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서정주 시인의 시 ‘신록’에서처럼 천지에 이미 꽃잎이 지고 새로운 녹음이 돋아나 또 한 번 우리를 에워싸는 아름다운 계절입니다. 더불어 5월은 어버이날, 스승의 날 등 누군가에게 감사를 전하는 ‘감사의 계절’이기도 합니다. 저는 ‘스승’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가장 먼저 명심보감 정기편에 나오는 삼인행三人行 필유아사必有我師 라는 어구가 떠오릅니다. 이는 풀이 그대로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는 의미이지요.
올해 스승의 날을 즈음하여 ‘내 인생의 첫 스승’에 대해 한 번 생각해보았습니다. 제 좁은 소견일 수도 있겠으나 우리의 삶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배움의 연속인 것 같습니다. 심지어 태어나기 전부터 태교胎敎라는 이름으로 뱃속의 아이조차 누군가의 가르침을 받게 됩니다. 게다가 세 사람만 길을 가도 나의 스승이 있다고 하니 누가 제 인생의 첫 스승인지 한참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걸음마를 떼고 유치원에서 만나 곰 세 마리 율동을 알려주던 유치원 선생님, 초등학교에 갓 입학해서 바른 생활, 슬기로운 생활 교과서를 함께한 초등학교 선생님 등 우리는 형식적으로조차 수많은 스승을 거쳐 왔습니다. 그 중 오랜 고민 끝에 ‘내 생의 첫 스승’으로 결론지은 스승은 바로 어머니입니다.
어쩌면 너무 허탈한 결론이라 볼 수도 있겠지만 때론 가장 당연하고 뻔한 사실이 곧 진리가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저는 서울로 대학을 진학하기 전까지 거의 모든 시간을 가족과, 그리고 특히 어머니와 함께 보냈습니다. 물론 지금은 제가 원했던 대학에 진학하여 나름대로 만족하며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대한민국의 많은 청소년들이 그렇듯이 소위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하는 사춘기가 찾아왔었습니다. 남들 다 다니는 학원도 가기 싫고 왠지 모르게 모든 세상에 한 걸음 물러나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야 말로 목적의식을 상실하고 어디로 가야할 지를 몰랐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즉 ‘왜?’라는 의식이 전혀 체화되지 않았던 것이죠.
이런 상황은 당연히 어머니와의 갈등으로 직결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바르게 올곧게 키우고 싶은 어머니의 마음과는 정반대로 향했던 저의 모습이 안타까우면서도 괘씸했을 테지요. 이에 처음에는 마치 어린 나무에 지지대를 만들어 곧게 키우려하듯이 어머니께서도 저를 혼내고 다그치며 억지로라도 학원을 보내며 전전긍긍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내 어머니께서는 이런 방법이 제멋대로인 저에게는 전혀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저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동안 남들이 학원 개수와 과외 시간을 늘릴 때, 이미 다니고 있던 학원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제가 원하는 대로 어머니는 허락해주신 것이었죠. 어머니께서는 이런 저에게 “네 인생에 당당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라”라고 한 마디를 해주시면서 모든 것을 그저 바라봐 주셨습니다. 어머니의 이 한 마디와 이로 인해 제게 주어진 자유는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게 됩니다. 따라서 저는 자유를 갖게 된 만큼 제 인생에 당당해야할 책임을 동시에 갖게 된 것이었죠. 이를 계기로 저는 스스로 마음속에 ‘왜’라는 목표의식과 동기부여를 불어넣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저는 고등학교 시절 중학교 때와는 달리 타의와 강요가 아닌 저 스스로의 의지로써 공부에 매진할 수 있었고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런 의미의 가르침은 어떤 면에서 보면 스승의 의미가 아니라고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어머니의 조용한 가르침은 제가 지금까지 초, 중, 고등학교, 그리고 현재 대학교를 다니면서 만난 어떤 스승보다 더 진하고 깊은 스승으로서의 가르침이었습니다. 비록 제가 영어 문장을 해석하고 수학 문제를 풀 수 있었던 것은 학교와 학원의 선생님들의 가르침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그 기저에는 제가 저에게 스스로 의지를 불어넣을 수 있게 만들어준 어머니라는 스승의 가르침이 있었습니다. 이런 면에서 봤을 때 제 인생의 첫 스승은 어머니라고 말하는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누군가가 자신의 스승이 되는 것도 자신의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훌륭하고 지혜로운 분의 가르침이 있다고 해도 나 자신이 스승이라고 선택하지 않으면 그 혹은 그녀의 가르침은 자신에게 전혀 무의미한 것이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을 고려해볼 때, 어머니는 저에게 훌륭한 스승을 스승으로서 받아들이고 그 가르침을 스스로 나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게 만들어준 스승의 원천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저에게는 말입니다.
세계 1차 대전 이후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국의 윈스터 처칠 수상은 국민적 영웅으로 부상했습니다. 그의 인기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런던의 한 신문은 유치원 때부터 대학교 때까지 처칠을 가르쳤던 교사들을 취재하여 \'위인을 만든 스승들\'이란 제목으로 보도하여 화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이 기사를 본 처칠 수상은 신문사에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고 합니다.
\'귀 신문의 조사에서는 가장 중요한 스승 한 분이 빠졌습니다. 그 분은 바로 나의 어머니입니다.\'
감사의 달인 5월에 우리의 소중한 스승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스승이 맞이한 5월의 하늘을 달리며 녹음을 스쳐 오는 맑고 향기로운 바람이 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