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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오신 달의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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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해인 편집실 2012년 05월 363호

5월이다. 온 세상이 초록빛으로 물들어간다. 꽃향기가 흠뻑 배어있는 공기는 향기롭고 보드랍다. 부처님 오신 날이 있는 달이다. 부처님 탄생 설화는 신비롭다. 무샤고지 사네아츠는 <붓다>에서 부처님 탄생의 장면을 다음과 같이 그렸다. 부처님 탄생한 그 봄날도 화창했다.

해산할 날이 가까워지자 마야 부인은 친정인 구리성으로 돌아가려고 하였다. 당시의 풍속은 임신한 부인은 친정으로 돌아가 아기를 낳게 되었던 것이다.
왕은 왕비의 건강을 빌며 기쁘게 작별을 하였다.
마야 부인은 왕과 헤어져 성문을 나와서도 기쁘기만 하였다. 화창한 봄날, 시종들도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며 왕비의 뒤를 따랐다.
그런데 일행이 천비성에 이르기도 전에 뜻밖에도 왕비는 해산의 기미를 느꼈다.
일행은 당황하였으나 마야 부인은 오히려 침착하고 조용하게 시종들에게 지시하여 가까이 있는 룸비니동산으로 들어갔다. 그곳에 장막을 치고 산실을 만들기로 하였다. 시종들은 서둘러 산실을 준비했다. 마야 부인은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룸비니동산에는 온갖 꽃이 제철을 만나 만발하고, 새들의 지저귐은 마치 태어날 왕자를 축복하는 것 같았다.
준비가 끝나자 마야 부인은 무우수 나무 아래 누워 꽃이 만발한 무우수 가지를 꺾으려 했다. 그 순간에 왕자가 태어나면서 힘찬 울음을 터뜨렸다. 정반왕에게 곧 사신이 달려갔다.

또 다른 설화에는, 태자가 탄생하자 많은 신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태자를 받들었고, 그때 하늘에서 두 줄기의 따뜻한 물이 쏟아져 태자의 몸을 씻어드렸다. 그러자 태자는 선뜻 대지에서 일어서서 사방을 둘러보며, 북쪽으로 일곱 걸음을 내딛고서 오른손으로 위를 가리키고, 왼손으로는 땅을 가리키면서,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고 했다. 이른바 탄생게인데, 또 다른 경전에는 ‘온 세상이 모두 고통 속에 잠겨 있으니, 내 마땅히 이를 편안하게 하리라三界皆苦 我當安之’는 구절이 덧붙어 있다. 이에 대해 설화와 역사를 구분해 석가모니 부처님을 신격화하는 것을 경계하는 시각도 많다. 아무튼 석가모니 부처님의 탄생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며, “다만 우리는 이러한 설화를 통해 상징하는 인류의 스승 석가모니불에 대한 후세 사람들의 흠모의 정만큼은 충분히 이해해야만 할 것이다.”《이기영 <석가>. 마성, <사캬무니 붓다>, 71-72쪽 재인용》

올해가 불기 2556년이니, 여기에 부처님이 살았던 햇수 80을 더하면 부처님이 탄생하신 해이다. 그러나 탄생 연대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다. 서양의 학자들은 기원전 560-480년이라고 주장한다. 기원전 460-380년이라고 보는 견해는 나카무라 하지메 등 일본 학자들이다. 두 가지 주장엔 100년의 차이가 있다. 고대 인도가 역사 관념이 결여되고 연대가 불명확했던 점을 감안할 때 100년의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오히려 경탄할 만하다는 많은 학자들의 견해다. 정확한 탄생 연대의 규정은 학자들의 몫으로 남겨두고, 중요한 것은 “세계 최대의 인물” “인류의 위대한 스승” 석가모니 부처님이 우리 곁에 왔다는 사실이다.

더딘 봄일지라도 자연은 꽃을 틔워 향기롭지만, 세상살이는 향기롭지 않다. 사바세계다. 예토가 곧 극락이라고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세상은 사바세계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삶은 처절하다 얼마 전 또 한 명의 해고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대량해고 후 스물두 번째 죽음이라고 한다. 가족을 남겨놓고 죽음으로 걸어가는 뒷모습을 생각하노라면 가슴이 미어진다. 죽음으로써 애원해도 달라지지 않는다. 자비란 없는 것인가. 비정규노동자 수가 800만 명이라고 한다. 노동자 한 사람에 세 가족이라고 치면, 2400만 명, 우리나라 국민의 절반 가까운 이들이 실업의 불안과 생계난 속에 살아가고 있다. 이게 어디 정상적인 나라인가. 가계부채가 1000조 원에 이른다고 한다. 1가구당 5천만 원 가까운 빚더미 위에 앉아있는 꼴이다. 빚을 갚느라 소비를 줄이는 수분에 이르렀다. 채무 부담 증가→내수 위축→소득 축소→채무 부담 증가라는 악순환의 수렁에 빠지게 된다는 게 경제학자들의 경고다.

잔인한 범죄는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약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사회는 도덕이 설 자리가 없다. 범죄가 도덕의 자리를 차지한다. 부자들의 담장은 더욱 높아가고, 가난은 벗어날 길 없는 족쇄가 된다. 이웃과 동료는 협력자가 아니라 경쟁자가 된다. 최근의 우리 사회의 여러 현상을 보면서 탄식하지 않을 수 없다. 상식과 체면, 염치는 이익이 될 때만 작동할 뿐 이익이 되지 않는다면 폐기되어야 할 가치로 치부된다. 이런 가치관은 손가락질 받아 마땅하지만, 오히려 약자의 자기변명이라고 비웃음을 산다. 이럴 때일수록 나눔과 배려의 마음과 손길이 절실하다. 상식과 원칙이 다시 강조되어야 한다. 망망대해의 등대, 불교가 빛이 되어야 한다.

통합종단 50주년의 해이다. 지난 4월 10일 기념법회를 봉행했다. 50년 기록물 전시회도 열었다. 지난 50년을 성찰적으로 회고하고, 이후 50년을 내다보는 토론회도 열었다. 기념법회서 총무원장 자승 스님은 기념사를 통해 “지난 50년이라는 역사의 거울은 지나온 모습뿐 아니라, 앞으로 시대와 사회의 요청에 어떻게 부응할 것인지를 비춰주고 있으며, 지금 우리는 이러한 역사의 거울 앞에 자성과 쇄신이라는 실천적 결단으로 서있는 것”이라고 통합종단 출범 50주년의 의미를 해석했다. 이어 “국민의 종교로 거듭나고, 뭇 생명의 안락과 행복을 현대적으로 실천하자는 종단의 의지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자승 스님은 “이를 위해 끊임없이 사회와 소통하며 희망찬 미래를 열고, 국민의 행복과 평화를 실현하는 것이야말로 반세기를 기념하는 의미일 것”이라며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를 이룩하고 인간과 생명의 존엄을 지키는 일은 우리 모두에게 부과된 책무”라고 말했다.

이날 법회에서 원로의원 월탄 스님이 법문을 했는데, 정화운동의 주역답게 정화정신을 강조하면서 종단의 현실을 매섭게 질타했다. 법주사 주지선거와 범어사 주지선거 논란을 거론하며 “정화 당시에는 원장도 종회의원도 추천을 해도 다 사양하고 양보했다. 그런 것은 대중의 머슴이었다”면서 “요새는 부끄럽게도 종회의원이나 총무원장, 본사주지 선거가 일반보다 못한 영리에 오염되었다. 한심한 생각이 든다”고 질타했다. “부모형제를 버리고 간절한 원으로 출가했지 않느냐”며 출가자의 본분과 초발심의 회복을 강조했다. 월탄 스님은 또 “물질과 권력 만능에 오염되어 있는 것은 분명히 척결하고 넘어가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있다”면서 “총무원장 선거, 본사주지 선거에서 앞으로 그런 일이 없어야 한다. 그런 (불미스런)비판의 소리를 듣고 어떻게 중생을 제도하나. 이 시점에서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월탄 스님의 말씀 중 “한심한 생각이 든다”는 말이 귓가에 잉잉 거린다. 지금의 종단 모습이 얼마나 초라하면 저런 말씀을 하셨을까.

거울에 비친 삭발염의가 참으로 자랑스러운가. 수행자의 당당함, 그 하나하나의 올곧음이 모여 불교의 숲이 되고, 그 빛은 봄의 초록보다 위대하다. 부처님 오신 즈음에 그려보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