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비도 하루 종일 오겠다 싶어 그간 못했던 게으름을 십분 발휘하여 하루 종일 티비를 끼고 살았다. 그 중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서 아주 재미난 교수님이 사람들의 심리에 대해 한 말씀하신 것을 보았다. 사람들이 흔히 하는 후회에는 하나는 했던 일에 대한 후회, 다른 하나는 안 한 것에 대한 후회 두 가지가 있는데, 보통 했던 일에 대한 후회는 비교적 오래 가지 않고 쉽게 잊는 반면 안 하거나 못한 일에 대한 후회는 죽을 때까지 간다는 거다. 왜냐하면 한 일에 대한 후회는 이미 저질러진 일이고 되돌이킬 수 없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은 능숙하게 자신의 행동에 대한 정당성을 찾고 미화를 하지만, 하지 않은 일은 훗날 시간을 되돌리기 전에는 그것을 채울 방법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는 결과는 모두 후회일지라도 결과적으로 그 정도에 있어서는 해 놓고 하는 후회가 훨씬 낫다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 살아가는 순간 순간 모든 일이 선택인데, 하지 않은 일 대신 무엇인가는 분명 한 일이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못 한 일이란 것은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말도 안 되고 자기 미화적이며 하릴없는 궤변을 머릿속에 늘어놓으며 주말 오후를 즐겼다. 아, 오늘은 공부를 하나도 하지 못해 후회는 하지만 대신 즐겁게 티비를 보면서 쉬었으니 이걸 한 일에 대한 후회라 해야할까 아니면 못 한 일에 대한 후회라 해야 할까.
앞에서 이야기 한 두 가지 후회는 과거와 미래의 선택에 대한 후회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무슨 일이든 지금 바로 이 순간에 집중하고 즐기는 일이야말로 선善이자 선禪의 실천이라고 아주 거창하게 생각해보자. 마음이 훨씬 나아진다.
이렇게 나 같은 귀차니스트 책상물림 궤변론자들이 선종, 그중에서도 남종선을 잘못 이해하며 열광하기 시작한 때가 바로 당唐에서 오대五代에 이르는 시기였다. 중국 문화사학자 갈조광葛兆光은 “이들의 생활방식은 노장의 무위자연無爲自然이나 은퇴적의隱退敵意의 생활정서와도 일치하였다. 산수의 멋을 즐기고 얽매이지 않으며 한가로이 사는 것, 이것은 바로 사대부들이 몽매夢寐에서도 추구하던 세계였다”고 지적하였다. 이 시기 불교 자체적 동력은 물론 사대부들의 정신적 후원에 힘입어 당말 남종선이 급속히 번성하면서 많은 육조 혜능 선사 문하의 여러 제자들이 각각의 가풍으로 꽃을 피우기 시작하였다. 동산양개(洞山良介, 807~869)에 의해 조동종이, 운문문언(雲門文偃, ?~949)에 의해 운문종이, 청량문익(淸凉文益, 885~958)에 의해서 법안종이 개창되었고, 후에 위산영우(潙山靈祐,771~853)에 의해 위앙종이, 임제의현(臨濟義玄, ?~867)에 의해 임제종이 개창되었다. 이것이 이른바 선종오가禪宗五家이다.
그중에서도 운문문언 선사는 때때로 수행하는 납자들을 둘러보고 “잘 살펴보라”고 말하곤 했다고 하는데, 누군가 이 말에 대꾸를 하려고 하면 “쉿”하고 말을 못하게 했다고 한다. 이를 고감송顧鑑頌이라고 했는데, 고顧는 ‘훑어보고’, 감鑑은 ‘살펴보라’는 뜻으로 운문 스님의 수행 교육방법을 보여주는 일화이기도 하다. 운문 선사는 “한 해 한해 좋은 해, 매일 매일 좋은 날(年年是好年 日日是好日)”이라는 구절로 더 잘 알려져 있는 분이다. 이런 마음 좋은 글을 쓰신 스님도 스스로를 “높고 험준하고, 물살이 빨라서 고기들이 머물지 못한다”고 평가하였다.
그림은 지난 호에 실렸던 마원(馬遠, 13세기)의 <청량법안선사상>과 대對를 이루는 그림으로 운문문언 선사의 모습이다. 화면 오른 쪽 나무 아래 꼬장꼬장하게 앉은 채로 지팡이를 들고 있는 분이 운문선사이다. 과연 그 가르침과 성격이 ‘높고 험준하며 물살이 빠를 것’같은 분위기가 다분하다. 마원이 그린 선종오가 고승 중에 동산양개, 청량법안, 운문문언 세 선사에 대한 모습만 그림으로 남아 전해지고 있는데, 여기에는 각 종파의 전승관계와 관련이 있지 않나 하는 의견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