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경제적 해석
한국은 제 스스로 독립을 성취하지 못했다. 미국은 우리를 해방시켜 준 은인이었으며 나라를 다시 세우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 한마디로 미국은 한국의 정치 후견인이었다. 그러한 미국이 지신의 국익을 위해서 한국에 미국문화를 심고자 기도한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특히 한국 사람들의 머리 속에 미국 문화를 심어 놓기에 기독교만큼 좋은 도구는 없었다. 한국 정치인들에게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열에 아홉은 김구선생을 꼽는다. 이승만을 거론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미국은 당시 군정 수반이었던 하지중장을 동원하여 김구를 밀어내고 이승만을 초대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미국은 자주독립을 외치며 전통문화를 신봉하는 김구보다 미국시민권을 가진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이승만을 선택했다. 한국에 기독교가 손쉽게 퍼져 나아간 것은 이러한 정치적 정황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경제적으로도 미국은 한국의 후원자였다. 대부분의 구호 물자들이 교회를 통해서 뿌려졌고, 일본인들로부터 접수한 적국 재산은 기독교인들에게 먼저 배정되었다. 한국을 미국 생산품의 소비시장으로 만들어 경제적으로 종속 시키는 과정에서 기독교가 그 첨병역할을 했다.
사회, 문화적 해석
이런 정치, 경제적 종속이론과 달리 한국 기독교의 성공에 대한 사회, 문화적인 해석도 있다. 근대화 과정을 통해서 유교나 불교 같은 전통 종교들이 설득력을 잃어가던 때에 기독교는 근대문명과 동일시되면서 거의 무조건적인 환영을 받았다. 서구사회에서 근대문명과 기독교는 상반되는 개념이다. 서구사회에서 근대화과정과 기독교의 사회적 영향력 행사는 반비례하는 과정을 겪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와 반대였다.
어떤 이들은 한국의 문화적 성격을 기독교 고속성장의 이유로 지목한다. 한국은 언제나 문화적 사대주의를 추종해 왔다. 한국은 중국문명의 주변국으로서 언제나 강대국 중국이 숭배하던 종교를 쫓아가며 받아 들였다. 중국이 유교를 숭배할 때 한국도 그것을 받아들였고, 중국어 천여 년에 걸쳐 불교를 숭배할 때 역시 불교를 받아들였으며, 그들이 다시 불교를 제치고 새로운 유교를 실천하게 되었을 때 한국은 또 다시 그것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미국의 지배를 받게 되자 한국 사람들은 아주 자연스레 그들의 종교인 기독교를 받아들인다. 지정학적인 숙명 때문에 강한 쪽에 붙어야 살아 남는다는 것을 몸으로 겪은 한국 사람들은 종교도 늘 강대국의 것을 추종하는
것이 체질화되었으며, 기독교의 성공은 그 결과일 뿐이다.
일본과 대만 그리고 한국
중국, 한국, 일본의 동북아시아 세나라는 비슷한 점이 많다. 고대서부터 근대까지 이들 세 나리는 역사적으로 거의 비슷한 과정을 거쳐 왔고 또 문화적으로도 유사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 중국은 20세기 초반에 공산국가가 되면서 전척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지만, 대신에 대만이 그 문화적 역사적 전통을 계승해 왔다. 따라서 이들 세 나라는 문화적으로 모든 면에서 크게 다른점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앞에서 든 이유들이 한국만의 이유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앞에서 든 이유들은 한국, 일본, 대만에 모두 한결같이 적용되는 이유들이다. 기독교가 활동해 온 역사,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배경은 세 나라가 모두 같았다고 봐야 한다. 어떤 이들은 문화사대주의 또는 종교사대주의를 한국에만 적용시키려 들지만, 한국만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일본이나 대만도 그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기독교가 한국에서만 성공한 한국만의 이유를 찾아야 한다.
시대적 과제와 종교
한국의 기독교가 성공 과정에서 펼친 운동은 선교와 사회사업이라는 두 갈래 길이었다. 선교도 적극적이었지만, 나는 후자에 주목한다. 사회사업은 교육과 의료의 두 부문에 집중되었다. 한국의 우수한 사립 학교들은 대부분 기독교 종립학교다. 다섯 손가락안에 드는 사립대학교 가운데에서 기독교 재단이 아닌 학교는 한 두개 뿐이다. 전체 숫자로 따지면 더 심각해진다. 병원도 마찬가지다.
한마디로, 나는 한국어l서 기독교가 고속성장을 거듭한 것은 그들이 한국사회의 시대적 현안에 헌신한 결과였다고 판단한다. 반대로, 불교를 비롯한 한국의 전통 종교들이 기독교에게 자리를 내 준 것은 그들이 한국사회의 시대적 과제에 헌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문맹 퇴치는 더 결정적 예이다. 근대화 과정에서 문맹 퇴치는 필수불가결의 시대적 현안이다. 한국 사람들의 문맹률을 급속히 낮추는 과정에서 기독교는 지대한 공헌을 했다. 전통종교인 유교와 불교가 알아듣지 못할 한문 투성이 경구들을 끊임없이 되뇌고 있을 때, 기독교는 의례와 경전에서 라틴어를 버리고 과감하게 우리말을 택했다. 그 결과 기독교는 한국 사람들의 문자 해독률을 높이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민주화운동은 더 좋은 예이다. 불자들이 궁금하게 생각하는 한국기독교의 성공 요인을 나는 이런 데서 찾는다.
한편 일본이나 대만의 불교는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했다. 의료와 교육에서 대만과 일본의 불교는 기독교가 헌신할 여지를 주지 않았다. 그들은 교육이나 의료뿐만 아니라 문맹퇴치와 민주화 운동에 이르기까지 시대의 현안에 충실히 헌신해 왔다. 이런 맥락에서 국민 절대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는 태국의 불교도 마찬가지다. 한국과 달리 일본이나 대만과 태국에서 기독교가 환영 받지 못하는 이유는 이렇게 분명히 존재한다.
한국 기독교는 이제 성장을 멈추었다. 교역자들은 신자들의 숫자가 감소 추세에 들어 섰다고 우려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단 하나의 이유가 전체 결과를 초래할 리는 없지만, 나는 가장 중요한 이유를 그들이 시대의 현안에 헌신하기보다 기독교의 교세 확장에 주력한 결과라고 믿는다. 이렇게 생각하다 보면, 이 시대 한국 불교의 지향점이 분명해진다. 비교종교학은 이처럼 다른 종교를 이해함으로써 자신의 신행信行을 반성하는 작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