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공적 영역의 행위다. 공공의 사안에 대해 국민의 의견을 수렴해 법 제․개정 등 입법 활동, 행정부의 감시와 견제, 국민 다수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안의 결정과 행정의 집행 등이 정치의 영역에 속한다. 따라서 국민이 내는 세금으로 정치행위를 도모하도록 하는 것이다. 직업정치인으로 대표되는 국회의원에게는 1년에 1억 원이 넘는 세비를 지급한다. 보좌관과 비서관 인건비, 사무실 유지비, 여비 등을 합치면 1년에 6억 원에 가까운 세금이 국회의원 한 사람을 위해 쓰인다.[‘우리 국회도 일 의원들 세비 인하 본받아라’, 서울신문 사설, 2012. 1. 18]
정치의 속성 중 하나는 국민의 권한을 위임받아 행한다는 점에서 대국민 서비스 행위다. 동시에 위임받았을지라도 권한을 행사한다는 측면에서 국민을 강제하는 권력 행위다. 많은 정치학자들은 정치를 필요악이라고 규정했다. 서비스보다는 권력 행위가 더욱 강하게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임받은 권력일지라도 일정기한(임기) 동안은 사실상 배타적으로 행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 특히 권력은 돈을 부른다. 이명박 정부는 물론 그 이전 정부도 권력의 단맛을 누리느라 여러 이권에 개입해 돈을 챙기다 덜미를 잡혔다. 그리하여 권력의 처음은 그지없이 영광스러우나 끝은 비극으로 끝나기 일쑤다. 정치행위가 순전히 공공성에 의해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공공성이라는 개념이 애초에 자로 잰 듯 딱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다수 국민들의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강력하게 추진한 ‘4대강 살리기 사업’을 예로 들더라도, 반대하는 측이나 추진하려는 측이나 모두 “강을 살리자는데…”라며 공공성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한다. 출발점은 공공의 이익에서 출발한다. 공공성 논란은 정답을 내리기 어려운 차원의 것이다. 공공성을 설령 계량화하더라도 일 더하기 일처럼 단순한 계산법으로 내려지는 셈법의 문제가 아니므로 계량화의 잣대를 들이대도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권력은 자기 잣대를 들이대며 반대자가 절대다수일지라도 막무가내로 나아갈 수 있다. 이것이 권력의 향기 속에 내재해 있는 독인데, 권력자가 가장 먼저 권력의 독에 중독되고 만다.
권력이 돈을 부르는 이유는, 권력의 속성이 편 가르기이기 때문이다. 권력은 얻느냐 아니면 잃느냐이다. 무승부는 없다. 정적과 싸워서 권력을 쟁취하고 유지하기 위해서 돈만큼 위력을 발휘하는 수단이 어디에 있으랴! 이것이 우리나라 정치 현실의 논리였으며, 지금도 부정할 수 없는 금과옥조처럼 떠돌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고 정치와 돈의 결합을 부득이한 것이니 인정하자거나 덮고 가자고 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 정치자금법은 정치인과 정당의 정치행위에 필요한 금품의 획득과 사용에 관해 규정하고 있다. 후원금을 받도록 하고 있다. 국민의 세금으로 정당에 보조금을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의 테두리 내에서 돈을 거두어 쓰라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경우의 정치인들이 이 테두리를 벗어나고 있다. 연일 한나라당 대표 선출 때 돈 통부를 돌린 사건 수사 상황이 보도되고 있다. 당시 한나라당 대표로 선출된 박희태 국회의장의 최측근을 구속하는 등 긴장도가 높아지고 있다. 민주통합당 대표 경선 과정에서도 돈 봉투가 뿌려졌다는 고발에 따라 이제는 민주통합당도 수사 대상이 되었다.
이 모습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절망스럽다. 울컥 화가 치솟는다. 국민들도 정치하는 데 돈이 든다는 것은 안다. 입장을 바꿔 자신이 한 표를 가진 대의원인데 수백만 원의 돈을 건넨다면,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입 다물면 아무도 모를 것이라면서 슬그머니 받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도 했을 것이다.
문제는 공공성을 지향하는 정치행위가 철저히 돈에 의해 좌우된다는 데 있다. 정책이 옳고 그름은 둘째 문제다. 나와 내가 속한 계파에 이익이 되느냐가 정치행위의 기준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정치는 실종되고, ‘돈 놓고 돈 먹기’라는 야바위판이 된다. 질서는 무너진다. 법은 허울 좋은 장식품 또는 힘센 자의 폭력도구가 된다. 정치와 권력은 대국민 서비스가 아니라 이권의 쟁취와 국민 위에 군림하는 폭력으로 대체된다.
다수 국민의 지지를 기반으로 한 정당 대표를 뽑는 선거가 돈 봉투에 의해 좌우되었다면, (지금까지의 정황으로 봐서는 그런 것 같다), 이는 공공성을 저버린 행위이다. 그런 정당은 권력을 통해 자기 계파의 이익을 챙기지 않을 수 없는, 공공성을 위장한, 국민의 지지를 이권 쟁취의 수단으로 둔갑시킨 사기이다. 투표권을 지닌 이들이 국회의원 또는 대의원들일진대 스스로 국민의 대표임을 저버린 배신행위이다.
검은 돈과 정치의 추잡한 결합이 여의도를 근거로 한 정치권만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우리 불교계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어느 교구본사 주지후보자 선출을 앞두고 돈 선거가 얘기가 나돌더니 급기야 호법부장 명의의 ‘금권선거 엄단’ 담화문이 발표되기에 이르렀다. 담화문에 언급한대로 돈을 주고받는 행위는 엄단해야 한다. 그런데 돈 선거가 어느 정도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기에 이런 담화문까지 나오느냐는 한숨소리가 들려온다.
돈 선거는 꽤 묵은 얘기다. 고질병처럼 선거 때면 도진다. 일부에서는 여비와 약값인데, 오랜 관행인데, 라며 관대한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우리 사회가 불교로만 구성되어 있다면, 저렇게 관대해도 괜찮다. 여비와 약값으로 이백만 원, 삼백만원은 기본이라는 것이 사회적으로 용인이 될까. 이 질문에 ‘그렇다’고 떳떳하게 답할 수 있다면 괜찮다. 큰 사찰일지라도 종무원 월급이 삼백만원 넘는 곳 많지 않다. 이, 삼백만원은 절대액수로도 푼돈이 아니다. 우리나라 가구당 평균 부채액이 오천만원을 넘어선 현실과 비교하면 거액이다.
선거제도에 보완은 이후 과제로 잠시 미뤄두고, 돈 선거를 근절할 총무원의 특단의 대책이 시급하게 있어야 한다. 총무원장은 종정宗政의 최고책임자이며, 기본권 보호기관으로서의 지위를 갖는다. “총무원장의 종헌 수호 의무, 종법안 공포권, 종무원 임면권, 사면․경감 및 복원에 관한 권한 등은 기본권 보장의 관점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종헌의 이해 119쪽) 종단이 불교의 전통과 종헌․종법에 의해 종단을 이끌어야 하는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돈에 의해 종단의 전통이 무너지고 선거 관련법이 무력화되는 사태를 방지해야 할 책임과 권한이 총무원장에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