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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처녀의 해인사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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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이세나┃해인사 학예연구원 2012년 06월 364호

이른 새벽 법고소리를 들으며 부스스 잠에서 깨어나 주섬주섬 법복을 대충 챙겨 입고 예불에 늦을까 종종걸음으로 법당으로 향한다. 옆문으로 살짝 들어가 부처님께 삼배를 하고 자리 잡으면 어느새 범종, 목어, 운판까지 사물을 두드리는 소리가 모두 마무리된다. 학인스님들의 맑고 힘찬 선창에 따라 새벽예불에 참석하시는 여러 보살님, 처사님들의 목소리가 섞여들면 나도 함께 예불문, 반야심경, 천수경을 독송하고 석가모니불 정근을 하며 <108배가 아닌 108배>를 올린다. 목표는 항상 108배이지만 108배를 못 채울 때가 더 많아 아쉬우면서도 내일을 기약하게 되는 그런 108배. 영가단에 법성게를 독송하고 예불을 마치면 주변이 어슴푸레 밝아진다.
그렇게 예불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와 아침공양시간까지 다시 자는 4~50분간의 단잠! 나는 꿀맛 같은 이 시간이 왜 그렇게 좋은지... 시작은 ‘아침공양 전까지만~’ 이던 것이 어느새 출근시간이 되는 게 다반사일 정도다. 그 꿀맛 같은 단잠을 뿌리치고 씻고 빗고 부산히 출근준비를 하고 숙소를 나와 숙소 주변에서 야옹거리는 야생고양이들에게 손을 흔들어주고는 박물관으로 향한다. 하지만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산죽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산새들에게 인사하고 길에서 만난 산토끼를 카메라에 담는다. 안개 끼면 낀 대로, 벚꽃이 날리면 날리는 대로 휴대폰으로 찍노라면 ‘어! 출근시간 다 되었다’며 오늘도 또 뛰기 시작한다. 구르듯 박물관으로 들어가 박물관 분들께 인사를 하고나면 마침내 하루의 업무가 시작된다.

서울에서 태어나고 서울에서 31년을 자랐지만 나의 본가는 경북 안동에 있다. 더구나 5백여 년 된 고택이면서 보물 553호로 지정되어 있는지라 성보박물관에 전시된 유물과 760년 된 대장경판을 보노라면 뭔가 가슴이 꽉 차는 남다른 느낌을 받곤 한다. 해인사가 워낙 오래된 고찰인데다가 쌍둥이 비로자나부처님을 비롯하여 희랑조사상 등 많은 문화재가 산재해있어 여기저기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뿌듯하고 감동을 받는 곳이긴 하지만 말이다.
해인사에 있으면서 무엇보다도 뜨거운 인연은 보존국장 성안 스님과 추진한 1인1경판 인연 맺기의 팔만대장경보존회다. 이는 부처님 법을 지키고 보존해온 선조들의 노력을 계승하는 동시에 해인사에 산재해 있는 문화재 보존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그러니 보존회 슬로건인 \'천년의 역사 대장경 만년의 미래 대장경\'의 첫 글자인 천대만대처럼 천대만대에 물려줘야할 문화재 보존에 많은 분들이 부디 관심을 가져주시길!

맡고 있는 이런저런 업무가 끝나고 나면 가끔 나는 평범한 재가불자인 여러 직원을 꾀어 –실제로 내가 꾀는 건지 꾐을 당하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치킨과 맥주를 먹으러 아랫마을로 향한다. 그리고 같이 간 직원분들과 업무, 일상의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며 소소한 즐거움을 느낀다. 도시에서는 일탈이라 할 수도 없는 일이겠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해인사 생활에서의 일탈이랄까? 생각해보면 처음 해인사 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법복을 입는 것부터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해서 옆 사람에게 말도 제대로 못 붙였는데 숙소를 우화당에서 보경당 1층, 지금의 해인아트사무국 옆방까지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서 여러 직원분들과 더욱 친해진 듯하다.
친언니가 조그만 광파오븐기와 고구마를 보내줬을 때도 제일 먼저 방에서 같이 구워먹었고 과일 하나, 떡 하나라도 생기면 꼭 나누어 먹게 되는 숙소 언니들. 그리고 일하면서 만나게 된 박물관 분들, 대장경연구원분들, 종무소분들, 편집실언니… 열거하려면 다 해야겠지만 여기까지만 해도 도시 처녀의 해인사 생활을 도와주고 함께 한 인연들은 결코 적지 않다. 보존국장 성안스님과의 인연으로 시작해 박물관 경력을 쌓기 위해 이곳 해인사까지 와서 지내게 되었지만, 이것저것 신경써주고 가르쳐주시는 여러 좋은 분들과의 만남과 인연은 아마도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연기에 따른 것이리라.
어찌 보면 나의 해인사 팔만대장경과의 인연도 아버지 대에서부터 이어진 것으로, 아버지는 90년대 추진한 팔만대장경 전산화사업을 맡았던 외부 재단의 대장경사업 담당 팀장이셨다.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지금 여기 해인사에 와 계신 모든 분들도 이렇게 저렇게 해인사와 인연을 맺고 와계신 것일 거라고 생각하며 나는 오늘도 이렇게 해인사에서 하루를 보낸다. 그리고 매일의 생활 속에서, 때로는 스님과의 차담을 통해, 때로는 직원들과의 이야기를 통해 부처님의 말씀을 느끼며 나의 해인사 생활도 여물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