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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을 떠주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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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월헌 일기 - 대전大田스님 2012년 04월 362호

수보리須菩提 보살응리일체상菩薩應離一切相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득지재심得之在心
응지어수應之於手 설월풍화雪月風華 천장지구天長地久
조조계향오경제朝朝鷄向五更啼 춘래처처산화수春來處處山花秀 야부冶父 송頌
수보리야 보살은 응당 일체의 상相을 떠나서 위없는 보리심을 내어야 하느니라.
얻는 것은 마음에 있고 쓰는 것은 손에 있으니,
눈 위를 비추는 달빛과 바람에 날리는 꽃이요,
하늘과 땅이 세월 속에 장구長久함이로다.
아침마다 닭은 오경五更에 울고 봄이 오니 산과 들에 꽃들이 빼어나구나!

- 야부 송 -

중국 중당시대 시인인 백거이는 뛰어난 시작활동으로 당대 문인은 물론 온 백성의 사랑을 받았다. 백거이가 강주자사江州刺史로 부임하던 때의 일이다. 유명한 시인을 맞게 된 강주지방 사람들은 매우 기뻐하며 부임해올 날짜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주민들의 따뜻한 환영 속에 강주에 도착한 백거이는 제일 먼저 도림 선사를 찾아갔다. 강주자사의 방문에 스님들과 절 안 사람들은 들뜬 표정들이었다.
절의 살림을 주관하는 도감 스님이 백거이의 방문 소식을 전하기 위해 선사에게 뛰어갔다.
마침 도림 선사는 흙벽을 바르고 있었다. 백거이가 인사차 들렀다는 도감의 말을 듣고도 선사는 꿈쩍하지 않았다.
어느새 도감 스님을 뒤따라온 백거이가 조심스럽게 허리를 굽혀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도 선사는 흙벽 바르는 일을 멈추지 않는 것이었다.
이윽고 선사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자사는 군자인가 아니면 소인인가?\"
자신이 영접하지 않는 것을 이해하느냐는 물음이었다.
백거이가 대답했다.
\"군자가 되려고 노력합니다만…\" 백거이는 말끝을 흐렸다.
그 때 흙벽 바르기를 멈추지 않던 선사가 흙 판에 흙이 다 떨어졌다는 표시로 흙 판을 두드렸다.
그러자 백거이는 얼른 두 손으로 흙을 떠서 흙 판에 올려놓았다.
선사가 백거이의 더럽혀진 손을 잠시 쳐다보더니 말을 이었다.
\"그래, 자네가 그 유명하다는 백거이란 말이지.\"
백거이가 \"예\" 하고 대답하자
선사는 보일 듯 말듯하며 말했다.
\"겨우 흙이나 떠 주는 사람이구만.\"

선사의 말에 백거이는 머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과찬의 말씀입니다!”

높은 자리 낮은 자리는 누가 정하는 것인가?
두 팔을 걷어붙이고 손에 흙을 묻혀 두 손으로 올려주는 강주자사 백거이… 하심下心하여 낮은 자세로 백성을 돌볼 수 있는 심량心量의 소유자임을 도림 선사는 본 것이다.
“훌륭한 관리구먼”하는 칭찬에 백거이는“과분한 칭찬입니다”라고 답하는 것이다.
일용사日用事에서 좋은 마음을 내고 실행할 줄 아는 이라야 발길 닿는 곳마다 꽃 피고 새 우는 호시절好時節을 맞이하고 나아가 화엄회상華嚴會上에 참례參禮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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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大田 스님은 1990년 출가, 범어사승가대학을 졸업하고 제방선원에서 10 하안거를 지냈다. 현 순천 대승사 주지이며 재가불자를 대상으로 금강경오가해, 대승기신론을 강의하고 있다. 스님이 머무는 곳이 수월헌이며 여기 실리는 글은 오가해 강의 자료를 바탕으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