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월 11일부터 희망대장정이란 이름으로 서민들의 삶의 현장 곳곳을 다니며 일한 적이 있었습니다. 휴전선부터 땅 끝까지, 해 뜨는 동해에서 해 지는 서해까지 우리 땅 곳곳을 다니며, 함께 일하고 함께 아파하고 함께 꿈꾸며 겨울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부산공동어시장에서 야간작업을 하고, 강원도 탄광에서 막장 경험을 하고, 중소기업에서도 일하고, 치매 노인들을 돌보고, 포항에서 시금치를 다듬고, 담양 딸기밭에서 일당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생각했습니다. 정치인이란 애국심과 진정성만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아픔을 보듬고 희망을 만들어 낼 정책능력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그리고 2010년 지방선거에서 도민들의 지지를 얻어 경남도지사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1년 반이 지난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나름대로 성실하게 일했다는 자위도 해 보지만, 또한 많은 부끄러움이 있습니다.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서민 대중들의 삶, 그리고 희망을 잃어가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 사회 지도층의 한 사람으로서 책임을 느끼고 있습니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무역 1조 달러를 달성했습니다. 세계 7위입니다. 그리고 1인당 국민소득 2만 4천달러로 세계경제의 위기 속에서도 적지 않은 성취를 이루어 내었습니다. 참으로 자랑스러운 국민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외적 성장 뒤의 그림자는 짙고 깊습니다.
임진년 새해에, 우리사회를 바라다보면 우울하기 그지없습니다. 900만명에 가까운 비정규직 노동자, 사실상 100만을 넘는 청년 실업자, 세계 최고 수준의 소득 불평등과 부의 대물림, 최악의 출산율과 자살률, 특히 OECD 평균의 3배에 달하는 노인 자살률, 천정부지로 치솟는 전․월세값과 물가는 서민들의 삶을 극한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점점 더 사람이 살기 어려운 세상으로 치닫고 있는 것 같아 걱정이 많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이상향을 꿈꾸었습니다. 불가에서는 불국정토로 표현될 수 있겠는데, 서양에서는 유토피아, 동양에서는 대동 세상이라고 했습니다. 명칭은 달라도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공정한 기회가 보장되고, 노력의 결과와 경제적 산출물들이 각 구성원들에게 합리적으로 배분되고, 또 뒤쳐진 사람들에게는 복지혜택이 주어져, 모든 국민들이 저마다의 꿈을 꾸며 행복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사회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공자는 ‘대동大同 세상’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 큰 도가 행해진 때에는 온 세상이 공평무사하였다. 현명한 사람과 유능한 사람을 선발하여 일을 맡기고, 신의를 말하며 이웃과 화목한 것을 중시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기 어버이만 어버이로 여기지 않고 자기 자식만 자식으로 여기지 않았다. 늙은이는 편안히 삶을 마칠 수 있고 젊은이는 일할 곳이 있으며, 어린이는 양육을 받을 수 있고 홀아비나 과부․고아․자식이 없는 사람과 불구자도 모두 부양을 받았다. 이 때문에 간사한 꾀가 막혀서 일어나지 않고 도적이 일어나지 않아서 대문을 열어놓고 닫지 않았다. 이것을 대동大同이라고 한다.”
반면에 ‘대동 사회’에 대척점에, 즉 서양에서 말하는 디스토피아로 ‘재앙 사회’가 있습니다. “큰 도가 사라지게 되면 사람들이 천하를 사가私家로 삼는다(대도기은大道旣隱 천하위가天下爲家). 세상 사람들은 자기 어버이만 어버이로 여기고, 자기 자식만 자식으로 여긴다. 재물이란 재물은 모두 자기 한 몸만을 위해서 저축하고, 힘들 일은 자기가 하지 않고 남에게 넘겨 버린다. 대인(사회의 지도자)이라는 사람들이 대대로 녹을 후하게 타먹는 것을 당연한 상식으로 알고, 성곽만 높이 쌓고 도랑만 깊게 파는 짓만 일삼아 쓸데없는 일만 벌인다. 합리적인 예禮에 근본하지 아니하는 자가 최고의 지위에 있는 사회를 ‘앙殃’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재앙의 사회”라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가는 길이 ‘재앙 사회’가 아닌가 하는 기우를 떨쳐 버릴 수 없습니다. “한 중생이라도 지옥에서 고통 받는 자가 있으면 성불하지 않겠다”라는 지장보살님의 서원까지는 아니더라도, 영광스럽게도 법전 종정예하로부터 웅기雄氣라는 법명을 직접 받은, 불자의 한사람으로서 마음이 아픕니다.
그런데, 어려운 처지를 호소하는 도민들을 만나다보면 제가 아무런 해결책도 주지 못하는데도, 도지사가 성의껏 들어 주었다는 것만으로, 새로이 힘을 얻고 돌아가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말에 진정으로 귀를 기울이는 것이 필요하다. 소통 보다는 경청이 우선이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귀가 그렇게 큰 이유도, 중생의 소리와 아픔을 남김없이 들으신다는 것의 한 상징이지 싶습니다.
우리 불자님들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이웃의 아픔, 외로움을 진정으로 듣는 귀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귀 기울여 듣게 되면 이해가 되고, 이해가 되면 보살행은 이루어지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도 새해에는 ‘모든 것을 다 들으시는 부처님의 귀를 닮고 싶다. 모든 걸 듣고 모든 걸 치유하는 천수관음의 자비를 닮고 싶다’는 발원을 세워봅니다.
김두관 님은 1959년 남해에서 태어났다. 남해 제일고등학교와 동아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남해군 고현면 이어리 이장, 남해군수, 행정자치부장관, 대통령 정무특별보좌관, 열린우리당 최고위원을 역임하였다. 현재 경상남도지사로 재임중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