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중국을 다녀왔다. 실크로드 탐사를 비롯해서 신라구법승 연구라는 과제를 마무리 짓고 있는데, 중국학자들의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구법승들의 중국 내 활동상은 매우 단편적이어서 전모를 파악하기 어렵다. 이 기회에 한국스님들이 중국불교에 끼친 영향을 깊이 있게 다루어 보고 동아시아를 관통하는 불교 정신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천착해보고자 하는 것이 내 욕심이다. 그 동안의 구법승 연구를 통해 중국이나 인도에 유학했던 한국 스님들은 대략 80여 명 정도였을 것으로 보아왔다. 그러나 중국 측 기록을 종합하면 단순히 이름만 거론된 경우를 보아도 3백 명은 훨씬 넘을 듯싶다. 구체적인 활동 상황, 또 귀국 후의 행적 등도 살펴보고 싶었다. 중국에는 불교학자가 거의 없다. 모택동의 반종교정책, 문화혁명 등으로 불교계의 인재들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80년대 “죽의 장막”이 걷힌 이후부터 중국정부는 불교유적지가 ‘돈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부랴부랴 사찰을 정비하고, 스님들도 급조急造해서 외형으로나마 불교가 있다는 사실을 알리게 된다. 그러나 오랜 억압 정책으로 불교를 비롯한 종교 관련연구자들은 거의 설 자리를 잃고 말았다.
최근 들어 중국 불교의 부흥속도가 엄청나게 빠르다는 점을 느꼈다. 우선 국민들의 정서가 우호적이다. 일시적으로 배척한 적은 있지만, 이천년 동안 중국의 민족종교가 아니었던가. 정부도 서양종교와는 다른 인식을 하고 있다. 민족주의를 부추기는 일도 없고, 분리 독립에 대한 우려도 없다. 더구나 최근의 중국불교는 대 사회적 활동이 두드러진다. 사찰 단위로 신도 교육, 기도 의례, 템플스테이 등이 빈번하게 열리고 있다. 시안西安에서 의상 스님이 법문하셨던 정업사淨業寺를 찾았는데 수행객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이 점은 중국 지식인들 사이에서 상당히 높은 평가를 얻고 있는 대목이다.
북경에서 두 시간 정도 떨어진 백림사百林寺라는 절을 참배하였다. 9년 전에 세운 신흥사찰이다. 주지는 이 절을 짓는데 약 5천만 위안(우리 돈 약 90억 원)이 들었다고 했다. 그 돈의 1/3은 대만 화교들, 나머지는 중국 본토의 불자들이 모았다고 한다. 사무실에는 이십 여명의 승속僧俗이 열심히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어서, 내심 기도동참 엽서를 띄우는 일이겠거니 짐작했었다. 그런데 그들은 불우이웃돕기 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구청에 가서 극빈자 명단을 뽑아 온단다. 하루에 백 명씩, 한 달이면 3천 명씩을 돕는 구체적 계획이었다. 누구는 끼니를 굶고, 누구네는 천정이 무너졌고, 누구는 학교 기성회비를 못 냈다는 등의 세세한 애로사항을 뽑는다. 그리고 현장에 가서 확인하고, 도와주는 절차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었다.
백림사 주지를 비롯해서 내가 만난 중국 스님, 불교학자들은 한결 같이 사회복지사업이 중국불교의 화두라고 역설하였다. 불교는 단순히 나이 먹은 종교일 뿐 아니라, 국익을 위하여 훌륭한 종교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비공식적인 집계이기는 하지만, 현재 중국인들 중에 불교인의 숫자는 5천만 명이 넘으리라는 추산도 있다. 또 5년 이내에 불교 인구가 7억을 넘으리라는 예상도 있다. 그렇게 되면 이제 불교는 세계의 4대 종교 가운데 가장 많은 교세를 확보하게 된다. 말 그대로 세계 최대, 최고의 종교가 될 수도 있다.
중국학자들은 의욕적으로 한중불교교류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들이 말하는 저변에는 일본에 대한 경계심리가 깔려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남경대학살 등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망령은 중국인들의 가슴에 못을 박았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피해당사자인 한국에 대해 동류의식과 애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또 최근의 한류 바람도 큰 몫을 담당하리라 느껴진다. 한국드라마 이야기에 끼이지 못하는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하였다. 근엄한 대학총장 입에서 “소녀시대”의 누구가 어떻고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도 그 쪽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한․중․일 세 나라는 어쩔 수 없는 연대連帶관계이다. 지정학적으로, 문화의식의 면에서, 외모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친근감 있는 나라들이다. 동아시아 벨트라는 거창한 이름보다 더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 우선 서양 사람들은 한국 ․ 중국 ․ 일본 세 나라의 생김새 ․ 말투 ․ 생활양식 ․ 건축구조 등을 절대 구분하지 못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벨기에 ․ 스웨덴 ․ 그리스 사람들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우리 세 나라의 우호선린을 가로막는 장벽은 민족주의이다. 까칠한 민족 자존심을 내세우면 결국은 공멸의 길로 들어서고 만다. 사실 역사학계에서는 여전히 ‘민족’이라는 개념이 허구냐 진실이냐의 문제로 논쟁을 거듭하고 있다. ‘국가’는 확실한 실재實在이지만, 민족은 애매모호하다. 중국에 사는 조선족들이나 러시아의 고려족들이 과연 한국인일까. 피는 한국인이지만 그들의 조국은 중국이며 러시아이다. 단 한 푼의 세금도 낸 적이 없고, 국가의 위난 때 도울 길도 없다. 정서적으로는 한국 사람이지만 머나먼 ‘이웃사촌’일 뿐이다. 민족주의의 병폐는 배타성에 있다. 사실 영토 분쟁 등은 정치 놀음이다. 국내 판세가 불리할 때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렀다가 또 쑥 들어가곤 한다. 아직도 일제 때의 식민감정들을 들먹이면서 과거사에 집착하는 경우를 본다. 과거는 잊혀져서는 안 되지만, 동시에 과거일 뿐이다. 그 아픔을 거울삼아 미래 지향의 발판을 삼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들 세 나라의 정신적 공통분모가 불교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나는 그 불교의 힘이 중국적 패권주의를 누그러뜨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흑백논리 대신에 ‘관용과 조화’를 강조하는 불교정신은 미래 동아시아의 정신적 지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