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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피는 이유를 알 수 없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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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땐, 별이 되어 - 정인경┃철학박사 2012년 01월 359호

구한 것 하나도 주어지지 않았지만, 내 소원 모두 들어 주셨다”

1. 입전수수入廛垂手: 그는 지팡이를 짚고, 큰 포대를 메고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은 그가 누구인지를 몰랐다. 평범하다 못해 조금은 우둔해 보이는 그를 스쳐 지나갔다. 사람들의 빠른 흐름을 방해하는 그를 툭 치고 갈 뿐이었다. 하지만 그가 지나가는 길 옆, 꽃대는 사람들이 이름도 모르는 꽃을 피웠다.

2.“나무야, 나에게 하느님의 나라를 보여주련…” 프란체스코의 바람을 들은 버찌나무는 봄날의 구름과도 같은 꽃을 피워 내었다.

3. 동네 사람들은 우리 집을 꽃집이라고 불렀다. 우리 집 마당에 서 있는,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심으신 라일락 나무 때문이었다.
나는 라일락 나무를 무척 좋아했다. 내 발이 바닥에 닿을 틈도 없이 나를 안아주셨다는 할아버지의 사랑은 기억 할 수는 없어도 할아버지의 나무는 내가 안을 수 있었다. 나무 밑동의 벌려진 곳에 내 몸을 넣으면 딱 맞았다. 머리를 뒤로 젖히는 곳에 나뭇가지가 받치고 있어서, 눈을 뜨고 하늘을 바라보기도, 눈을 감고 오렌지 색 빛을 바라보는 것도 좋았다. 엄마가 눈에 좋다고 준 안규유도 몰래 나무에게 줄 정도였다. 라일락 나무는 봄의 절정에서 이웃들에게도 즐거움을 주었다. 내 어린 시절의 라일락 꽃향기는 요사이의 것과는 달리 아찔하다 못해 독할 정도였다. 꽃이 만개해서 마당 전체가 꽃그늘로 덮이면 동네 할머니들과 아주머니들이, 우리 또래들이 “꽃향기가 좋구나.”하면서 찾아 들어 꽃이 주는 향연을 즐기곤 했다.

라일락 나무에 새순이 벌어지고 있을 때의 초봄 무렵이었다.
“어머나! 남의 집에서 뭐하는 거예요! 나가요!”
엄마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놀라 방문을 열어 제쳤다.

연두 빛의 새순이 돋아 난 나무 아래, 어떤 여자가 앉아 있었다. 더구나 우리 집 ‘복실이’를 안고 천연덕스럽게 엄마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큰일 났다 싶었다. 너무 급해서 마루를 통해 마당으로도 내려가지 못하고 툇마루를 넘어서 맨발로 엄마 옆에 섰다. 사실 나는 여자 때문에 놀란 것이 아니었다. 복실이는 사납고 안하무인격인 개였다. 어린 우리들을 주인취급도 하지 않는 도도한 개였다. 특히 막내를 제 밑으로 보고, 짖고 몰아대서, 언젠가는 막내가 장독대에 부딪혀 다친 적도 있었다. 우리가 손만 대면 “끙∼”거리면서 위협적인 이빨을 드러내던 복실이가 때 국물이 졸졸 흐르는 여자 품에 안겨서, 친구네 집 그림에서 본 한 마리 양처럼 순한 눈빛으로 엄마를 보고 있는 것이었다.

여자는 구걸하지 않았기에 거지는 아니었다. 복실이를 훔치지도 않았기에 개도둑도 아니었다. 엄마도 나도 그 여자를 미친 여자로 생각하기로 했던 것 같다. 다시 한 번 엄마가 떨리는 목소리로 나가라고 명령을 했다. 여자는 복실이를 꽉 껴 앉으면서 “추워서 그래. 몸 녹이고 갈 거야.”하고 어눌한 목소리로 말을 뱉듯이 했다. 나는 그 여자가 무서웠다. 하지만 집에는 태권도 9단(?)인 삼촌도, 살아있는 쥐를 물에 빠뜨려 죽이는 할머니도 없었다. 내가 보기에도 세상물정 모르는 엄마가 서 있고, 막내는 낮잠을 자고 있고, 둘째는 지금 동네를 싸돌아다니고 있었다. 이 집에서 할머니 다음으로 독해서 죽은 쥐를 쓰레기통에 버릴 수 있는 내가 나서야 했다. “복실이 내 놔!”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그 여자의 팔을 벌리려고 달려들었다. 팔의 여기저기를 막 물었다. “인경아, 그러지마.” 하면서 엄마는 오히려 그 여자에게서 나를 떼어내려고 했다. 그 와중에 복실이는 제 정신으로 돌아왔는지 사납게 찢기 시작했다. 일이 되려고 그랬는지 둘째가 마침 집으로 들어왔다. “야. 미친 여자야. 쫒아 내!” 둘째까지 달려들자 엄마도 힘을 보태기 시작했다. 미친 여자의 품에서 나온 복실이는 완전히 예전의 무시무시한 개로 돌아가 있었다. 엄마는 복실이가 그 여자를 물지 않도록 진정시켜야 했다. 드디어 우리는 미친 여자를 대문 밖으로 몰아 낼 수 있었다. 둘째가 재빠르게 빗장을 질렀다. 나는 복실이를 개집에 넣고 문을 닫아걸었다.

큰 파도가 지나자마자 동생과 나는 미친 여자가 누구네 집을 기웃거리고 있을지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궁금했다. 동생이 문을 열고 골목을 보았다. 우리 집은 골목 제일 안쪽에 있었기에, 대로에 맞닿아 있는 초입까지 한눈에 들어왔다. 당시 만화에 빠져 있던 동생은 만화적인 어투로 “이상하군. 그 사이 골목을 빠져 나갈 수는 없는데.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하고 보고를 했다. 이상했다. 나는 그 미친 여자 때문에 계속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히긴 싫었다. 당시의 서울은 대문을 열어 놓고 살았기에, 동생과 나는 골목 안 모든 집의 문을 열어 미친 여자를 찾았다. 어느 집에도 없었다. “연기처럼 사라졌군요.” 동생의 뒤통수를 한 대 때렸다. 집으로 돌아와 우리는 엄마에게 미친 여자가 사라진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렇게 쫒아내지 말았어야했어.”라고 엄마는 슬픈 얼굴로 말을 했다. 나는 엄마를 이해 할 수 없었다.

그 사건이 있은 후, 우리 집에는 세 가지 변화가 생겼다.
첫째는 복실이였다. 똑똑하고 용감한 개로 아버지와 삼촌의 사랑을 담뿍 받았었는데 찬밥신세가 되었다. 심지어 삼촌한테는 멍청한 개라고 발길질까지 당해 속병이 들었다. 차츰 회복이 되어서 가면서, 풀이 많이 죽어, 우리와 친할 수 있는 개가 되었다. 하루 종일 집 밖에 있는 아버지와 삼촌 대신에 거의 하루 종일 집에 있는 아이들과 좋게 지내게 되었으니 복실이에게도 나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태권도 9단의 삼촌에게서 받은 상처는 치명적이었는지 일찍 죽었다.
둘째는 그 해 봄 라일락 나무였다. 라일락꽃의 연보랏빛은 여느 봄과 다름없이 파란 하늘 아래서 아름답게 빛났다. 라일락의 꽃말처럼 ‘젊은 날의 추억’을 간직한 애수가 아름다움 속에 있었다. 라일락꽃 향기도 달밤이면 더욱 진해져 달빛 속의 꽃향기를 꿈에서도 맡을 수 있었다. 그런데 꽃과 향기가 봄이 다 지나도록 너무 오래갔다. 그 때 내 나이가 10살이었으니 그해 서울의 봄의 온도가 어떻기에 꽃이 오래간 것인지는 모르겠다. 여하튼 교정의 라일락꽃은 지기 시작해도 우리 집 라일락꽃은 여전히 싱그러웠다. 여름의 시작 무렵까지 꽃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는 라일락 나무를 볼 때마다, 미친 여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도대체 그 미친 여자는 누구인지가 궁금했다. 그것은 동생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어느 날 동생이 “누나, 어쩌면 그 여자 미친 여자가 아닐 수도 있어.” “미친 여자가 아니면 뭔데!” “…” 여름이 되어 꽃은 하나둘 씩 지기 시작했지만, 봄날 우리 집에 불쑥 나타났던 그 여자에 대한 의구심은 시들 수가 없었다.
셋째는 엄마였다. 엄마는 구걸하는 거지에게도 마치 탁발승을 대하듯이 했다. 탁발하는 스님에게 밥상을 올릴 때처럼 예쁜 소반위에, 귀한 그릇에, 정갈한 음식을 담아 거지에게 내주었다. 하지만 차마 안방이나 대청마루까지는 못 앉히고, 예전에 미친 여자가 앉았던 그 자리에 돗자리를 깔아 주었다. 그리고 “그때 그분을 그렇게 보내지 말았어야 했어.”라고 혼잣말을 하곤 했다. 미친 여자가 엄마에게는 ‘그분’이 되어 있었다. 당시 나는 엄마를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으면서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느 날 나는 울분을 터 트렷다.
“그 여자는 미친 여자였다고요.”
“사실 그날 아침에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리고 왔었어. 부처님 앞에서 삶을 누릴 수 있게 모든 것 갖게 해달라고 기도했지. 내가 너희들을 방패삼아 건강을 구했지. 행복을 해지고 싶어서 기도했지. 세상의 성공을 구했지. 그 날, 그분이 내 마음 깊은 곳에 있어서 나도 몰랐던 내 기도를 가지고 내가 너희들과 살고 있는 곳으로 오신거야. 겸손을 배우게 거지로, 행복의 지혜를 배우게 미친 여자로, 성취를 배우게 실패한 자로 오신거야. 우리를 찾아왔던 그 여자는 엄마도 차마 알 수 없었던 엄마의 기도였어. 너도 알잖니. 그 봄 라일락꽃이 피었던 이유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