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후반인 1947년 해인사에서 자운 대율사를 은사로 출가, 47년 사미계, 53년 비구계를 받았습니다.
해인강원 졸업 후 76년 둥국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2004년 종단최고 품계인 대종사 법계를 품수하였습니다. 출가이후 10여년 동안 해인사 통도사 등에서 수학하였고 대강사인 운허스님께 많은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1959년 이후 10여년 동안 해인총림에서 강주 및 주지 소임을 맡아《치문 ·서장· 도서· 선요· 절요 ·능엄경》등 전승교학 주석서를 찬술유포 하였고 후학양성과 전승교육도량 활성화에 온힘을 쏟았습니다.
1970년 이후 20여년간 동국대학교에서 교수·불교대학장·교육대학원장·정각원장 그리고 총장을 역임하며 종립교육도량의 현대적 진흥 및 후학양성 그리고 교육행정에 헌신하였습니다. 이 무렵《남북율장비교연구》 등 4권의 계율저서를 통해 율장 및 교단사 연구에 매진하여 승단운영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하였습니다.
또 1991년 사재를 출연하여 한국불교의 교육·문화·출판 중흥을 위해 가산불교연구원을 설립하였습니다. 그리하여 1983년부터 발원한 세계최고최대의 불교사전 《가산불교대사림》 편찬을 시작하여 현재 12권을 발간하였고 나머지 원고 역시 거의 완성단계로서 마지막 윤문과 출판과정만 남겨두고 있습니다.
특히 《교감역주 역대고승비문》 전6권을 저술하여 한국불교문화인 보고인 금석문 연구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였고, 또 직접 조계종조 도의국사 및 나옹 경허 용성선사 외 50여기의 고승비문과 사적비를 찬술하시어 현대 금석문의 새로운 전범을 세우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끊임없는 연구로 〈간단작법에 대한 고찰〉 외 100여편의 논문을 발표하였고,
《가야산 해인사지》는 출가본사에 대한 서지학 및 각종 연구자료를 총망라한 대작 입니다.
이런 업적은 정부가 2001년 은관문화훈장을, 종단은 ‘포교대상’ ‘만해학술대상’으로 치하했습니다.
2005년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취임 이후 종도들에게 불교의 대사회적 자존심과 자긍심을 더욱 높였고 특히 〈범불교도 대회〉를 통해 ‘우리사회의 종교평화’라는 시대적 화두를 던진 대선지식 이셨습니다.
지관 대종사님께서는 2012년 양력 1월 2일 서울 성북구 정릉동 경국사에서 “무상한 육신으로 연꽃을 사바에 피우고 헛깨비 빈 몸으로 법신을 적멸에 드러낸다”는 사세게辭世偈를 남기고 법랍 66년, 세수 80세로 세연을 다하고 입적하셨습니다.
사세辭世를 앞두고
무상육신無常肉身 개연화어사바開蓮花於娑婆
환화공신幻化空身 현법신어적멸顯法身於寂滅
팔십년전거시아八十年前渠是我
팔십년후아시거八十年後我是渠
무상한 육신으로 연꽃을 사바에 피우고
허깨비 빈 몸으로 법신을 적멸에 드러내네
팔십년 전에는 그가 바로 나이더니
팔십년 후에는 내가 바로 그이로다. 2011년 9월 지관 식識
대한민국 정부는 민족문화 창달과 국민교화에 끼친 대종사님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2012년 1월 6일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