은 종도들의 빈 마음이 종단의 앞날을 떠받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