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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는‘기쁨’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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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백진선┃뉴트리엔 기자 2012년 01월 359호

그저 하루가 가고 또 하루가 시작되는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매해 마지막 날이 되면 서운해지고, 새해 첫 날이 되면 이상하게도 가슴이 부풀어 오르는 것이다. 사람이 이토록 우매하다. 특별히 ‘마지막’이라는 수식어를 붙이지 않아도 매순간이 다시 오지 않을 찰나라는 것을 그 때는 절대 알지 못하니 말이다.
매달 새로운 사람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기사를 쓰는 직업이다 보니, 일 년 동안 만났던 사람들을 떠올리는 것으로 나는 한해를 마무리한다. 올해는 어떤 사람을 만났더라. 취재일지를 뒤적이며 그 순간을 떠올리고 있으면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아름다운 잔영을 남기며 스르륵 넘어간다.

봄에 만났던 두 손 없는 소금 장수 아저씨. 충남 서산 부성염전의 강경환 사장이다. 어릴 때 지뢰를 잘못만지는 바람에 두 손을 잃은 1급 장애인은 성치 않은 몸으로 모은 소금을 자신보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아낌없이 나눠주는 인생을 살고 있었다. 한 해도 빠지지 않고 18년을 꼬박. 예견치 못한 불행에 농약 뚜껑을 딴 적도 여러 번이라고 했다. 그래도 그를 살게 했던 것은 ‘나 같은 사람도 어두운 곳에 빛이 될 수 있다’는 작은 희망이었다. 두 손목이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고무래로 소금을 모으고, 100kg이 넘는 소금을 외발수레에 담아 나르면서도 그는 행복하다고 말했다. 자신이 소금과 같은 존재가 되는 것 같아서 무척 기쁘다고. 그리고 그런 말도 했었다. 잘 보면 자신에게도 손이 있다고. 착한 사람 눈에만 보이는 아주 예쁜 ‘사랑의 손’이 여기에도 있지 않느냐며 민둥민둥한 두 손목을 자랑스럽게 내보였다.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귀한 손을 얻었으니, 이 손으로 많이 베풀고 살아야겠다며 그는 소금처럼 하얗게 웃었더랬다. 나는 아직도 그 때를 생각하면 코끝이 찡해진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 덧 점심시간이 되어 우리는 자장면을 주문했다. 두 손목으로 포크를 잡고 자장면을 비며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스레 가슴이 뭉클해져서 고개를 돌리자, 그가 포크로 단무지를 하나 집어 건넨다. 차마 고맙다는 인사는 못하고 그가 건넨 노란 단무지만 말없이 아작 깨물었다. 소금밭에서 먹는 자장면이 왜 그렇게 달게만 느껴지던지.
여름에 만났던 위안부 할머니와 외국인 봉사자. 꽃같이 곱고 어린 나이에 몸과 마음이 짓밟혀 한평생 슬픈 기억을 가슴에 품고 살아야 하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따뜻하게 위로해주던 금발 머리의 그녀가 기억난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쉼터인 ‘나눔의 집’에서 5년 넘게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있는 미국인 헤더 에번스 씨. 언어와 국경을 넘어 아픈 사연을 간직한 할머니들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고 있는 그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벽안의 외국인은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 밤낮없이 노력하고 있는데 정작 가슴 아파해야 할 사람들, 정작 발 벗고 나서야 할 우리는 이 아픈 역사에 등을 돌리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자 이내 가슴이 무거워졌다. “목숨이 다한다고 죽는 거야? 내가 죽어도 역사는 안 죽어”라며 일본의 사과를 받아내기 전까지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라던 이옥선 할머니의 손을 꼭 잡던 그녀. 취재를 마치고 돌아서는데 하늘에서 추적추적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 때까지도 머리 노란 외국인과 하얀 백발의 노인은 나란히 서서 오랫동안 내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할머니, 오래오래 사세요. 또 올게요.’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그 말은 가슴에 비가 되어 내리기 시작했다.
가을에 만났던 처녀 엄마 ‘해피홈’의 박서희 원장. 교도소에 장기 수감 중인 아버지를 둔 아이, 부모가 이혼해서 갈 곳이 없어진 아이,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어머니를 둔 아이…. 영화에나 나올 법한 사연을 간직한 아이들에게 엄마가 되어준 그녀. 결혼도 하지 않은 처녀의 몸으로 70여 명의 아이들을 감싸 안은 박서희 원장을 인천에서 만났다.
운명처럼 이곳에 이끌려오게 됐다는 그녀에게는 진짜 아들이 하나 있었다. 처음 해피홈에 왔을 때부터 자신이 맡아 돌보던 아이에게 진짜 엄마가 되어주고 싶다는 생각에 입양을 결심했다고. 아들은 그녀와 열일곱 살 차이. 사춘기 시절, 혼란스러운 성장 배경 때문에 속도 많이 썩였지만 이젠 누구보다 엄마를 먼저 생각하는 어른이 되었다며 말갛게 웃던 박 원장의 표정을 나는 기억한다. 아들이 이제 결혼할 때가 되었다며 처녀 엄마는 기쁜 듯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아들이 결혼을 한다니! 그 행복한 순간에 떠오르는 생각이 어디 한두 가지랴. 조그만 아이 손잡고 처음으로 학교 가던 날, 아픈 아이 업고 병원으로 뛰던 밤, 사춘기 아들이 집을 나가 3일 밤낮을 물 한 모금 제대로 삼키지 못하고 까맣게 속을 태우던 날들. 수많은 기억이 행복으로 접히는 날, 어찌 눈물이 안 날 수 있을까.
하얀 눈이 내리던 겨울에는 ‘쌀 산타’를 만났다. ‘사랑의쌀 나눔운동본부’의 이선구 이사장. 기증받은 쌀로 따뜻한 밥을 지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같이 빨간 밥차를 몰고 나타나는 사람이다. 따뜻한 밥 한 끼로 위대한 기적을 만들어 내는 그 사람을, 노숙인들은 ‘아버지’라고 불렀다. 취재 다음날, 이선구 이사장은 맛있는 점심을 대접하고 싶다며 서울역 근처에 위치한 무료 급식소로 나를 초대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쌀밥과 시래깃국, 두부조림, 그리고 후식으로 바나나 한 개. 노숙인들과 나란히 앉아서 수저를 놀리며 따뜻한 밥 한 끼를 먹었던 그 날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억만금을 주고도 절대 사먹을 수 없는 따뜻한 사랑밥 한 공기, 구수한 미소微笑국, 달콤한 행복 조림, 그리고 후식으로 활력 비타민 하나. 추운 겨울도 쌀 산타가 있어 조금도 춥지 않았다.

순식간에 일 년이 지나고, 나는 또 새로운 일 년의 첫 머리에 서 있다. 올해는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새로운 달력을 책상 위에 올려놓자, 가슴이 한 뼘 높게 부풀어 올랐다. 법정 스님께서 <아름다운 마무리>에서 그런 말씀을 하셨다. “어느 날 내가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면 그 사람이 나를 만난 다음에는 사는 일이 더 즐겁고 행복해져야 한다. 그래야 그 사람을 만난 내 삶도 그 만큼 성숙해지고 풍요로워 질 것이다.” 내 글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된다면 더 바랄 것 없겠지. 새해에, 나는 당신에게 그런 ‘기쁨’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