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이 주지로 머무는 송학사는 진주의 도심 한 가운데에 있다. 허나 자그마한 절 마당에 들어서니 정성스레 가꾼 나무와 꽃이 그득하여 도심의 포교원이라기보다는 지인의 집에 놀러 온 듯하다. 가벼운 햇살 아래서 초파일 등을 다는 이들도 낯선 객을 웃으며 맞으니 이곳이 절집인가 벗의 집인가 싶다.
스님이 손수 커피를 갈아서 내려 주신다. 스님이 커피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며칠 전 스승의 날에 상좌 스님이 선물해준 커피라며 내어주시니 향기롭고 다감하다. 그러니 또 이곳이 마당이 있는 찻집인가 싶다. 그러니 이 절은 부처님의 제자들이 도란도란 둘러앉아 담소 나누는 곳이라 할까 보다. 그러니 향록 스님은 이곳에서 부처님의 제자들에게 차 달여 주고 원두커피 내려주는 분이라 할까 보다. 그런데 이토록 다감한 스님이 해인사의 호법국장, 세속으로 치자면 검찰총장이시다.
“생선의 썩은 부분은 얼른 도려내야 남은 부분이라도 먹을 수 있습니다.”
스님은 모든 것에 있어 원칙주의자다. 공심으로써 누가 됐든 편견 없이 똑같은 잣대로 판단한다. 힘 있는 자라고 해서 썩은 부분을 덮어주지 않는다. 그러나 힘 없는 자는 더 배려한다. 그러다보니 스님은 호법국장 임기 4년을 꼬박 채우게 됐다.
“자비의 사찰에서 시비를 따져 징계하자는 것이 우선이 아니라 대중화합을 위한 유나 소임인 것이지요.”
스님을 마주치면 학인스님들도 무서워하는 악인 역할을 맡고 있으니 소임으로 치자면 좋을 것 없는 소임이다. 그러나 누구든 해야 할 일이니 스님은 다감할 땐 다감하게 냉철해야 할 땐 냉철하게 본분을 다한다. 지금까지 호법부라는 자체가 좋아보이진 않았구나 싶어서 스님은 그것을 탈피하기 위해 노력한다.
“원칙대로만 하면 서로가 편해요. 그러면 징계할 일도 없고 억울할 일도 없고 후에 더 큰 일이 벌어지지도 않아요. 지금까지 그렇게 살았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입니다.”
그것은 송학사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스님은 그 원칙을 지키며 도심 포교당에서 살아가면서는 불교와 세속의 담장을 낮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승과 속의 벽은 있으나 집의 담장을 없애듯 서로 가까워져야 한다는 말씀이다. 너무 멀리 있는 이의 속내는 모르는 법이니, 환자가 찾아와 어디가 아픈지 말하지 않으면 의사가 고쳐줄 수 없으니 허물없이 편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대중 불교라는 말씀이다.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는 중생과 어울려서 살아야지요.”
송학사는 밤에도 문을 닫지 않는다. 법당 문도 잠그지 않는다. 새벽 세 시든 네 시든 찾아와 기도하라는 뜻이다. 시장에서 새벽에 장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도 마음이 괴로워 잠 못 드는 사람들도 찾아와 기도하라는 뜻이다. 그러다보니 자주 도둑도 들지만 스님은 말씀하신다.
“부처님이 갖다 쓰나 내가 갖다 쓰나 도둑이 갖다 쓰나, 필요한 사람이 갖다 쓰면 되지요.”스님은 대중과 더불어 살아가는 ‘생활 불교’를 말한다. 그러다보니 법문도 신도들이 흥미를 느낄 수 있게 쉽게 풀어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생활 법문을 한다. 그리고 각자에게 맞는 법문을 한다.
“저는 신도들이 각자의 근기에 맞는 기도를 하게 해요. 남이 삼천 배를 해서 좋다고 다리 아픈 내게도 좋은가요?”
스님은 신도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배우지 않고서는 그 무엇도 할 수 없으니, 현재 서 있는 위치와 잘 된 것과 잘못된 것을 반드시 가르쳐주고 선을 그어주는 것이 스님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부처님의 말씀은 깨달음의 목적지로 가는 이정표와 같아요. 중간에 잘못해서 다른 길로 빠지면 또 이정표가 되어 주어야지요. 요즘은 삿된 것이 많기 때문에 그것을 바로 볼 수 있는 정법을 가르쳐 줘야 합니다.”
스님이 처음 송학사에 왔을 땐, 진주에서 알아주는 위치에 있는 신도들이 절에 와서도 대우받기를 원했다. 그때에 스님은 상像을 내지 않고 묵묵히 기도하는 시장 상인들의 손을 잡아주었다.
“정초에 할머니들이 와서 절을 하며 ‘복 받으세요’ 하면 절에 오지 말라고 했어요. 복을 지으라고 해야지 받으라고 하면 되나요. 절은 복을 지음으로써 받는다는 이치를 가르쳐 주는 곳입니다.”
그렇게 해서 기복신앙의 더께를 하나씩 벗겨나갔다. 그러다보니 진주에서 젊은 신도들이 가장 많은 절이 되었고 자연스레 신도들이 점점 늘어났다. 스님의 교육과 세세하게 세워 놓은 원칙들이 처음엔 불편했으나 지금은 서로를 편하게 하니, 이제야 신도들은 스님의 뜻을 알고 따른다.
“우리 절에선 기도 시간에 1분만 늦어도 법당에 못 들어오고 마당에 앉아서 기도해야 합니다. 헐레벌떡 뛰어와서 다른 사람 마음도 흐트러트리는데 누구라고 기도가 되겠습니까.”
이제는 아무도 그 원칙에 불만이 없는 화목한 절이 되었고 그렇게 가족 같은 관계가 되었다. 그러니 진주 송학사는 누구라도 찾아오고 싶어 하는 절이 됐다.
“공찰은 주지 스님이 머물다 떠나지만 이곳은 그렇지 않으니 어떤 일에든 관계에 있어서든 연계성이 있어요. 그렇기에 계획을 갖고 지속적인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스님은 9년에 걸친 계획으로 2008년 4월에 ‘108 산사 순례단’을 조직했다. 송학사가 도심의 사찰이다 보니 산사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 산중의 사찰을 찾아가는 것이다. 보통 사찰 순례를 가서 절만 한 바퀴 둘러보고 오는 수박 겉핥기식이 아니다. 사찰의 유래와 문화 해설도 듣고 주지 스님 법문도 듣고 탑돌이도 하고 개인 수행 시간도 갖으며 절에서 대여섯 시간을 머문다. 그러다보니 함께 하고자 하는 신도가 많다. 처음에 선착순으로 108명을 모집을 했는데 신청자 수가 훌쩍 넘어서 매달 버스 세 대가 움직인다. 그러나 순례에 연속으로 세 번을 빠지는 사람은 자동 탈회시킨다. 그렇게 해서 비어지는 자리에 들어오려는 사람도 줄을 서 있다. 그들까지 가게 되면 버스 여섯 대가 움직여야 하니 그것이 버거워 스님은 처음 그대로의 모습으로 매달 순례를 다닌다.
“한 달에 한번 가는 것이니 9년이 걸려요. 한번 갈 때마다 염주를 한 알씩 나눠 갖습니다. 그것을 하나씩 꿰어서 9년이 되면 백팔염주가 돼요. 이 염주는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것입니다.”
현재 그것이 꼭 4년이 되었는데 단 한 번도 빠지지 않은 사람이 열여덟 명이나 된다. 진주에서 108 순례를 하는 절이 몇 군데 더 있는데 송학사 순례가 소문이 나서 더 많은 이들이 송학사 마당에 찾아든다. 그렇게 스님은 걸음걸음 백팔염주를 채워가는 중이다.
스님의 원은 송학사에 문화복지센터를 짓는 것이다. 15년 전에 부산 내원정사 유치원에서 아이들이 고사리 같은 손을 합장하고 반야심경을 외는 것을 보고 어린이 포교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태신앙의 중요성을 알았다.
“기도라는 게 다른 게 아니에요. 어머니가 자식을 위해서 하는 백일기도보다 어린이가 절에 와서 노는 것 자체가 기도예요. 저는 아이들이 법당에서 뛰어노는 게 참 좋아요. 어릴 때부터 불교에 대한 믿음을 줘야 나중에 그 애들이 사회생활하며 힘들 때 의지할 곳으로 절을 찾습니다. 절에 와서 참회하고 부처님 법에 따라 보시하는 것. 그것을 가르쳐주는 것이 스님의 역할입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문화센터에 어린이를 위한 극장도 만들고 전통 사찰 음식과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서 지역민들이 문화적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하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송학사는 도심 사찰이기에 24시간 개방해서 누구든 와서 기도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스님의 원이다.
스님은 해인사와 송학사를 오가느라 하는 일 없이 바쁘단다. 그러나 스님은 지난 해 ‘팔만대장경 천년 세계문화축전’의 ‘해인아트프로젝트’ 사무국장을 맡아 성공적으로 마쳤다. 쉬빙, 장후안, 김아타와 같은 세계의 유명한 현대 미술 작가 서른 명이 1200년의 역사와 전통이 있는 한국의 산사에서 전시를 했으니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일이었다. 전통 사찰과 현대 미술은 물과 기름 같은 것으로 보이지만 그것이 조화를 이뤄 더 큰 의미가 되었다.
“그 미술 작품을 보는 것은 법문을 듣는 것과 같아요. 불자가 아닌 사람들도 미술 작품 통해 불법을 알게 되는 것이지요.”
스님이 그 당시의 일화를 이야기 하신다. 작품 중에서 일주문과 사천왕문 사이에 전시된 우리나라 안성금 작가의 ‘부처의 소리’라는 작품은 불상을 반으로 갈라놓은 형상이다. 그 작품의 의미는 그 가운데에서 부처의 소리를 듣고 참 나를 찾으라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88세의 노스님이 누가 부처님을 반으로 쪼개놓았느냐고 노발대발하셨다. 설명을 드리고 허락을 얻었으나 그만큼 불교에선 파격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스님은 그것이 깨어 있는 불교, 현대의 불교라고 생각한다. ‘해인아트프로젝트’는 2년에 한 번씩 개최는 것이기에 스님은 현재 2013년의 전시를 준비 중이다. 하는 일 없이 바쁘신 게 아니라 하는 일이 많은데도 노닥거리자는 중생에게 커피를 내주고 계시는 것이다. 스님은 커피잔을 드는 내게 말씀하신다.
“불자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얼굴엔 그 사람의 삶이 서려 있어요.”
진주 하늘에 저녁 별 하나 떴다. 남강에 비춰진 저 별의 얼굴은 어이 저토록 아름다운가. 그러니 내 얼굴을 어이 그 물결에 비춰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