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조선중앙방송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한 뒤 평양 중심가에서 오열하는 주민들의 모습을 방송해 내보냈다. 평양에는 김일성의 동상은 많이 있으나 김정일의 동상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대다수의 주민들은 김일성의 대형 동상이 세워져 있는 만수대 언덕에 모여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유튜브(Youtube)라는 동영상 전문 웹사이트에 가보니 주민들이 “아버지”라며 오열하는 모습과, 수십 수백 명이 동시에 흐느끼는 소리가 울려 펴지는 영상들이 많이 올라와 있었다. 비록 평양 안에서의 모습뿐이었지만 적어도 북한에서 주민들이 집밖으로 나와 집단 추모를 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많은 한국인들은 오열하는 주민들의 모습을 보고 “저게 연기인가 실제인가”가 가장 궁금하셨겠지만, 필자는 다른 데 시선이 갔다. 바로 바지를 입은 여자들의 모습이었다. 만수대에 모인 주민들은 어린 소녀들 몇 명을 제외하고는, 우리나라의 시장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 검은색 기모바지처럼 보이는 폴리에스테르 옷감의 바지를 많이 착용하고 있었다. 점퍼도 털이 달린 솜잠바나 심지어 진짜인지 가까인지는 모르겠지만 털 코트를 입은 여성도 있었다. 반면 남성들의 복장에는 그다지 큰 변화가 없어 보였다.
왜 북한 여성들이 바지를 입는 것이 대단해 보일까. 내 생각에는 북에서 여자가 바지를 입는 다는 것은 휴대폰을 들고 있는 여대생 사진만큼 충격적이었다. 왜냐하면 필자가 6년 전 평양을 방문할 때만해도 평양에서는 여성이 바지를 입는 일이 엄격히 통제됐었다. 모두 한복치마 아니면 정장치마를 입었던 것이다. 바지는 부르주아와 자본주의의 산물이라고 해서 치마 입기가 독려됐었고, 당시 9,000여명의 남측 방문단이 북측을 방문했을 때 한국인과 북한주민을 쉽게 구분하는 방법은 바로 여자들의 ‘바지’였던 것이다. 한국의 여성방문객은 전부 바지 차림이었고, 북한의 안내원과 주민들, 심지어 교통경찰까지도 모두 치마차림이었기 때문이다.
그토록 자본주의 산물이며 ‘조선여성’의 아름다움을 망가뜨리는 바지가 6년이 지난 후 평양 중심가, 그것도 혁명의 유적지이자 성지나 다름없는 만수대를 뒤덮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바로 북한이 내부적으로 서서히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의 주요 무역국은 중국이다. 조-중 국경에서는 지금 이 시간에도 화물차가 드나들며 북한과 무역을 하고 있다. 연변 시가지에는 중고물품을 거래하는 곳이 있는 데, 옷가지가 상당히 많은 물품을 차지하고 있었고, 북에서 직접 온 상인들이 물건을 해 가기도 했다. 이들 중에는 당국에서 통행증을 받아 합법적으로 무역을 하는 상인들도 상당수 있었다. 공산주의 사회에서 무역상이라! 모순되는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사실이었다. 북한은 대중對中무역에 대부분 의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의 시장과 마트에서 팔리는 기모바지도 중국산이 대부분인 마당에 북한에도 중국산 기모바지가 흘러들어갔을 것이다. 평양은 특히 지도층과 예술단원 등 ‘선택된 자’들이 사는 특수 도시이며, 중국 소도시에서 볼 수 있는 마트가 있었다. 그곳을 드나드는 주부들의 모습은 중국 동북삼성東北三省의 여인들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안내원이 신고 있던 구두도 중국에서 들여온 구두였으니 말이다.
물론 우리 관광단은 묘향산을 다녀온 것 말고는 평양 밖을 나갈 수 없었고, 안내원이 이끄는 곳만 갈 수 있었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의 전체 패션을 평가할 수 없다. 그러나 2011년 12월21일 현재 동영상을 통해 확인해 본 바로는 평양 여성들의 패션과 우리네 패션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는 것이다. 여자들의 경우 화장법이 조금 틀리고 피부가 좀 더 거칠다는 것 이외에는 (물론 건조한 평양 날씨탓도 있을 것) 남쪽의 시골풍경과 다르지 않았다. 아니, 너무 얼굴과 전체적 모습이 비슷해서 우리나라와 혼동이 될 정도였다. 말도 거의 똑같으니 같은 민족은 같은 민족이 아니겠는가.
바지 입는 평양 여성들의 모습은 북한 내 급변하는 상황을 대변해주는 것 같았다.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겠으나 내 생각으로는 북한의 지도층이 살고 있는 평양도 어느 정도 ‘자본주의적’인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오죽하면 김정일 사망 직전 대형마트에 현지지도를 나갔다고 하지 않았는가. 한 사회의 변화는 여성의 옷차림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