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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지와 보현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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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우소 - 종현 / 해인지 편집장 2012년 04월 362호

〈월간해인〉이 창간된 것은 1982년 3월의 일이다. 중고등부 학생회 지도법사를 맡고 있던 현장 스님께서 학생들을 지도하기 위한 포교용 회지로 시작한 것이 〈월간해인〉의 출발이었다. 당시 포교현장에서 월 회보를 발행한다는 것은 재정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형편이었고, 발행한다 하더라도 복사나 마스터 정도로 인쇄하면 그것마저도 훌륭한 회보가 되었을 시절이다.

그런데 〈월간해인〉은 아트지라는 고급종이에 활자인쇄로 8페이지를 갖추었고 내용도 당시 조계종정을 맡고 계셨던 성철 큰스님의 법문이나 벽화이야기, 법구경 등을 담은 올 칼라의 고급스러운 회보였다. 학생회보라기 보다는 월간지형태의 당시대를 앞서가는 명품 회보가 탄생된 것이다.

당시 지도 법사였던 현장 스님은 이 좋은 회보를 보현암에 있는 보현 스님께 보여드리고 조언도 구하면서 자랑도 할 겸 찾아뵈었다.

보현 스님은 누구인가.
일찍이 경주 사대부의 유복한집안에서 태어나 모든 신학문을 마친 비구니스님이었으며 이화여대를 다니면서는 시자(요즘의 보디가드)를 데리고 학교생활을 했을 정도로 포스가 대단하였다. 이런 분이 세간인연이 다하여 출가를 하였고 해인사 보현암에서 수행하고 있었다. 현장 스님은 그런 스님께 제일 먼저 보여드리고 인정을 받고 싶었다.

처음 발간한 해인지를 들고 스님을 찾아갔다.
“스님, 이번에 청소년 포교용으로 월 회보를 발행했는데 한번 봐주시소.”
해인지를 받아본 보현 스님은 대단히 놀라고 감탄해 하며 말하였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부처님 , 이렇게 귀한 책을. 감사합니다. 나무 관세음보살 마하살, 너무 보기 좋습니다. 너무 잘 만들었습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보현 스님은 해인지를 쓰다듬으면서까지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고 너무도 귀하게 여기시는지라 현장 스님은 몸 둘 바를 모르면서도 내심 기뻤습니다.

“스님, 그렇게 해인지가 잘 만들어졌습니까?”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보현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레야 똥딱게가 안되지요, 이레야 똥딱게가 안되지…”

화장실에 휴지가 귀하던, 웬만한 종이는 가위로 절단되어 해우소로 직행하던 시절, 노비구니스님은 부처님 말씀이 인쇄된 종이가 해우소로 직행 할 것을 안타까워하시며 해인지에 성스러운 기운을 불어넣어 주셨던 것이다.

요즘에야 똥딱게로 쓰진 않겠지만 가끔 사찰에서 화장실에 해인지가 놓여있는 것을 본다. 그럼 어떠랴! 똥딱게로 쓰지 않고 화장실에서라도 읽어주기만 한다면 그것으로 감사한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