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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변상도를 연재중인 금강선원 주지 자훈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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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계삼소 - 정영 2012년 05월 363호

금강선원으로 가는 오후 내내 비가 내린다. 남산에 벚꽃도 피고 금호동 시장에 봄나물도 수북이 담겨 놓여 있는데 봄비라 하기가 무색하리만큼 찬 비가 내린다. 그러자니 시장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나물을 파는 노파들의 어깨는 더 굽어들고 생선장수의 손은 더 곱아든다. 봄볕이 불쑥 품으로 들어와 안기면 좋겠다 싶다. 찬 시장 골목을 지나자 오래된 건물에 들어앉아 있는 금강선원이 보인다. 스님을 따라 2층의 법당을 지나자 3층에 있는 스님의 처소에 닿는다. 발 들이니 옥상에 꽃과 나무가 그득하다. 스님이 손수 차려놓은 공중空中 앞마당은 누구라도 머물며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고 하늘을 보는 공중公衆 앞마당이다.
“내가 산으로 가지 않아도 산이 여기에 있어요. 그러니 나는 산이 그립지 않아요.”
인연의 걸음을 따라 스님이 이 곳에 처음 찾아왔을 땐 아무도 찾지 않는 곳이었단다. 그러나 십년이란 세월동안 스님은 금강선원을 누구든 찾아드는 곳으로 만들었다. 그러다보니 이젠 종교와 상관없이 많은 이들이 이곳으로 모여든다.
“이곳은 화엄의 바다입니다. 이곳에 오는 이들은 불보살佛菩薩의 화연化緣이에요. 등신불等身佛이 부처가 아니라 함께 공부하는 신도들이 부처입니다. 경 속의 부처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앞에 있는 사람을 부처로 대하는 것, 그것이 선지식을 친견하는 것이지요.”
조금 전에 시장 거리에서 보았던 노파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스님의 말씀 한 마디에 마음의 추위가 냉큼 달아난다. 그러니 시장통에 앉은 부처들의 손과 부처들의 발과 부처들의 희끗한 머리카락과 그 위에 솜솜이 젖어들던 봄비가 다 환해진다.
스님은 도심에서 사는 것이 좋단다. 산에 살든 도시에 살든 부처님의 일을 한다는 것은 똑같을 테지만 워낙에 공부하고 가르치며 사람들과 살아가는 것을 좋아하는 탓이다.
“늘 내 안의 살림을 챙기면서 갈 수 있기에 오히려 도회지가 수행하기에 좋아요. 포교를 하면서도 많은 공부를 하게 됩니다. 이곳이야말로 배우고 정진하는 무대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 세상천지는 거대한 하나의 교실입니다.”

스님은 독실한 불교 집안에서 성장했다. 그런데 스님이 성장하는 동안, 태어날 때부터 가져온 것처럼 생사生死에 대한 물음이 내내 스님을 짓눌렀다. 세계사상전집도 찾아 읽고 교회를 다니며 열심히 성경도 읽었지만 그 물음은 해결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책꽂이에 항상 꽂혀 있던 책이 눈에 들어왔다. ‘나 없음, 무아각無我覺’이란 책이었는데 그 책엔 그 어디에서도 보지 못 했던 얘기들이 적혀 있었다. 그때부터 불철주야 불교 서적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스님들이 공부하는 초발심자경문부터 화엄경까지,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천 개가 넘는 테이프를 들었다. 그러고는 환희심이 일어 출가를 하겠다는 꿈을 품었다. 그날부터 집에 있으면서도 멸치 하나 먹지 않고 3년 동안 출가를 준비했다. 그래서 결국 부모님의 승낙을 받았다.
“부모님이 배웅해주신 자가용 타고 챙겨주신 용돈 받아 들고 출가했어요. 강원에서 공부하는 동안에도 후원해 주셨지요. 하고 싶은 공부 하라고 보내주셨어요.”
스님은 강원에서 공부하던 시절부터 끊임없이 ‘쉬운 불교’를 생각했다. 강원 치문반 방학 때 대만에 갔다가 현장사에 가게 되었는데, 그곳에 중국에서 번역을 가장 많이 하신 현장 스님이 두루마리 경장을 지게에 가득 지고 인도에서 중국으로 넘어오는 존상이 있었다. 그 존상 앞에서 자훈 스님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마치 전생에 현장 스님 밑에서 공부를 하다가 이제야 참배를 하게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곳에 서서 눈물을 쏟고 있자 현장사의 주지 스님이 부르셨다. 그러더니 ‘참을 인忍’을 써서 건네주셨다. 자훈 스님을 그것을 이름표처럼 달고 산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곳에서 발원했던 마음으로 공부를 했다.
“내가 처음에 공부를 해보니 불교가 너무 어려워요. 우리가 중국 불교를 흡수하다보니 너무 어려운 불교를 해왔더군요. 남방 불교를 접해보니 쉽더라고요. 쉬운 불교를 널리 보급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으로 살아 왔어요.”
금강선원의 포교는 기도와 교육이 기본이다. 일요법회가 활성화 되어 있는데 스님과 함께 경전 공부를 하는 시간이다. 매번 스님이 쉽게 풀어쓴 교재를 만들어 나눠 주시는데 그것을 십년 째 해왔으니 교재만도 상당한 분량이다. 그리고 스님은 쉬운 말로 풀은 ‘천불천배 참회발원기도집’도 만들었다. 이 책의 수익금은 장학금으로 쓴다. 올해는 천만 원의 장학금을 기독교를 믿는 대학생에게 주었다.
“종교에 상관없이 꼭 필요한 이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어요. 화엄사상은 그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계획해서 큰 불사를 하지는 못 해요. 그 자리에서 그 처지에 맞게 어려운 사람들을 돌봐야지요. 즉사이진卽事而眞이라 했어요. 일이 생겼을 때 즉시 해결을 해야지요.”
그러다보니 타 종교인들도 공부하러 금강선원에 찾아온다. 와서 명상도 함께 하고 성지순례도 함께 다닌다.
“제가 볼 때 미래 종교는, 각 종교의 좋은 점을 공유하는 신앙이 될 거예요. 그러니 내 종교 네 종교 나눌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나라도 그 초입에 들었다고 생각해요. 현대 지식인들은 각 종교의 좋은 점을 다 받아들이고 있거든요.”
스님은 아버지의 유교사상과 어머니의 불교사상과 성장하면서 교회에서 받았던 기독교의 영향을 다 흡수 했단다.
“우리 불교는 깊고 넓고 크고 위대해서 다 수용할 수 있어요. 그러니 스님들이 먼저 문을 열고 벽을 낮춰야 해요. 함께 공유해야 하니까요.”

스님은 대교반 때 고려대장경 화엄경 변상도의 주해서를 쓰게 됐다. 봉암사 대웅전 벽에 변상도를 그려 넣는 데에 필요하다며 운문사에 청이 들어온 것을 자훈 스님이 맡게 된 것이다. 제주도 중턱에 있는 은사 스님 토굴에서 1년간 머물며 화엄경을 방안 가득 펼쳐놓고 화엄사상에 깊이 빠져서 변상도 원고를 썼다. 그 원고를 봉암사의 서암 스님께 가져가니 책으로 내자고 하셨다.
“변상도는 제가 중노릇을 하는 데에 큰 틀이 되었어요. 변상도 풀이는 화엄경의 내용을 다 알지 않으면 할 수가 없어요. 그 인물이 말해주는 뜻이 굉장히 깊거든요. 지금까지도 변상도를 풀이하는 그 신심의 도가니에서 살고 있는 것 같아요.”
변상도 원고를 마치고 스님은 종단에서 번역사를 키우기 위해 설립한 불전국역 연구원에서 4년간 공부했다. 그러고는 끊임없이 공부하고 포교하며 역경원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한 생각이 간절하면 그게 원력이 되나 봐요. ‘쉬운 불교’를 하겠다는 간절한 생각이 지금 저를 역경원에 있게 한 것 같아요.”
스님은 변상도를 공부한 이후로 인도의 산치대탑, 인도네시아 보로부두르 사원의 화엄경 내용 조각, 티베트 불화 당카, 중국 둔황 벽화, 산서성의 운강석굴, 낙양의 용문석굴, 중경의 대족석각 등을 관심을 갖고 보고 다녔다. 그러던 작년 가을, 스리랑카의 담불라 석굴 천장에 있는 불화를 감상하고 와불상 앞에서 신심이 나서 또 눈물을 쏟았다.
“그 순간, 돌아가서 화엄경 변상도를 더 쉽게 풀이해서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고는 돌아와 해인사 팔만대장경 축제에 신도들과 갔다가 전시장에 화엄경 변상도 목판을 전시해 놓은 것을 보았다. 신도들에게 그것을 풀어서 설명하니 주변의 사람들도 와서 귀를 기울였는데 그 중에 불교미술을 전공한 이가 있었다. 그의 권유로 해인지 편집장 스님과 차를 나누다가 해인지에 화엄경 변상도 풀이를 연재하게 되었다.
“그것은 우연이 아니었죠. 저는 변상도로 인해서 이 생을 화엄사상에 매료되어 산다고 해도 틀리지 않거든요. 화엄경은 내용 자체가 우리 삶의 현장 그대로예요. 화엄사상이 바로 보살 사상이에요. 저기 기어가는 벌레도 보살의 화연인 거예요.”
스님이 잠시 제주도에 머물 때의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어느 봄날 고사리를 끊으러 나가 고사리만 보고 가다보니 어느 계곡에 다다랐다. 그런데 그곳에서 몸집이 너무 커서 움직임마저 둔한 비단구렁이를 만났다. 화엄사상에 빠져 있으니 그것이 혐오스럽지도 두렵지도 않았다. 화엄사상이 이토록 좋은 것이구나 싶었다. 어느 날은 수확이 다 끝난 감자밭에서 남은 감자를 캐고 있었다. 스님이 밭 한 이랑을 다 캐서 감자 몇 알을 겨우 주워 담는 동안 한 마리 꿩이 날아와 단숨에 감자를 쏙쏙 빼먹었다. 스님은 꿩 앞에서 마음이 납작해졌다.
“인간은 자신이 만물의 영장이란 생각에 새를 한갓 미물이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틀렸어요. 꿩이 보기엔 내가 얼마나 우스워 보였겠어요. 모든 생명은 존귀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화엄사상이에요. 그런 마음으로 포교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게 이것뿐이 거든요.”
스님은 태어날 때 가지고 나왔던 생사生死에 대한 물음이 이젠 더 이상 궁금하지 않단다. 스님이 앞마당의 화초 앞에 가만히 서서 말씀하신다.
“천하제일 인간향 天下第一 人間香이라 했어요. 여기가 극락이구나 싶어요.”
시장 골목을 걸어 나오며 스님이 하신 말씀을 입안에 넣고 중얼거려본다. 이 시장이 극락이구나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