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마 유태근(49)이 조선백자 달 항아리를 품은 것은 1985년 도자기를 입문하면서이다. 지금으로부터 꼭 28년 전의 일이다.
우연히 마주치게 된 한권의 책에 둥글고 보름달 같은 형태의 항아리가 나의 몸과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어떻게 하면 만들 수 있을까. 감히 내가 품을 수 있을까 품어도 될까 하고 10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처음 생각했던 조선백자 달 항아리에서 조금 실망하게 되었다. 한국의 도자기는 항상 서민적이고, 힘없고, 외세에게 당하고, 가냘프고 이러한 수식어들이 혈기 왕성하게 도전하는 나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여질 수가 없었다.
좀 더 당당하고 힘 있는 도자기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위풍당당한 도자기 달 항아리를 만들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나는 일본 유학을 결정하고 일본으로 떠났다. 일본의 항아리는 어께선과 전의 두께, 전의 길이, 영락없는 사무라이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저 항아리가 한 시절 한반도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는 생각을 하니 피가 거꾸로 솟는 듯 했다. 그때부터 나는 달 항아리의 어께선과 전의 두께를 조절하여 달 항아리를 만들었다. 나는 당당하게 맞서고 싶었다. 지금 이 시대만큼은. 그래서 4년간 일본에서일본의 도자기를 연구했다. 또 한국으로의 많은 도자기를 먼발치에서 볼 수 있었으며 내가 나가야 할 방향을 생각하게 되었다. 1999년 한국으로 돌아와 나의 화두는 당당하고 힘 있는 도자기가 나의 화두였다. 그 후 2005년 국립박물관 조선백자 달 항아리 전을 보게 되었다.
넓고 어두운 전시실에서 처음 대면하게 된 조선백자 달 항아리는 나는 심장이 멎는 듯했다.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한동안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 당당함과 힘은 내가 이때까지 실망하고 나의 젊은 혈기를 슬프게 했던 그 달 항아리가 아닌 너무나 당당하고 무엇이라도 포용하고 그 형태와 선은 상대방을 제압 하는듯한 느낌이었다. 지금까지지 잘 못 생각하고 있었던 나는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는 미안해하면서도 가슴 한 구석에는 뿌듯함과 우리 선조들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전시기간 중 삼일을 전시장을 찾았다. 나는 달 항아리 앞에 앉자 쳐다보았다. 그리고 언젠가는 당신을 품겠다고 마음속으로 고했다. 그 후 5년간 달 항아리를 만들지 않았다. 감히 죄송해서 만들 수가 없었다.
2009년 나는 달 항아리를 만들 생각을 했다. 스포츠에서 박태환, 김연아 선수가 세계를 놀라게 했고, 대통령이 원전을 수주하고 조선 기술이 세계를 제패하고 프랑스로 반출 된 외규장각도서가 세계 언론에 보도될 때 지금의 이분위기가 대한민국의 르네상스 시대의 시작을 알리며 조선백자 달 항아리가 갖는 위풍당당함이 대한민국의 르네상스를 대표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를 맞추어 대장경 천년의 해에 발표 할 계획을 세웠다. 조선백자 달 항아리는 어떠한 용도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지식층 들이 어떻게 저렇게 크고 넓은 마음으로 백성들을 위해 베풀까 하는 상징물이다.
팔만대장경 역시 부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해서 백성들의 안녕과 행복을 비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팔만대장경과 조선백자 달 항아리의 관계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여 삼년에 걸쳐 10점의 달 항아리를 만들게 되었다.
처음 어떠한 달 항아리를 만들어야 하나, 옛것과 똑같이 해야 하나. 아니면 지금시대를 대변 할 수 있는 형태와 색상으로 만들어야 하나 하면서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지금 이 시대는 옛것과 똑같이 만들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단순히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 이 조선백자 달 항아리를 보면서 그 시대의 시대생활 상을 느끼듯 백년, 이백년 후에 후학들이 옛것을 복사해 놓을 것이 아닌 지금시대의 상황을 이야기 할수있는 달 항아리를 보여주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수많은 형태들이 있지만 빠르게 움직이는 문화 속에 마음의 편안함과 마음의 안식을 느낄수 있는 색상과 형태 많은 사람들이 늘 기원하고 기도하는 복福 복주머니 형태를 선택하였다. 나는 생각한다. 전통은 지금껏 한 순간이라도 머물렀던 적은 없다. 항상 계승 발전되어 왔으며 지금도 변화되어 가고 있다. 앞으로도 변화되어 갈 것이다. 문화는 애써 앞서 갈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뒤쳐져서도 안 된다. 순리대로 최선을 다 하고 흘러가는 것이 조선백자 달 항아리의 마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문화가 성숙 하는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조선백자 달항아리
2012년 5월 26일 ~ 7월 14일
해인사 성보박물관 특별전시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