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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정류장에서의 공중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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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즈로 본 세상 - 정은진/프리랜서 포토저널리스트 2012년 06월 364호

나는 차가 없다. 뉴욕과 로스앤젤레스에서 기자생활을 했을 때에는 취재를 위해 당연히 차를 몰고 다녔지만 국내에서 취재할 때, 시내를 다닐 때에는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한다. 해외에서 사진 작업을 할 때는 운전사를 고용해서 다닐 때에도 있고, 오토바이 뒤를 타고 다닐 때도 있지만 이는 대중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은 제3세계에서의 일이고, 버스나 지하철이 있는 경우는 당연히 그걸 이용한다.
특히 버스의 경우,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두루 다니면서 이용해봤지만, 선진국 버스는 공통점이 있었다. 첫 번째는 시내라도 버스 시간표가 있었으며, 둘째는 버스가 천천히 다니고, 셋째는 버스를 탈 때 사람들이 줄을 잘 선다는 점이다. 바로 세 번째가 선진국과 개도국을 구분하는 잣대인 것 같다.
이는 전 주민이 천방지축일 것 같은 뉴욕에서도 적용됐다. 뉴욕시내버스 (MTA)의 경우, 아무 때나 오는 것 같지만 사실은 시간표가 정류장에 다 적혀있으며 별로 어기는 적이 없다. 또한 인터넷을 검색해도 버스 시간표가 있어서, 이 시간에 거의 정확히 도착, 출발한다. 또한 흥미로운 점은 같은 버스, 같은 노선이라도 급행이 있고 완행이 있다. 그러니까 노선을 좀 잘 알고 있어야하는 불편함이 있기는 하다. 어쨌든 버스 정류장에는 번호별로 표지판이 되어 있는 곳도 있어서 번호표 앞에 줄을 서 있으며, 없더라도 우르르 몰리는 일은 거의 없다. 또한 버스가 정류장 무단통과를 하는 일은 거의 없어서 해당 정류장에 정차하기로 되어있는 버스가 정류장에 서 있는 나를 두고 떠나는 일은 거의 없다. 그 노선의 그 버스는 반드시 정류장에서 사람이 있건 없건 정차한다.
이는 동양의 선진국 싱가포르에서도 그대로 적용됐다. 버스의 디자인이나 운전석 구조, 운행 스타일이 모두 유럽식인데 승객들이 거의 중국계라 좀 놀라긴 했지만, 싱가포르의 버스는 마치 파리나 런던의 버스를 타는 것 같았다. 정류장에서 손님들을 기다리고, 승객 안전을 위해 천천히 출도착하는 면, 그리고 정류장과 버스 디자인조차 유럽 스타일이었다.
버스 타는 데 있어 줄을 안 서기로 악명 높은 곳은 바로 중국이었다. 10년 전만 해도 서방세계에서 얻을 수 있는 여행 가이드북에는 북경에 가면 “아예 줄이 없다 (There\'s no queue.)”라고 표기돼 있었다.
물론 그 당시에는 북경에도 시골에는 제대로 된 버스가 아닌 밴 차량 (승합차)이 버스 노릇을 대신 했다. 언젠가 연길에서 버스를 탔던 적이 있었다. 시골동네에서 연길 시내로 가는 버스였는데, 한 겨울이었고, 유리창에는 습기가 차 있었다. 승객은 한 30명 정도 됐었다. 그런데 갑자기 운전석과 문 사이에서 한 엄마가 아이를 들고 버스 바닥에 소변을 누이는 것이었다! 중국의 아이들은 기저귀를 차지 않고 가랑이가 열린 바지를 입는다. 그래서 급한 용변을 볼 때에는 바지 밑으로 그냥 보게 하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보고 기겁했던 적이 있었다.
서방세계에는 한없이 야만스러워보였던 중국의 공중도덕 문화가 2008년 올림픽을 계기로 큰 전환점을 맞았다. 특히 올림픽을 주최했던 수도 북경에서는 버스를 최신식으로 모두 교체하는 가하면 지하철도 증축하고 택시 기사들에게 유니폼을 입히는 등 일대 개혁을 꾀했다. 또한 길거리에 가래침을 뱉는 행위도 단속, 올림픽 개최 석 달 전에는 뱉는 확률이 25%나 줄어들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북경 버스 정류장에는 제대로 된 노선표와 번호판 뿐 아니라, 교통안내요원을 두어 사람들을 거의 강제적으로 줄을 서게 만들었다. 그 전에는 버스만 오면 우르르 달려가면서 버스를 타기위해 피튀기는 경쟁을 했었지만 이제는 안내요원의 지시에 따라 줄을 서서 승차하는, 북경의 입장에 서보면 ‘진풍경’이 연출되기 시작한 것이다. 안내요원은 메가폰을 손에 들고 “문명 (文明)”이라는 말을 수없이 반복하며 승객들에게 하루에도 수백 번씩 “문명화 (civilized)” 될 것을 주입시킨다.
정류소마다 달랐지만 어떤 정류소에는 안내요원이 서너 명씩 배치된 곳도 있었다. 요원들은 이용객들 앞에서 줄을 잡고 서 있어서, 사람들이 버스가 도착하기 전 튀어나는 것을 방지하기도 했다. 올림픽 기간에는 많은 시민들이 그런 정부의 ‘문명교육’을 잘 따라주어서 외신기자들도 갑작스런 북경의 변화에 많이들 놀라워하고 기사화하기도 했다. 아마도 공산주의이자 전체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 가능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서울과 집이 있는 분당에서 버스를 타자면 너무 힘들고 속상하다. 특히 출퇴근 시간 버스정류장은 아비규환이 된다. 버스가 정류장에 아직 도달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뛰어가서 버스를 잡지 않으면 나를 두고 그만 떠날 것만 같다. 한산한 버스 정류장일수록 내가 손을 들어 탄다는 표시를 하지 않으면 그냥 지나가 버린다. 어제도 중앙 시네마 앞에서 좌석버스를 탔는 데, 서로 뛰어다니느라 부딪히는 사람도 많았다. 한번 버스가 오면 우르르 몰리고, 행동이 재빠른 사람이 먼저 탄다. 솔직한 심정으로 올림픽 전 중국을 보는 것 같았다.
우리나라의 버스 정류장 문제를 근본적으로 고칠 수는 없을까. 아무리 배차시간을 맞춰야한다고는 하지만, 너무 규칙도 없고 마구잡이이고 야만적이다. 북경에서 했던 것처럼 안내요원이라도 두고 빨랫줄로 사람들을 반강제적으로라도 줄세워놔야 바뀔까. 아니면 전면적으로 배차시간 등 버스체계에 대한 개혁이 있어야할까. 또 아니면 성질 급한 한국인의 의식구조를 바꿔야 할까. 대중교통을 항상 이용하는 사람으로서 우리의 공중도덕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