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선禪에서 나왔을 것이다. 이십년 전 쯤 ‘마음을 비웠다’는 말이 유행했다. 대통령이 될 사람까지 낀 정치인들이 자신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말로 쓰기 시작하자 유명 인사들이 치재나 명성의 미련을 버렸다는 표현으로 이 말을 썼다. 물욕이나 명예욕 이기심 같은 것을 다 버리고 빈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얼마나 멋진 마음 가짐인가? 아마 불경이나 성경, 그리고 잘은 모르지만 이슬람이나 힌두교의 성전 내용을 한 마디로 말하라고 한다면 바로 ‘마음을 비우라’가 될지 모른다. 그러나 정치인들이나 유명 인사들의 실제 행태가 그 말이 그저 수사학적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줬고, 얼마 후에는 완전히 들어간 말이 되었다. 그래서 10여년 전 나는 시 ‘쨍한 사랑노래’에서 ‘마음을 비웠다’는 말 가지고는 당시 내 삶의 상태를 도저히 전할 수 없어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냥 마음 없이 살고 싶다’라고 노래한 적이 있다. 길지 않은 작품이기 때문에 전문을 인용해보자.
게처럼 꽉 물고 놓지 않으려는 마음을
게 발처럼 뚝뚝 끊어버리고
마음 없이 살고 싶다.
조용히, 방금 스쳐간 구름보다도 조용히
마음 비우고가 아니라
그냥 마음 없이 살고 싶다.
저물녘, 마음속 흐르던 강물들 서로 얽혀
온 길 갈 길 읽고 헤맬 때
어떤 강물은 가슴 답답해 둔치에 기어올랐다가
할 수 없이 흘러내린다.
그 흘러내린 자리를
마음 사라진 자리로 삼고 싶다.
내림 줄 쳐진 시간 본 적이 있는가?
마지막 줄의 ‘내림 줄’은 예전에 문서를 쓰거나 성적표를 작성할 때 마지막에 ‘이상 무(無)’의 뜻으로 아래로 죽 긋는 금을 말한다. 여하튼 다른 사람들보다도 마음에 욕망이 더 차 있는 사람들이 마음을 비웠다라고 폼잡으면 그 좋은 말 자체가 치명적인 상처를 입기 십상인 것이다.
정치인들이나 유명인사들 탓만은 아닐 것이다. ‘마음을 비운다’는 말 뿐 아니라 얼마 전까지 글에 자주 나오던 ‘삶의 여유’ 같은 말들도 어느 샌가 유통기한이 지난 말이 되어가고 있다. 시대의 빠른 발걸음을 좇다보니 차츰 시간을 쪼개 쓸 만큼 사는 일이 바빠졌고, 가까운 사람의 빈소 오가는 길에도 도중에 처리할 무슨 다른 일이 없을까 생각해보는 세상이 되었다. 러시아우어가 아닐 때 지하철 좌석에 앉아 편하게 책을 읽는다든가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는 사람들마저 사라졌다. 얼마 전 실제로 세어보니 승객 열 가운데 일곱 여덟이 휴대폰으로 말을 주고받거나 스마트폰 위에서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열심히 놀리고 있었다.
나는 무슨 큰 변화를 제안하지 않는다. 우리가 하는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 대부분은 몰라서 하는 것이 아니라 알고도 하는 것이다. 새해엔 어떤 일이 있어도 전처럼 앞만 보며 정신없이 살지 말고 여유를 가지고 슬로우 라이프(slow life)로 살아야겠다, 같은 중대결심은 나도 하나의 인간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같은 정직한 깨달음으로 끝나기 쉽다.
살다 보면 그래도 삶의 여유를 살짝살짝 들여다보게 되는 기대 않던 순간을 만나게 된다. 지난 해 12월 중순 총신대역 근처, 앞에서 군중 사이로 바삐 걷던 여성 한 분이 걸음을 멈추고 핸드백에서 무엇인가를 꺼내 들고 이삼십 걸음 되돌아가 구세군 함에 넣는 것을 보고 조그만 감탄을 했다. 모금함 옆을 지나가면서 습관적으로 돈이나 봉투를 집어넣는 것이 아니고, 잠시나마 시간에 꽉 매이지 않은 인간이 되어 되돌아가 기부하는 장면, 조그맣지만 구체적인 삶의 여유를 보여주는 순간이었던 것이다. 나도 모르게 다시 쳐다보니 참 우아한 분이었다.
지난 가을 일이다. 내가 일주일에 몇 번 산책을 나가는 현충원 올라가는 꽤 긴 골목길에 개를 데리고 나온 여성 한 분이 줄에 맨 개를 앞세우고 걷고 있었다. 귀여운 개군, 생각하며 같은 보조로 걸었다. 약수터 채 못 미쳐서 개가 걸음을 멈추고 엉덩이를 낮추더니 길에다 실례를 했다. 그 여성은 집게로 그것을 집어 들고 온 비닐주머니에 담고 잠시 머뭇대다가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다른 개의 마른 배설물도 같이 담는 게 아닌가! 만일 그녀가 망설이지 않고 다른 개의 배설물도 주머니에 담았다면 이미 습관이 된,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착한 행동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잠시 머뭇댐, 이것이 비록 작지만 삶의 여유를 새로 자기 것으로 만드는 순간이 아니겠는가. 여성과 개를 앞서 보내고 약수터 앞에 서서 문득 자신을 되짚어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황동규님은 193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했으며, 1958년에 현대문학 추천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어떤 개인날\" \"풍장\" \"꽃의 고요\" \"겨울밤 0시 5분\"등이 있으며 현대문학상, 대산문학상, 미당문학상, 만해대상, 구상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지금은 서울대 명예교수와 예술원 회원으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