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불안과 설렘이 함께하는 시간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이달의 이야기 - 김윤선┃파주 거주 2012년 04월 362호

비가 내렸다. 운동화 속 양말까지 젖었다. 내게 고운 비는 아니지만 곧 나무와 풀은 초록이 짙어질 것 같다. 쌀쌀한 날들이 가고 따뜻한 날들이 오는 신호겠지. 3월의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5년 만에 다시 학교에 왔다. 국어선생님이 되고자 대학원에 온 것이다. 원래는 졸업과 동시에 오려고 했는데, 사정이 생기면서 미뤘던 일이었다. 오랜만에 학교에 오면서 하고 싶은 공부를 한다는 생각에 기대가 컸다. 한편으로는 수업을 잘 듣고, 논문도 잘 써서 제 때 졸업해야 한다는 불안도 컸다.
내게 봄은 늘 불안과 설렘이 함께 왔다. 3월은 새로운 학교에 가거나 새 학년이 되거나, 첫 직장에 간다.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서 낯선 사람들과 함께 생활해야한다. 입학을 앞두고, 새로운 학교와 새로 만날 인연들을 생각하며 설레었다. 그리고 앞으로 해나갈 일들에 대한 불안도 함께했다. 그러고 보면 모든 시작은 봄과 같은 불안과 설렘을 준다고 해도 되겠다.
나는 ‘봄’을 주제로 최근 이야기 나눈 사람들과 관련해 내게 일었던 생각들을 이야기해볼까 한다. 이종사촌 여동생은 올해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다.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은 1, 2학년보다 20분 먼저 점심을 먹고 공부를 하는데, 학교에서 철문을 닫는다고 한다. 닫힌 철문을 보면 지금 학교에 있는지, 감옥에 있는지 모른다고 했다. 시간이 빨리 갔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해뜨기 전에 나가서 밤하늘에 별이 빛날 때, 집에 오는 생활의 반복일 것이다. 나도 그랬다. 그러면서 10년 전 내가 고등학생일 때처럼 지금의 고등학생들도 ‘대학’이 삶의 최종목표인 것처럼 학습 받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나는 수능시험에서 만족스러운 성적을 얻지 못하고 ‘내 삶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했었다. 대학입시 성적을 잘 받기에는 공부한 시간이 짧았고, 노력이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희망하는 학교에 갈 수 없기에 좌절이 컸다. 대학이 삶의 전부인 것 같았다. 그런데 대학에 와서 학과 친구를 사귀고, 학보사 취재기자로 서예가, 지적 공무원, 여군 대령, 연극배우 등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인생은 대학에만 있는 게 아니다’라는 것을 알았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마주하게 될 숱한 도전과 고민이 있었다. 대학에 편입을 하고, 사진 클럽에 들어가 다양한 지역의 친구들을 만나면서는 대학은 삶의 과정 중 하나라는 것을 알았다. 왜냐하면 그 친구들은 한국 밖에서 할 수 있는 일들도 살피며, 자신의 가능성에 도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수히 많은 것들, 살아가는 순간순간에 삶은 존재했다. 그리고 눈앞의 걱정거리들은 크게 느껴지지만 모두 지나가는 것이며, 할머니의 임종을 보면서 삶과 죽음 사이의 걱정거리들은 작게 느껴졌다.
그러나 이런 여유를 가지기까지 나는 ‘열심히 산다’는 생각에 매몰돼 무리하며 보냈다. 대학 마지막 학기를 한 달 남겨놓고, 출판사에서 일을 한 적이 있다. 그때 회사에 합격해 매우 들떴고, 자신감이 넘쳐 내 자신이 한계가 없는 사람인 것처럼 착각을 했었다. 입사 전, 나는 남은 수업을 못 듣는 것에 양해를 구하기 위해 학과 교수님을 찾아뵀다.

교수님은 “입사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가?” 물으셨다.
나는 “최고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답했다.
교수님은 지긋이 미소 지으시며,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셨다.
“그 분야는 최고가 아주 많은 곳이지. 체력이 가장 중요해. 그리고 모든 것은 살아있을 때 가치를 가진다는 것을 기억해. 내가 세상에 없으면 소용이 없는 거야.”

입사 축하 이야기를 해주실 줄 알았는데, 뜻밖이었다. 일을 하면서 교수님이 왜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 종종 떠올렸다. 그리고 몸이 안 좋아서 퇴사를 하면서 알았다. 교수님께서는 나의 지나친 열정에 몸이 상할까봐 염려하셨다는 것을. 아프고 나니 좋아하는 공부가 무슨 소용이며, 열심히 산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회의가 들었다. 나는 일이든 공부든 최선을 다해야한다고 여겨, 적절한 쉼 없이 퇴근 후에도 책상에 앉아 2~3시간 공부하고, 4시간 정도 수면을 취했다. ‘열심히’한다는 것과 무리한다는 것은 차이가 있는데 구분하지 못했다.
여담이지만 이렇게 몇 달 간 생활했던 것은 2006년 바티칸에서 본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때문이었다. 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 성당의 <천지창조>를 그린 후 눈과 목의 통증, 그리고 평생 구부정한 어깨를 가지고 살아야했다. 미켈란젤로의 그 열정은 이탈리아에 위대한 걸작을 남겼다. 나는 미켈란젤로만큼의 열정을 가지면 못해낼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누구든 그런 열정을 가질 수 있으며, 최고가 된다는 것은 자기 삶에서 행복해지는 것이라 여겼다.
지금은 열심히 하는 것과 무리하는 것을 구분하려 순간순간 경계한다. 이제는 ‘열심히’란 말 속에 ‘쉼’을 생각한다. 며칠 전 읽은 김정운의 『노는 사람이 성공한다』 서문에는 유대인의 노동철학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그들의 노동철학은 ‘잘 쉬어라’이며,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원칙이라고 한다. 이는 내가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위한 귀한 조언이다.
쓰다 보니 내 지난 이야기가 길어졌다. 나의 이종사촌 동생은 선생님이 되면 대학 말고도 좋은 얘기를 많이 해달라고 했다. 고등학교에서 와서 선생님들이 대학이야기밖에 하지 않는다며. 대학원 생활 2년 동안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많은 것들을 느끼는 시간을 보내야겠다. 또, 동생이 당부하는 말은 앞으로 2년간 함께 공부할 대학원 동기들과도 고민해보아야겠다.
입학 전 나는 불안했던 마음과 달리 매우 빠르게 학교에 적응하며, 즐겁게 생활하고 있다. 대학원 동기들의 이야기를 해보면, 현직 교사로 파견 온 선생님들을 제외하고 다들 나보다 나이가 어리다. 나는 그들을 동생이 아니라 친구라 여긴다. 나는 늘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시대적인 관점에서 ‘친구’라는 생각을 했었다. 친구를 사귐에 나이는 상관이 없다. 친구들과 식당에서 하루 세 끼를 먹고, 함께 고민을 나누면서 만난 지 3주밖에 되지 않았지만 몇 달을 다닌 느낌이 난다. 친구들에게 많이 배운다. 특히 주어진 과제를 미리미리 해놓는 모습은 부럽다. 나는 제출 전 날까지도 고민한다. 생각이 많은 게 과제의 질을 높일지 모르겠지만, 생각을 쉬는 시간이 점점 짧아지니 괴롭다. 몇 번 생각하고, 과감히 내려놓는 연습을 해야겠다.
동기들과 때때로 현재 교육의 문제를 이야기하며, 앞으로 교사가 되어 꿈꾸는 교육의 모습을 상상한다. 전국에서 모인 친구들은 각 지방의 말씨를 구사하는데, 나는 그게 무척 신선하고 재미있다. 정치 이야기를 하면서 자기 지방의 우세 정당에 대해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소신껏 투표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세상이 조금씩 변화하는 느낌도 든다. 이래저래 좋다.
불안하고 설레었던 3월이 지나간다. 진정 꽃 피는 봄이 오면, 나는 학과 세부전공을 택하고 시험기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부디 흥미에 맞게 선택하고, 열정적인 봄날을 보내고 있기를. 더불어 벚꽃 앞에서 국어교육과 동기들과 사진 찍는 모습도 그려본다. 얼른 벚꽃이 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