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장경판전 할미꽃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이달의 이야기 - 윤한상┃장경판전 근무자 2012년 04월 362호

뒷동산에 할미꽃 다시 돋은 할미꽃
싹 날 때 늙었나 호호백발 할미꽃

천만가지 꽃 중에 무슨 꽃이 못되어
허리 굽고 등 굽은 할미꽃이 되었나.

할미꽃 마나님 고개 숙이고
오늘도 무얼 그리 생각 하세요.

고개 너머 시집보낸 막내딸 아이
잘사는지 못사는지 궁금하세요.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인 60대 이상의 세대들이 어렸을 적에 부르면서 자란 추억의 노래 할미꽃 동요다

그 시대의 소년 소녀들은 봄이 되면 산천에 흐드러지게 피던 길가에 민들레 시냇가에 버들강아지 덤불 가에 찔레꽃 뒷동산 무덤가에 할미꽃 야산에 아카시아꽃 진달래꽃 향기를 맡으면서 자랐다. 이들 신토불이들은 급속히 전개 되어온 개발붐과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후 환경 변화 등으로 언제부터 인가 하나 둘씩 우리 주변에서 사라져 가고 있다.

할미꽃은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처럼 애달픈 전설이 전해져 온다.
3딸을 가진 할머니가 나이 들어 기운이 없어지자 시집간 딸에게 찾아 갔으나 부자로 살면서도 마음씨 나쁜 첫째 딸과, 둘째딸은 어머니에게 음식도 제대로 드리지 않고 박대한다. 결국 쫓겨난 할머니는 고개 너머 마을에서 가난하게 사는 막내딸을 찾아가다가 눈보라에 휘말려 길을 잃고 막내딸이 사는 마을 어귀에서 얼어 죽었다. 뒤에 이 사실을 알고 슬퍼한 막내딸은 어머니를 양지바른 언덕에 고이 묻었는데 이듬해 봄 무덤가에서 할머니처럼 등이 굽은 꽃이 피었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이 꽃을 할미꽃이라고 불렀다.

몇 년 전 장경판전 장주스님이 합천군 가야면 구원리 가야산 기슭에서 자생하고 있는 이 귀한 할미꽃 20여 포기를 구하여 장경판전 화단에 심어 놓았는데 매년 봄이 되면 겨우내 언 땅에서 할미꽃 새 싹이 제일 먼저 봄소식을 전하면서 선명한 자주색 꽃을 피운다. 이를 본 관광객들이 와 할미꽃 봐라 하고 이구동성으로 탄성을 지르며 몰려들어 구경하면서 여기저기서 카메라 사진 촬영에 바쁘다 외국인 관광 안내 가이드 들은 자랑스러운 얼굴로 우리 한국의 강산에서 피는 아름다운 할미꽃을 설명해주고 외국인들도 몹시 호기심을 가지고 본다. 특히 나이 드신 할머니 보살님들은 할미꽃을 60년 만에 보는 것 같다고 하면서 반가 와서 어쩔 줄을 모른다.

귀한 인연으로 팔만대장경 품에 들어온 할미꽃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으며 추억의 향수를 느끼게 해 주고 있다. 우리 강산 고유의 꽃이 우리 민족 최고 목조문화재와 함께 하면서 아름다움을 더해 주고 있는 것이다.

해열 이질 살균 등 어릴 때 배 아프면 뿌리를 케어 다려 먹으며 민간응급 치료약이기도 했던 할미꽃

전국 산야 어디에서나 피어나던 이들 추억의 꽃들을 떠올리면 그 시대 춘궁기 보리 고개의 혹독했던 가난도 함께 떠오른다. 그러나 수 천 년 이어오던 가난도 눈부신 과학의 발달로 불과 반세기 만에 모든 것을 바꿔 버렸다.
버드나무 가로수와 아카시아 꽃향기 속에 흙먼지 날리며 달리던 비포장 신작로는 아스팔트 포장 도로에 은행나무 벚꽃나무 가로수들의 천지가 되고 꾸불꾸불 정답던 논두렁길 들판은 말끔한 경지정리로 규격화 되어 옛 모습을 찾을 길이 없다.

마을 뒷산에 지천으로 자생하던 오리목 나무들이 자취를 감추는 등 기후 환경의 변화로 우리의 신토불이들은 점차 사라져 가고 외래종들이 밀려들어 오는 안타까운 세월. 아름다운 추억의 꽃 할미꽃을 보면서 신록의 향기 온 누리에 넘치고 아지랑이 아른거리며 만물이 소생하는 화창한 봄철에.
사내아이들 꼴망태 둘러매고 처녀들은 나물 캐는 바구니 들고 들로 산으로 쏟아져 나오던 개구쟁이 어린 시절의 봄날 향수에 젖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