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은 그렇기에 더욱 범패를 후학들에게 가르치려고 한다. 스님은 은사 스님의 권유로 범패를 시작할 때부터 원력을 세웠다. 제대로 배워서 전통의 맥을 잇고 후학들을 가르쳐 범패를 확산시키겠다고. 남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분명하게 알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니 스님은 처음부터 철저하게 배웠다.
“처음에 범패를 배우겠다고 했을 땐 노장들이 대처승 되려고 그러느냐 무당 중이 되려고 그러느냐며 꾸중을 하셨지요. 창피해서 배운다는 말도 못 하고 배웠어요.”
그러다보니 불교 정화 이후 유독 범패만 맥을 잇지 못 했다. 그러다가 2006년에야 조계종에서 불교 문화와 예술의 보존과 계승을 위해 어산어장에 원명스님을 임명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스님은 공식적이지는 않게 몇몇 스님들을 가르쳐 오기는 했지만 2012년 3월에 서울 홍원사에 한국불교 전통의례 전승원을 열게 되면서 후학양성의 꿈을 이룰 터전을 마련했다.
“가장 방대한 불교전통의식인 수륙재를 발전시키겠다는 원력을 세우고 학인들을 지도하려고 합니다.”
기존의 교육과는 달리 전승원에서는 현장에서 필요한 의식을 집중적으로 가르칠 계획이다. 전문과정 2년, 연구과정 2년, 기술과정 1년으로 진행되는 동안 학장인 원명스님과 학감인 정오스님, 그리고 현준스님과 도경스님과 명조스님을 비롯한 저명한 교수들에게서 상주권공, 불교의식장단, 불교무용, 불교의식연구, 한글불교의식, 수륙작법 등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졸업자는 평가 후 원명스님의 어산법맥을 전수받게 되고, 조계종 3급 승가고시를 볼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된다. 조계종 교육원으로부터 인가를 받았기에 학인 스님들이 의욕적으로 전승원을 찾아 범패를 배울 것으로 보인다. 또한 각 사찰에서 필요한 의례를 하기 위해 제대로 배우려는 스님들의 발걸음도 많을 것이다.
“현재도 찾아와 배우는 스님들은 제대로 배워서 여법히 하겠다는 원력이 있기 때문에 참 열심히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승의 열정을 못 따라간다는 것이 후학들의 이야기다. 어떻게 하면 범패를 잘 할 수 있는지 스님께 여쭙는다.
“소리는 짓는 것이지요. 밥도 짓고 옷도 짓고 집도 짓듯이 주축을 세워 소리를 지어가는 거예요. 그렇기에 범패를 잘하려면 반드시 눈으로 들어야 해요. 녹음을 해서 귀로 듣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고 스승의 입을 봐야 해요. 소리 안의 뜻을 짓는 것이니까.”
뜻을 모르고 소리만 알 수는 없다는 말씀이다. 뜻을 알면서 소리를 알아야 신심이 나고 그것이 바로 범패라는 말씀이다.
“팔만대장경과 조사 어록의 핵심만 모아둔 것이니 범패를 배우게 되면 강원 졸업을 세 번 이상 한 것보다 훌륭한 실력을 갖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스님은 뜻과 소리를 함께 가르친다. 그러니 쉽지 않은 공부다. 그럼에도 원명스님은 수업하는 동안 한 대목도 놓치지 않고 계속해서 바로잡아주신다.
전승원의 범패 수업도 뜻과 소리를 함께 가르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한글화 작업도 계속해서 함께 해나갈 계획이다. 한자로 하는 범패를 젊은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없으니 한글화 해서 현대적인 곡을 붙이는 것이다. 전통은 전통대로 고수하되 한글화 작업도 해야 한다는 논란과 노력들이 오래전부터 계속되어 왔다. 그러나 각각의 사찰에서 다 제 멋대로 한글화를 하니 잘 못 번역해서 뜻이 달라지기도 하고 갓 쓰고 구두 신은 꼴이 되어 혼란만 초래하게 되었다. 그래서 스님은 승인 받은 것만 통용될 수 있도록 하자고 몇 차례의 건의를 했다. 우선 단기, 중기,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나중에 그것을 총망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불교적으로 음악적으로 문학적으로 전통적으로 풀어나가야 하는 것이니 한문 번역, 윤문, 국악, 현대 음악, 시인, 작가 등 최고 권위자들을 모아서 작업을 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작업을 한 것이 벌써 3년째 되었고 처음으로 반야심경이 통과해서 사용하도록 되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범패는 전통에서 소리를 얻지 않으면 한글화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소리를 안 배운 사람은 절대로 한글로 할 수가 없어요.”
스님은 선방을 오가면서도 범패를 하며 살아왔다. 그런 스님께 여쭙는다. 왜 그렇게 평생을 소리를 하며 살아오셨는지.
“1970년에 선방에 갔다가 해제철에 대중이 없는 도량에 혼자 앉아 캄캄한 밤에 소리를 하는데 황홀 경지에 빠져들었어요. 염불이나 참선이나 범패나 극치에 들어가면 다 한 길로 통한다는 것을 그때 이해했어요.”
잠시만 다른 생각을 해도 소리는 다른 길로 빠져나가버린다. 그렇기에 스님은 고요하고 고요해져서 무아의 경지 속으로 들어가신다. 번뇌 한 조각 없는 그 고요한 마음에서야 소리가 제 길을 간다. 들뜬 마음에서는 절대로 감동을 줄 수 있는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스님은 그것을 선원에서 수행하며 스스로 체득했다.
스님은 말씀하시는 사이사이 범패를 들려주신다. 스님과 차를 마시는 흐린 겨울 오후, 범패 소리가 한 순간 목울대를 타고 넘어와 몸통에서 서서히 울림이 된다. 그 여운이 오래도록 떠나지 않으니 몸을 에워싸던 겨울의 짙은 무게가 한 움큼 털려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