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취재를 하다보면 장비가 고장 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우리나라에 있을 때는 별로 문제가 없지만 제3세계나 시골에 있을 때에는 카메라나 렌즈가 고장 나 곤란에 처하게 되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그럴 때를 대비해서 항상 카메라 바디는 DSLR의 경우 2대씩 가지고 다니지만 그 두 대가 다 고장이 난다면?
2008년은 중국과 인연이 참 깊은 해였다. 중국에 여러 차례 갔기도 했지만 장기간 머물렀었던 때이고, 북경과 상하이를 비롯하여, 신장 자치구와 대지진이 난 쓰촨 성에도 두 번이나 방문했었다. 중국에 갈 때마다 캐논 코리아 컨슈머 이미징의 도움으로 카메라 바디(본체)를 두 대씩 갖고 갈 수 있었다. 어떨 때는 두 대 다 대여 받은 적도 있고, 또 어떨 때는 내 카메라와 대여 받은 카메라 바디를 여분으로 가져간 적도 있었던 것 같다. 굳이 여분이 아니다하더라도 나의 촬영 스타일이 카메라 본체 두 대 이상은 항상 갖고 다니기 때문에 대여가 꼭 필요했다.
쓰촨 성에서 대지진이 난 5개월 후, 나는 다시 쓰촨 성으로 향했다. 그 때 내 기억으로는 아마도 내 사진기인 5D와 대여 받은 40D를 가져갔던 것 같다. 그 당시 취재할 때는 통역을 구하는 데 애를 많이 먹었다. 옛날부터 연락을 주고받았던 “쉐리”라는 친구는 직장일이 바빠서 나를 도와주지 못했다. 그래서 다른 사진기자의 통역을 맡았던 “엘리스”의 친구인 “조슬린”을 소개받았다. 조슬린도 그 당시 대학생이었고, 학교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에 나를 오래 도와주지는 못했다.
그래도 “조슬린”과 지진 당시 만났던 운전기사 “칸”과 함께 미안양(绵阳)으로 갔고, 그 곳에서 다시 “제시카”와 “에마”로 통역을 바꿨다. 모두다 정식 통역사는 아니었지만 영어를 하는 친구들이었고, 에마의 경우 얼굴도 예뻤지만 적극적으로 일하려는 자세가 나를 감동시켰다. 내가 에마에게 통역비를 많이 주지 못한다고 얘기했을 때 그녀는 “그래도 기쁜 마음으로 일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녀에게 마음의 빚을 지었다.
5개월 만에 다시 찾은 지진현장에는 벌써 시외버스가 운행되고 있어서 미안양에서부터 베이촨까지 2시간여밖에 걸리지 않았다. 처음 지진이 발생했을 때에는 많은 기자들이 베이촨에 제대로 가지 못해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길이 모두 막혀 진입을 하지 못해, 많은 사람들이 며칠을 걸어서 가던지 아니면 자전거를 타고 갔었다. 그런데 5개월 만에 버스가 다닌다니!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그 짧은 시간에 일본의 가설주택처럼 임시주택이 설치돼, 나와 에마는 임시주택 중 빈 방에서 머물기도 했다. 그렇게 하면서 베이촨의 난민촌을 계속 취재했었다.
그런데 그 전에서부터 쓰던 나의 5D 카메라의 셔터막이 고장이 나서 사진이 전혀 찍히지를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캐논으로부터 대여 받은 40D마저 자꾸 에러 사인이 나오고, 결국에는 사진이 찍히지 않았다! 이를 어떻게 하면 좋은가.
나는 너무 걱정이 돼서 에마에게 이 사실을 말했다. “에마, 내 카메라가 두 대가 다 고장 났어. 어떻게 하면 좋지?” 너무 속상했다. 하필 이곳에서 다 고장이 나다니!
그러자 에마가 나에게 말했다. “그럼 다시 미안양으로 가서 고쳐볼 수 있을까? 한번 가서 보자”라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에마와 함께 베이촨 난민촌에서 버스를 타고 다시 미안양으로 갔다. 미안양 시내에 있는 캐논 카메라 상점에 가보니 나의 카메라를 고치려면 미안양에서는 불가능하고 광저우로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시간은 일주일이 걸린다고 했다.
어떻게 일주일을 사진을 찍지 않고 쓰촨 성에서 기다린단 말인가? 그래서 에마와 함께 인근 공원에 가서 곰곰이 생각했다. “카메라를 새로 사야 하나? 돈이 드는 데…우리 엄마라면 어떻게 했을까?”
그 때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당연히 카메라를 사야지. 지금 돈이 문제야?”
장비를 구입해야하는 경제적 현실에 한없이 나약해 진나는 답답한 마음에 에마에게 어떻게 해야 할 지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에마는 “그럼 카메라를 사서 다시 베이촨으로 가자”라는 것이었다. 그때가 벌써 오후 시간이었다. 나는 에마에게 다시 물어보았다. “그럼 에마는 어떻게 하고? 다시 베이촨으로 갈 수 있어?”
“응. 갈 수 있어. 문제없어.”
그래서 나는 에마와 함께 다시 캐논 카메라 상점에 가서 물어보았더니 미안양에서 가장 좋은 기종은 450D라고 했다. 그리고 바디만 팔지 않고 번들로 렌즈까지 판다고 했다. 카드는 받지 않고 현금만 받는다고 했다. 그길로 현금 지급기를 찾아다녔고, 다행히 공상은행을 발견해 신용카드를 이용, 현금을 찾은 뒤 에마와 함께 부랴부랴 뛰어다니면서 가까스로 카메라를 사고, 사자마자 다시 버스 터미널로 가서 베이촨에 가는 버스를 탔다. 지진 당시에는 갈 수도 없었던 베이촨을 하루에 두 번 가게 되다니!
세상에 취재현장에서 카메라가 두 대 다 고장 난 적도 처음이지만 통역의 도움으로 카메라 한 대를 새로 사서 취재를 하게 된 적도 처음이었다. 그 때 에마는 많이 피곤했는지 다시 베이촨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졸고 있었다. 나는 지금도 에마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다. 에마의 용기 있는 행동이 나로 하여금 하루도 낭비하지 않고 사진을 찍게 해주는 계기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에마가 옆에 없었더라면 나는 사진 취재를 못했을 것이다. 에마야, 참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