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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는 지네, 나는 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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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김용관 2012년 02월 360호

지네와 사마귀가 점심 먹으러 식당에 갔다.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담배를 잊고 왔다. 가위 바위 보를 해서 담배 사러 가기로 했는데 지네가 졌다. 그런데 담배 사러간 지네가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음식은 나왔는데…사마귀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나가 봤더니 그때까지 지네가 신발을 신고 있었다…. 요즘 유행하는 우스개 중 하나이다.
지네가 무슨 신발을 신을까마는 많고 복잡한 것보단 간결 단순한 것을 선호하는 세태를 보여주는 조크인 듯하다. 아무튼 뭐든 복잡하면 번거롭고 고장도 잦은 건 사실이다.
그런데 지네의 발이 몇 개나 될까? 궁금해져서 인터넷을 뒤져봤다. 무려 3천종이 있고 종류에 따라 발이 15쌍에서 170쌍이나 되는 것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한자어로 백족百足으로 불리기도 한다. 많기는 많네… 신발 신고 다니는 건 포기하는 것이 낫겠다.
지네하면 내겐 떠오르는 사적인 역사가 있다. 뭐 체험이라고 해도 좋고. 40년도 넘은 얘기지만 내가 다녔던 중학교도 여느 학교처럼 봄, 가을로 체육대회가 열렸다. 거기에서 치러지는 반 대항 단체경기를 나는 정말 싫어했다. 이름 하여 백족경기. 백족이 지네를 지칭한다는 사실을 안 건 얼마 되지 않지만 그 경기는 정말 지네를 연상시킨다.
다른 여느 학교에서도 볼 수 없는 이 경기를 당시 은사님들 중 어느 분이 생각해냈는지 모르지만 정말 사람 잡는 경기이다. 한 반 60명을 10명씩 나누면 6조가 된다. 이 열 명이 발 스무 개 짜리 한 마리 지네가 된다. 10명이 한 몸이 되기 위해 각자 앞사람의 등에 가슴을 붙이고 팔을 앞의 앞사람의 어깨에 올린다. 그리고 함께 띈다. 릴레이 방식으로 목표지점을 돌아오는데 토너먼트 방식이라서 8개 반 중 우승을 가리려면 많게는 4경기를 치러야 한다. 졸업하기까지 3년 동안 여섯번 이 행사를 치른다. 신입생들의 경기는 기는 지네에 불과하지만 2학년이 되면 이 지네는 뛰고 졸업학년이 되면 거의 하늘을 난다. 우승후보들의 질주는 아름답기 그지없다.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랬을 터이지만 선수들은 죽을 맛이다. 반 전체가 참여하는 경기인 만큼 꾀를 부릴 수 없고 열외도 허용되지 않는다. 체육대회가 다가오면 각 반마다 우승을 목표로 방과 후 연습이 맹렬해진다. 연습시간 역시 지옥 같다. 신체적 구속의 절정이다. 가슴을 앞 친구의 등에 바짝 붙이지 않으면 뻗은 팔이 그 앞 친구의 어깨에 닿지 않는다. 그렇다고 너무 바짝 붙이게 되면 앞 친구의 발에 걸려 넘어지기 일쑤다. 구령에 따라 10명이 함께 제자리에서 일사불란하게 발을 들었다 놨다 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제자리 뛰기도 어려운데 앞으로 나갈라치면 조화와 균형은 이내 무너지고 만다. 연습 도중 으르렁대는 일이 비일비재다. 발 떼는 게 늦느니, 빠르니… 등을 너무 바짝 붙이니, 어깨를 쫙 뻗지 않느니… 하면서 서로를 탓한다.
경기 도중에서 쓰러지거나 지네의 허리가 끊어지면 그 자리에서 형태를 완벽히 다시 만들어 경기를 계속해야 한다. 이미 경기에 졌더라도 여섯 마리 지네가 모두가 릴레이를 마쳐야 경기가 끝난다.
당시엔 괴로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참 교훈적인 경기였던 것 같다. 10명 모두가 한 마음이 되지 않으면 절대 뛸 수 없는 경기다. 사이가 좋지 않은 친구가 있어도 일단 마음을 합치지 않으면 안 된다. 선생님들이 우리들에게 가르치고 싶었던 것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나를 버리고 힘을 합하지 않으면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이런 깨달음이 수십 년이 지난 뒤에야 온다는 건 유감스럽다.
이런 생각을 갖고 지네를 비롯한 다족류들이 기어가는 모습을 보면 신기하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긴 몸통을 이끌고 가는 발들의 움직임은 가히 예술이다. 몸통의 움직임은 물결치듯 춤추듯 리듬을 탄다. 이런 움직임을 가능케 하는 것은 그것들이 유기체이기 때문이다. 유기체의 특성은 통일성이다. 통일성은 부분이 하나 될 때 드러나는 전체의 특성이다.
조심스럽지만, 불교에서 말하는 ‘하나’가 이런 의미가 아닐까? ‘일심一心’, ‘일념一念’, ‘일법一法’, ‘일원상一圓相, ‘불이不二’, ‘만법귀일萬法歸一’ 등등의 구절구절이 이 ‘하나’를 강조하고 있는 건 아닐까? 큰 꽃 작은 꽃 화려한 꽃 소박한 꽃. 온갖 꽃들이 꾸미는 화엄華嚴의 사사무애법계事事無碍法界가 유기체들의 움직임에 구현되어 있다는 생각은 비약일까?
그래서 살아있는 것들의 움직임에서 보는 세상은 참 경이롭다. 우리가 함께 사는 세상, 인간세도 그러하다. 우리 사회 이곳저곳에서 매일매일 백족경기가 벌어진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등 분야 곳곳에서…서로를 탓하며 으르렁대며 우리는 그렇게 삐걱대며 살아간다. 올해 임진년壬辰年 흑룡의 해는 ‘커다란 변혁의 해’라고들 말한다. 정치적으로도 총선總選이 있고 대선大選이 있다. 과거의 예에 비추어 우리들 스스로 여러 패로 나뉘어 자칫 삐걱대고 으르렁대기 십상이다.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는 경기, 모든 것을 거는 경기, 이긴 자가 독식하는 그런 경기는 이제 그만 뒀으면 좋겠다. 올해만 살고 그만 살 대한민국은 아니지 않은가. 대한민국에는 미래가 있고 미래에는 새 주역들이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올해 치를 경기를 더 나은 경기를 위해 하는 훈련으로 치자. 훈련을 통해 하나를 얻고 일심一心이 되자. 올해는 꼭 그 하나, 화합의 마음을 얻어 ‘기는 지네’에서 ‘뛰는 지네’로, ‘뛰는 지네’에서 ‘나는 지네’로 발전하는 한 해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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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월含月김용관 님은 동양대학교 교양학부 교수로 계신다.
KBS 베이징 특파원과 편집주간, 제주방송총국장과 해설위원실장을 역임하였으며 얼마 전에는 대한불교 조계종 포교원 홍보위원을 맡아 포교와 신행활동도 열심히 하고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