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가정종찬(五家正宗贊)은 달마대사에서 육조와 설봉 스님에 이르는 고승 열두 분과 오가(五家)의 고승 예순 두 분 등 선가(禪家)의 고승 전기를 간략하게 적고 찬을 붙인 책이다. 여기에 있는 법안종의 종조인 법안 문익(法眼文益,885~958) 스님의 대강의 행장이다.
스님의 법명은 문익이며 여항 노씨 자손이다. 개원사 희각율사를 찾아 구족계를 받았으며 희각율사가 사명산(四明山)에서 교화를 일으키자 스님도 그곳에서 율의(律儀)를 익히고 유학과 문학 등 문장에 힘썼다. 스님이 두 도반 스님과 복주 서편 지장원에서 쉬다가 떠나려는데, 지장원 주지가 이들을 보내며 말하였다. “그대들은 늘상 삼계는 오직 마음이라고 말한다지!” 그리고는 뜰 아래 있는 돌을 가리키면서 말하였다. “한 번 말해보아라. 저 돌은 마음 안에 있느냐 마음 밖에 있으냐?” “마음 안에 있습니다” 그때 주지스님이 말하기를 “행각하는 사람이 무엇에 집착하여 돌덩이를 마음에 두느냐!”하니 스님은 할 말을 잃고 그 곳에서 머물면서 크게 깨쳤다고 한다. 당시 선종이 형식화 해가는 세태를 보고 <종문십관론(宗門十觀論)>을 지어 선사상을 실천할 것을 주장하였으며 특히 선과 교를 융합하는데 노력하였다. 법안종은 선종오가(禪宗五家) 중에서 가장 나중에 성립되었지만 영향력은 가장 커서 중국 전역에 전파되었고, 고려 불교의 변혁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되고 있다.
계침(桂琛)선사로부터 선법을 이어받은 뒤 임천 숭수원과 금릉 보은사에 머물렀으며 건강 청량사에서 법안종을 일으키고 종풍을 떨쳤다. 이때 유명한 화두인 이승권렴(二僧卷簾)이 나왔다. 無門觀 제 26칙으로 선승들이 점심 공양전에 입실하니 청량법안선사께서 손으로 발(簾)을 가리키셨다. 그 때 두 선승이 함께 가서 발을 말아 올렸는데 법안선사께서 “하나는 얻고 하나는 잃었다.(一得一失)”라고 이르셨다는 내용이다. 여기에 대하여 무문선사는 얻고 잃었다고 하는 의중을 헤아려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무문선사의 송(頌) 첫 구절에서는 주렴을 걷어 올려 밝은 하늘을 더욱 밝게 하였다.(卷起明明徹太空) 저 하늘이 밝은들 나의 근원에는 못 미치리라.(太空猶未合吾宗)고 하셨다. 이미 밝은 내 면목이 있는데 주렴을 걷어 더욱 밝게 할 일이 무엇이랴 하는 것이니 얻고 잃었다는 법안 스님의 말에 잡히면 그 의중을 헤아리기 어렵다는 말뜻을 대강 짐작할 수 있다.
이 그림은 남송의 화원 마원(馬遠, 13세기)이 그린 청량 법안스님의 모습이다. 조동종의 조사인 동산 양개스님을 그린 <동산도강도(洞山渡江圖)> 역시 마원의 작품이다. 이 청량법안선사 그림과 쌍폭을 이루는 <운문대사도(雲門大師圖)>도 전해지고 있는데, 이들 그림은 마원이 선종오가의 다섯 조사를 그린 것 중에서 세 작품만 전해졌다는 의견이 있다.
화면의 오른쪽에 보이는 분이 바로 법안선사이고 왼쪽에 있는 한 스님과 문답을 하고 있는 장면을 포착하여 그린 것이다. 붉은 가사를 팔에 걸친 선사의 얼굴은 어딘가 날카로운 인상으로 묘사되어 있다. 괴짜스런 화두를 던진 고승의 모습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라 생각된다. 화면의 대부분은 마원의 화풍대로 텅 비워놓았고, 화면 오른 쪽으로 늘어뜨린 구부러진 소나무 가지는 남송대 화원들의 트레이드마크와 같은 것이다. 화면 위에 쓰인 단아한 제시는 <동산도강도>, <운문대사상> 제시의 필체와 같은 것으로 남송 이종(理宗) 황제의 황후로 알려진 양매자(楊妹子)의 글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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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원(馬遠), <청량법안선사상(淸凉法眼禪師像)>, 비단에 담채, 79.2×32.9㎝, 남송 13세기, 교토 텐노지(天龍寺) 소장, 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