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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은 일본 대지진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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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즈로 본 세상 - 정은진/프리랜서 포토저널리스트 2012년 04월 362호

2011년 3월11일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지 1년 후, 나는 지금 이와테 현의 리쿠젠타카타(陸前高田)에 와 있다. 1년 전 쓰나미 발생 직후 동일본으로 달려갔을 때는 주유소의 기름도 부족했고, 후쿠시마 원전사고 때문에 동경에서 동일본으로 곧바로 가지 못하고 니이가타와 아키타 현으로 우회해 이틀 만에 간신히 현장에 도착했었다.
신칸센 및 보통 철도인 JR도 모두 끊기고, 고속버스도 끊겨서 필자뿐 아니라 다른 모든 기자들이 현장에 도착하는 데 애를 많이 먹었던 기억이 있다. 우리 일행은 다행히 기타카미라는 곳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쓰나미 발생 약 닷새 후 리쿠젠타카타로 겨우 갔었다. 그 당시 리쿠젠타카타는 폐허 그 자체였다. 아예 도시전체가 송두리째 사라져버린것 같았다. 오죽하면 택시 운전사였던 사토씨도 함께 놀라면서 “이렇게 심하게 파괴된 것은 처음 본다”고 말했을까.
1년이 지난 지금, 놀랍게는 나는 시외버스를 타고 하루 만에 동일본으로 왔다. 물론 곧장 리쿠젠타카타로 온 것이 아니고 동경에서 센다이로, 센다이에서 다시 케센누마로 버스를 타고 왔다. 대부분의 고속도로는 모두 복구가 됐고, 신칸센과 JR도 모두 정상운영이었다. 다만 기차는 너무 비싸서 버스를 타고 왔을 뿐이었다.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센다이에서 출발하는 버스는 이치노세키와 케센누마와 이곳 리쿠젠타카타를 거쳐 오후나토까지 가는 버스이다. 쓰나미 현장에 모두 버스가 다니다니! 너무나도 놀라운 사실이다.
일단 케센누마에서는 작년 쓰나미에 쓸려 내륙으로 들어온 큰 탱커 (유조선) 사진을 찍어야 했다. 그 탱커 주위는 이미 80% 정리가 된 상태였지만 아직 파손된 건물들은 남아있었다. 그 곳은 작년에 화재가 발생한 곳이기도 했다. 시내로 쓸려 들어와 주택가 한 가운데 놓인 탱커는 쓰나미의 상징이기도 했다.
케센누마에서 렌터카로 리쿠젠타카타로 오는 데는 30분 정도 걸렸다. 45번 고속도로를 타고 한참 달려서 해안가로 들어오니 리쿠젠타카타 시가지가 한눈에 펼쳐졌다. 이제는 거의 완전히 평지가 된 이곳에서는 큰 도로와 블록의 구분만 있을 뿐이었고, 쓰나미 전의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다. 건물이 있던 곳은 주춧돌처럼 밑바닥 모습밖에 볼 수가 없어서 마치 폼페이 화산폭발 현장 같았다. 아직도 그 형체가 남아있는 대형 빌딩도 그 안은 모두 파괴된 모습이었다. 평지 곳곳에서는 차량과 나무와 쓰레기 처리를 하는 포클레인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고, 2만여 명 주민 중 1,505명이 사망하고 234명이 실종된 이곳은 스산한 적막만이 감돌뿐이었다.
리쿠젠타카타의 피난민들은 작년 제1중학교 등 피난처로 가거나 친척들의 집으로 갔었으나, 이제는 5,568명이 가설주택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리쿠젠타카타 시청도 완전히 파손돼 간이건물을 시청으로 임시로 사용하고 있다.
케센누마에 쓰나미의 상징으로 대형 선박이 있다면 리쿠젠타카타에는 소나무 한그루가 상징으로 남아있다. 이곳에서는 “잇뽕 마츠 (いっぽん松)”라고 불리는 이 소나무는 200년 전 리쿠젠타카타의 해안에 심어졌던 7만 그루의 소나무 중 하나였다. “타카타 마츠바라 (高田松原)”라고 하는 이 소나무 밭은 1940년 일본 내에서도 아름다운 풍경으로 명명됐었으나 해안가에 심어졌기 때문에 작년 쓰나미 당시 무참히 파괴됐었다. 그러나 그 7만 그루 중 한 그루가 기적적으로 남은 것이다! 비록 바닷물로 인해 소나무의 뿌리가 썪어가고 있지만 이곳 리쿠젠타카타에서는 희망의 상징이 되고 있었다.
약 1만6,000명의 목숨을 앗아간 동일본 대지진. 1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쓰나미가 할퀴고 간 현장은 그날의 공포가 엄습하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