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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개의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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續 선과 그림이야기 - 김현정 2011년 12월 358호

이왕에 목계(牧溪, 1225~1265), 법상法常 스님의 알쏭달쏭한 그림 이야기를 했으니 하는 김에 몇 작품을 더 감상해야겠다. 지난 호에 감상했던 <원학관음도猿鶴觀音圖>는 꼼꼼하게 그 내용을 짚어보고 나니 대강 짐작이 가는 바가 없지 않아서 나에게도 크게 도움이 되었다.
남송시대는 유, 불, 선의 삼교三敎가 서로 문턱 없이 서로 넘나드는 시대였다. 그래서 문인의 그림이나 선승의 그것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들 모두 자연 산수山水를 수행처로 삼기위해서 그것을 화폭에 담았으며 표현은 공통적으로 간결하였다. 그래서인지 선화가인 목계의 산수화나 화원화가인 마원(馬遠 1160/65?~1225?)의 선화 화풍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들의 그림은 모두 묵희墨戱에 가까운 것이어서 문인이 전문이 아닌 취미로 수묵화를 그리는 것처럼 기법에 구애되지 않는 자유로운 제작태도를 견지 하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서예에서 ‘초서삼매草書三昧’라는 말과 같이 자유로운 붓질 가운데서 그 뜻과 정신을 강하게 드러내 보여주려고 했던 것이다. 묵희란 말은 ‘먹에 의한 놀이’라는 의미로 희묵戱墨, 희필, 희작이라고도 한다. 이미 북송 문인화에서 이러한 그림들이 시작되었지만 남송대에 와서는 이러한 생각이 널리 퍼져 선화를 그리던 작가들 사이에서는 우연한 효과처럼 보이는 것들도 계산된 작업으로 전개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목계의 그림 중에서 많이 알려져 있지만 도판을 구하기 쉽지 않은 <육시도六柿圖>라는 그림이 있다. 그야말로 딸랑 감 여섯 개를 그린 그림이다. 참 쉬운 것 같은데, 이 또한 해석하기가 쉽지 않았다. 감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지, 게다가 여섯 개라는 알다가도 모르겠는 숫자까지 더하면 그냥 이것도 큰 의미가 없는 ‘묵희’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도 그럴 것이 화면 속 감은 아주 적절한 위치에 잘 배치되어 있으며, 채색을 하지 않은 먹으로만 그려진 그림인데 여섯 개의 감은 각각의 농담을 달리하면서 원형의 리듬감을 살리고 있다. 감은 일렬로 나란히 있지만 그중 세 번째 것을 약간 화면 앞쪽으로 배치하여 농담이 다른 감들과 앞 쪽에 나와 있는 한 개로 이 그림의 원형적 공간을 조성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작가는 이 여섯 개의 감을 가지고 무엇을 이야기 하고 싶었을까.
이런 부류의 그림들은 그림의 조형성이나 내용보다는 결국 뜻을 전하는 의도이니 단서가 될만한 것을 이것 저것 붙여보는 수밖에 없다. 우선 그림의 제목인 ‘여섯 개의 감’이란 단어의 ‘육시六柿’이다. 육시는 육시六時 즉 여섯 때로 글자를 치환해보니 마침 ‘법화삼매法華三昧’를 가리켜 ‘육시오회六時五悔’라고 한단다. 이는 하루를 아침·낮·해질녘·초저녁·밤중·새벽으로 나누어 정하여 참회·권청勸請·수희隨喜·회향廻向·발원發願 등 5문門의 차례에 따라서 죄를 소멸시켜 가는 수행 방법이다. 이를 위해서는 신身, 구口, 의意를 잘 단속하여 결국 깊은 선정에 들어가 삼매를 이루게 된다는 것이다. 육시를 법화삼매로 본다는 것은 꽤 그럴듯한 해석이 될 수 있겠다 싶다. 또 다른 방법으로 접근 해보면 감을 의미하는 시柿는 베푼다는 보시의 ‘시施’로도 읽을 수 있다. 보시는 나라는 집착, 내 것이라는 집착이 없을 때 비로소 할 수 있는 것이므로 보시의 실천은 선禪의 대의에 가깝다. 또 다른 글자를 대입해 보면 감 시柿에는 시市가 소리 부분으로, 시장은 중생들의 다양한 군상群像들이 삶을 의지하는 곳이다. 이것을 여섯六과 결합시켜 보자면 육도六度를 윤회하는 중생들을 그리고자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앞에 나와 있는 감 하나는 육도 중 중간계이자 가장 귀한 인연인 인간계를 지칭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김에 여섯 개의 감은 가장 대중적으로 육바라밀六婆羅密의 실천이라는 대승적 실천 수행을 보여주는 것으로도 해석해볼 수 있다. 또한 우리의 감각을 받아드리는 기관 즉 눈(眼), 귀(耳), 코(鼻), 혀(舌), 몸(身), 생각(意)의 육근六根이라고 하니 이것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지 않나 싶다.
요즘 감이 참 맛있는 철이다. 마침 구례에서 올라온 실한 감이 있어 그림처럼 여섯 개를 탁자에 늘어 놓고 이 까다로운 그림에 맛있는 감이라니…, 이런 생각에 빠지면서 한 가지 해석에 한 개씩 깎아 먹다보니 감은 어느 새 다 뱃 속으로 들어가고 동창이 훤히 밝아 오는데, 감을 먹고 감을 보니 대강 감이 잡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