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만에 강남역 근처에 나갔다. 지하철 1번 출구 방향의 역삼 세무서를 찾아가야 했다. 13월의 월급이라고 불리는 소득공제를 받으려면, 세무서에서 ‘홈택스 공인증서’를 신청해야 한단다. 거의 매일 집, 학교만을 다니는 나에게 시내를 나가는 것은 무슨 큰일을 하는 것과도 같다. 특히나 시내를 걷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너무 싫다.
마을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도시의 파란만장한 삶이 펼쳐졌다. 좌절된 야심은 지하철 입구에서 검은 얼굴로 담배를 피워대고 있었다. 그의 한숨이 섞인 회색 연기를 거쳐야만, 길 건너 세무서에 갈 수 있었다. 계단 초입에서 내 머리와 옷에 쾌쾌한 통과증이 찍혔다. 지하통로 입구에서는 도시의 이루지 못한 영화가 행인에게 광고지가 되어 달라붙는다. 화려한 전단지는 이 도시를 설명해 주는 매뉴얼이다. 우리가 매뉴얼을 폐기 할 수 없도록 이곳 어디에도 쓰레기통이 없었다. 할 수 없이 가방 속에 넣었다. 지하상가의 끝으로 나가기까지 우리가 과연 사람들을 얼마나 참아 낼 수 있는지를 시험해 보는 것 같았다. 사람에 치이며 그리고 사람을 치며, 결국 우리는 서로에게 쾌쾌한 냄새를 풍기는 장애물이 되었다. 도시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실제적인 폭력을 아무렇지도 않게 실현하고, 그 결과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싫어하는 상처 난 마음을 얻게 되었다.
어서 일처리를 하고 이 거리를 떠나고 싶은 생각뿐이다. 범죄현장에서 벗어나려는 범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빨리 걷는다.
“인경 씨!”
다른 곳에서, 여기서 아주 먼 곳에서 부르는 소리 같아서 무시했다.
“나야! 이게 얼마만이야?”
내 앞을 막아선 여자가 아득했다. 내가 어디서 이 늙고 가난한 여자를 알았던가 싶었다. 하지만 대충 아는 척하고, 지나고 싶지 않았다. 그 여자에게서는 낯선 곳의 향기가 났다. 이곳의 지옥과도 같은 삶을 떠났던 것이 분명한 향기가 내 코에 전해졌다. 깊은 산의 묶은 낙엽 향 같은 신선한 냄새이었다.
“나야, 법성화.”
“어머! 언제 돌아왔어요? 언니!”
나는 그녀의 집에 갔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가 집을 봐주고 있는 전원주택의 그녀의 방에 앉아 있게 되었다. 그녀와 나는 절친한 언니를 사이에 두고 ‘아는 사이’이다. 그 언니를 끼고 한두 번 만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절친한 언니가 스님이 된 이후, 굳이 만날 이유도 없는 ‘아는 사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바빠하고 묻더니, 별일 없으면 밥해줄게 자기 집에 가자고 했다. 세무서 일만 보고 그녀와 함께 광주 퇴촌까지 가게 된 것은 그녀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약 4년 전 쯤, 그녀가 다람살라로 떠났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그녀는 버렸다. 내가 살 수 없는 곳으로 생각하는 땅으로 그녀는 떠났다. 아무도 아닌 사람이 되기를 그녀는 작정했다. 그녀가 부러웠다. 심지어 질투까지 났었다. 그런데 오늘, 염색도하지 않은 하얀 머리에, 초라한 옷에, 보자기 같은 가방 하나 달랑 든 그녀를 강남 한복판에서 만난 것이었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나는 내가 모르는 곳의 작은 이야기들을 듣고 싶었다. 그리곤 언젠가 나도 이곳을 떠날 수 있다는 꿈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녀가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방에 있었다. 방은 정말 필요한 옷가지와 이불정도만 있을 뿐 아무 것도 없었다. ‘중도 아니면서 중처럼 사네.’라는 혼잣말이 절로 나왔다. 아마도 그녀는 다시 어디론가 떠나려는 것 같았다. 한데 방의 정중앙 벽에 액자가 기대어져 있었다. 하룻밤의 나그네가 유숙하는 방 같은 곳에 어울리지 않는 액자였다. 누리끼리한 종이가 붙어있는 것이 콜라주 같았다. 없는 살림에 예술작품이라니, 예전의 언니를 보는 듯해서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가까이 가서 작품을 관찰하는데, 이상했다. 작가의 사인도 없었다. 그렇다고 복제품도 아니었다. 자세히 보니 무슨 휴지 같았다. 유심히 보니 정말 휴지였다. 그것도 질이 아주 낮은, 인도(?)에서나 샀음직한 휴지였다. 그런데 액자의 틀은 돈 품께나 들여 맞춘 것이 분명했다. ‘저 언니가 혹시 잘못 된 것은 아니겠지.’하는 걱정이 들었다.
쪼르르 주방으로 나가서 휴지에 대해 물었다. “언니, 액자의 누런 휴지는 뭐예요?”
언니는 벌써 카레를 푸기 시작했다.
“응, 그거 선물로 받은 거야. 내가 다람살라에 살 때, 내 수행을 점검해주시던 린포체가 계셨지. 그 분이 수행만이 아니라 내 생활까지 걱정해 주시고, 챙겨주시는데 너무 고마운 거야. 그래서 한국 음식으로 그분을 대접하려고 저녁 식사에 초대를 했어. 초대를 받은 사람들이 하나씩 선물을 내 놓았지. 그 때 그 분이 미소를 지으시더니…, 그래 항상 웃으셨지.
내 방에 있는 티슈 곽에서 한 장의 티슈를 뽑으시는 거야. 그리고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을 천천히 우아하게 움직이면서 휴지를 접으셨어. 그게 하나의 퍼포먼스 같았다니깐. 우리가 얼마나 집중해서 린포체의 손가락을 따라갔는지. 그렇게 휴지를 접고 나서는 나에게 주시면서 “마음을 담아 드립니다.”하시는 거야. 얼마나 감동이었는지. 싸구려 휴지 한 조각이 이 세상에서 가장 갚진 선물로 변한거지. 다람살라에 살면서 마음이 담긴 휴지를 소중하게 간직했어. 그리고 서울에 오자마자 액자로 만들었지. 참 아름다운 선물이잖아.
난, 저 휴지를 볼 때마다, 린포체의 자비를 생각하고, 나 또한 린포체와 같은 자비로운 존재가 되기를 소원해.
그래서 내가 머리를 두는 곳에 마음이 담긴 휴지를 놓았어, 내가 자고 있는 동안에도 잊지 말고 내 첫 마음을 지켜 달라고.
나는 기도를 할 때, 휴지 속 마음을 향해 내 마음 속의 말들을 보내. 휴지가 누레지고 언젠가 닳아 없어지게 될 때, 내 마음 속의 말들도 닳아 없어지게 될 것을 믿어.
아주 처음은 싸구려 휴지였고, 그 다음에는 나한테 온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이었고, 지금은 나의 부처님이고, 나의 예수님이고 그래. 휴지였던 그것이 앞으로 무엇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 않겠어? 휴지가 무엇이 될지는 아마도 내 화두일거야.”
“인경 씨, 맛있게 먹어.”하면서 카레를 내 앞으로 밀어주는 저 언니가 예전에 내가 알던 그 언니가 맞나 싶었다.
“언니, 옛날 어느 고귀한 족속은 게처럼 꽉 물고 놓지 않으려는 마음 때문에 불행하다고 생각했데요. 마음을 게 발처럼 뚝뚝 끊어 버리고, 마음 없이 살다면 이 세상에서 가질 수 없는 참 평화를 누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 했어요. 그래서 그들은 3천겁 동안 마음이 없는 바위가 되어 살기로 했지요. 그래서 그들은 바위처럼 강건한 몸을 가졌고, 산처럼 무너지지 세상으로 자신을 둘러쌓아 올렸어요. 3천겁 동안 기쁨도, 슬픔도 몰랐어요. 하지만 평화롭지 않았어요. 마음이 없었으니까요. 그들은 긴 기간 동안 분노하지도 않았고 저항도 할 수 없었어요. 하지만 괴롭지 않았어요. 마음을 믿지 않았으니까요. 바위는 외롭지도 두렵지도 않았죠. 마음이 사라졌으니까요.
어느 날 바위 사이로 어디에서 왔는지 모를 꽃이 피어났어요. “인생은 아름답다고 죽도록 말해 주고 싶어요.”하고 꽃잎은 바위에게 사랑을 주었지만 바위는 느낄 수가 없어요. 바위의 머리는 처음으로 자신의 선택을 의심했지요. 그의 검은 몸에 작은 꽃이 죽어 떨어져도 슬프지 않았으니까요. 마음을 버리자, 그가 원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지옥에서의 완전한 관계를 만들었다는 것을 알았어요.
언니, 우리는 3천겁의 시간 중 어디쯤에 와 있을까요? 언니의 휴지는 작은 꽃잎의 마음 같아요. 언니는 또 떠날 거지요? 언니는 마음을 믿지 않는 세상에서, 그래서 마음이 사라진 세상에서, 마음에 이르는 미지의 길을 찾아 나선 바위 인간이니까요. 마음을 찾기 위해서 해가 돋아나는 산 너머까지 갈 테고, 바람이 피어나는 산 끝까지 갈 거지요? 나는 알아요. 언니가 찾아 간 그곳은 휴지의 마음이 별이 되어 솟는 곳일게 분명해요.”
법성화 언니가 꽃처럼 함박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