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를 통해 한 편의 기사 (스토리)를 완성하려면 기자 본인의 노력이 가장 중요하지만 주변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이 있다. 해외에서 취재활동을 할 경우 현지 통역이 가장 큰 도움을 주고, 취재과정에서 여러모로 도움 받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통역 이외에도 취재원이 인터뷰에 응하지 않으면 기사는 나올 수 없으며, 그들의 목소리를 전달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니까 한 편의 사진기사는 여러 보이지 않는 손이 모여 만든 합작품인 것이다.
이런 일은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있었고, 아프리카 콩고에서도 있었다. 그런데 가장 최근에는 우리나라 연평도에서도 일어났다. 연평도 폭격 1주년을 맞아 월스트릿저널(WSJ) 신문사와 취재를 갔는데, 그곳에서 취재원으로부터 잊지 못할 도움을 받았기에 그 이야기를 소개하려고 한다.
작년 11월13일 밤 9시경. 북한의 연평도 폭격 1주년이 되기 열흘 전, 나와 WSJ 펜기자, 통역 등은 현지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계신 김순옥 여사의 인도로 복구된 가옥을 돌아보고 있었다. 그 당시 나는 건강상태가 아주 좋지 않았다. 공황장애에 우울증, 불면증 등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나의 본분을 다 해야 했기 때문에 취잿길에 나섰다. 복구된 지역의 땅바닥은 시멘트로 덮여져 있었다. 나는 일행들과 새 집들을 돌아보다가 갑자기 오른쪽 신발 끈을 왼발로 밟아버렸다. 카메라를 들고 있던 나는 이내 바닥에 곤두박질쳤고, 바지의 양쪽 무릎 부분이 다 벗겨졌다. 바지만 찢어진 것이 아니라 양쪽 무릎과 손바닥도 찢어졌다. 특히 오른쪽 무릎을 많이 다쳐 계속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이게 웬 일이란 말인가. 내가 아무리 아프가니스탄과 아프리카를 휘저었어도 이렇게 심하게 넘어진 적은 없었다! 제3세계에서도 일어나지 않은 일이 바로 한국 땅에서 일어난 것이다. 함께 있던 사람들은 모두 놀라 나를 일으켜 세웠고, ‘괜찮냐’고 물어보았다. 아픈 것은 둘째 치고 나 때문에 취재에 지장이 있을까봐 너무 속상했다. 창피하기도 해서 울고 싶었다. 우리 일행은 마지막 취재를 마친 뒤 김 여사님의 카페로 돌아갔다. 여사님과 따님은 갖고 있던 의약품과 대일밴드로 응급조치를 취해주셨고, 특히 여사님은 자신이 입으시려고 사 놓았던 레깅스 바지를 나에게 빌려주셨다. 바지 무릎은 다 찢어지고 피로 얼룩져있었다. 간단한 응급조치가 끝난 뒤 나는 여사님께 레깅스 값이라도 드리려고 했지만 받지 않으셨다.
“이거 돌려주지 않아도 돼. 나한테는 어차피 작고 맞지 않아. 이거 입고 서울로 돌아가.”
함께 있던 통역도 나에게 자신이 갖고 온 대일밴드를 모두 빌려주고 걱정을 해 주었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나는 여사님과 여사님 따님, 통역에게 연신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를 반복했다.
그분들 덕분에 나는 그 다음날 아침 연평도에 있는 보건소에 가서 간단히 치료를 받은 후, 비록 절뚝거리기는 했지만 다음날 취재를 계속 할 수 있었다. 물론 여사님이 주신 레깅스 바지를 입고 말이다.
취재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온 후 계속 병원치료를 받은 결과 한달 후에는 무릎이 거의 낫게 되었다. 찢어진 바지는 폐품처리 됐고, 레깅스는 빨아서 잘 개어놓았다. 여사님께 다시 전화를 걸어 레깅스를 돌려드리겠다고 하니 한사코 받지 않으셨다. 괜찮다면 계속 입으라고 하셨다.
김 여사의 집은 연평도 폭격으로 말미암아 전소된 상태였다. 다른 주민들과 마찬가지로 찜질방과 임대 아파트, 난민 임시주택에서 피난생활을 했으며, 1년이 지나서야 집이 복구돼 예전의 삶으로 겨우 돌아가게 됐다.
여사님은 연평도에서 거의 평생을 사시면서 생활 속에서 선행을 실천하는 분이셨다. 섬에 사는 노인들을 위해 간간히 물건을 사주시는 것 뿐 아니라 베트남 소녀 2명을 후원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얼마 전에는 인간극장에 나온 민들레 국수집의 어린 딸 사연을 보고 폭격 후 정부에서 연평도 주민들에게 주는 위로금 5만원을 매달 기부할 계획이라고 한다.
김 여사는 “나는 폭격을 받아 힘들어도 나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있는 베트남 애들 때문에 위안이 돼”라며, “민들레 국수집에 나온 애기도 5만원만 보태줘서 후원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라고 하신다.
비록 연평도가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위험한 곳이 됐지만 김 여사는 연평도가 고향이기 때문에 절대로 떠나지 않는다고 한다. 내가 무릎을 다쳤을 당시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오히려 나를 위로하셨다. “마음을 내려놓고 살면 평화가 와. 그러니까 매일 행복하게 살아야 해”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