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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가을의 끝자락에서 강원 생활의 끝자락을 바라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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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대 - 선담┃해인사 승가대학 4학년 2011년 12월 358호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게 하는 것이 가을이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앙상한 나무 아래 풍성하게 떨어진 낙엽을 보고 한 때의 푸르렀던 모습을 되돌아보게도 하고, 옷깃을 저미게 하는 바람에게서 따스했던 봄여름의 날들을 되돌아보게도 하는 것같이, 가을은 걸어왔던 길을 돌아보게 하는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되돌아설 때 보이는 것은 아직 내려놓지 못한 추억에 대한 그리움과 그 외로움의 잔재들이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가을이 짙어지면 더욱 그러해 지는 것 같고, 이러한 시절, 산문의 절에 있기에 더더욱 그러해 지는 것 같다. 산문에서 가을의 끝자락을 유심히 볼 수 밖에 없는 초심자의 마음은 하늘을 받치고 있는 산기둥에 마지막 잎새처럼 매달려 있는 것 같기만 하다. 무상하다. 무아다. 괴롭다. 가을이다. 가을을 본다. 나를 본다. 잔재를 본다.
외로움을 지니고 있는 존재에게 수 많은 낙엽들은 간혹 걸음을 멈추게 하고 위를 올려다 보게 만든다. 앙상함을 보고 싶은 것일까, 하늘을 보고 싶은 것일까. 앞만 보고 가다 뒤를 돌아보는 것과 아래만 보고 가다 위를 올려다 보는 것은 다른 것일까, 같은 것일까.
막 동안거 결제를 한 산문의 늦가을은 존재의 무상함을 만끽하며 수행에 열중할 수 있게 해준다. 늦가을에 매달려 언제 떨어질지 모를 무상한 감정이 참된 행복을 위한 수행에 박차를 가하게 해준다. 이 같이 좋은 날, 강원 생활의 끝자락을 알리는 공기의 내음을 맡으며 글을 쓰고 싶어하는 마음은 어떤 마음인지 도통 모르겠다. 외로운 기억의 잔재가 글을 쓰고 싶어하는 존재로 화현한 것인지도 모른다. 무엇하나 확실히 아는 것이 없음을 알았기에 말하고 글 쓰는 것이 보통 어렵고 두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하고 있는 이 짓은 무엇인가.
다음 가을을 만나면 알 수 있을까. 유정이든 무정이든 존재를 드러내고 싶은 괴로움은 재미난 일이란 것이 있었기에 드러낼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재미난 일, 그것은 모두와 함께 미소 짓고, 웃고 싶다는 바램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누군가가 ‘재미난 일은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면 가을에게 무엇이라고 말해 주어야 할까. 조금도 망설임없이 ‘출가해서 수행하는 일이네’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마음은 불법이란 걸 배우고 싶어 출가를 했다고 하는 것 같은데, 무상하다. 무아다. 괴롭다. 이러한 것을 보았기에 불법을 배우고 싶었던 것이었을까.
해가 지는 시간이 짧아져 간다. 가을 날씨에 물들었던 외로운 고독감도 마지막 잎새처럼 떨어지지 않을 줄 알았는데, 옷을 따스히 갈아입는 사이 어디로 갔는지 없다. 외로운 고독감이란 것도 한 때였던 것이었겠지. 시간이 흐르고 공기의 내음이 달라지고 계절이 바뀌는 사이 기억의 감정도 흐르고 달라지고 바뀌는 것이었겠지. 감정이란 것이 청아한 달빛의 그림자였음을 모르는 바가 아니게 된 것이었겠지. 그래도 그 감정이 있었기에 가을다운 계절이 되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길을 걷다 보면 고비를 만나게 된다. 산란하게 되기도 하고, 울게도 되기도 하고, 화나게 되기도 하고, 되돌아가고 싶어지게도 되는 등. 그래도, 모든 길에는 길 가는 이를 재미나게 만드는 고비도 만나게 된다. 고비의 자락이 드리워졌을 때, 그래도 갈 수 있는 이유는 아마도 웃게 만들고 미소 짓게 만드는 재미난 무엇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아무리 고된 길을 가게 되더라도 미소를 짓게 만드는 상비약쯤은 적어도 한 두알 쯤 지니고 있는 것이 지혜로운 이의 삶이 아닐까.

스님이라는 수행자의 길을 가는 문을 열어주기도 하는 것이 강원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현재는 승가대학이라는 말로도 통용되고 있다. 한국 불교에서 부처님 법에 의지하여 수행의 길을 선택한 초학자들에게 강원은 그 기초교육과정으로 자리매김 된지 반세기가 넘었다. 기초교육과정이라고는 하지만, 이십 여 년 전까지만 하여도 강원과정을 마치면 법상에 올렸다고도 하니, 기초라고 하지만 기초가 아닌 과정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무슨 일이든지 제일 중요한 것은 기초라고 할 수 있겠다. 기초가 튼실하면 모든 일이 잘 돌아가게 되어있다. 초심자에게 있어서 강원이란 곳은 세속의 포장도로를 깨엎고 갈고 다시 엎어야 하는 생활을 해야 하는 곳이다. 그래서 자고 일어나는 습관부터 바꾸지 않으면 안될 만큼 쉽지 않다. 그래도 수행하고 싶은 길로 들어선 존재는 힘들고 어렵다고 하면서도 오로지 앞으로 간다. 이 길 밖에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힘들어도 갈 수 있는 이유는 웃음과 미소라는 베어링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 웃음과 미소는 도반들이 있기에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강원 생활을 하게 되면 단체 참회는 도반 만나러온 누구나가 맛보는 일이라고 여겨진다. 그 날 해야 하는 일 이외의 시간에 절을 하는 것이 단체 참회의 묘미라 할 수 있겠다. 강원 생활을 하면서 지켜야할 위의를 어겼을 경우 등등에 그 잘못을 절로 반성받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비슷한 것이 군대에도 있지 않나. 단체로 군기를 잡는 것 말이다. 그러고 보면 ‘군대의 전신은 절이다’라고 하는 얘길 들어본 적이 있다. 고비를 넘을 때가 재미난 것임을 모른다면, 미소 짓고 웃을 줄 모르는 것이라고 말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에 와서 곰곰이 되돌아보니, 강원 생활을 재미나게 하기 위해 따로 노력을 해본적이 없는 것 같더라. 이 몸과 불이不二인 길을 가는 도반道伴들을 만났기에, 그 자체만으로 재미난 강원 생활이 될 수 있었던 것 같더라. 이 몸이 세상 사는 일이 재미나서 출가出家했겠나. 출가해서 사는 일이 복덕이니 공덕이니 하니 출가했겠나. 살다보니 이 몸은 출가란 것이 최고로 재미난 일인 줄 알고 있었더라. 출가자에게 출가는 특별한 것이 아닌 것 같더라. 다 함께 인생을 살아가는 하나의 모습인 것 같더라. 더구나 수행 좋아하니 이걸 봐도 수행같고 저걸 봐도 수행같더라. 수행 좋아하니 모든 일을 좋아할 수 밖에 없겠더라.
이 어리숙한 행자야. 아서라 아서. 못난이 들으면, 살생도 수행이요, 도적질도 수행이요, 음행도 수행이라고 하것다. 요놈아.
맛소, 맛소. 수행 좋아한다는 이 쌍것이 어디서 망나니 같은 말을 했네그려. 수행은 무슨 수행. 수행할 것이 어디 있갔소. 헤헤.
가을 바람은 겨울 바람 만큼은 아니지만, 차디찬 것이 가끔은 딴죽을 걸기도 하제. 거기에 놀아나니 좋던.
좋을 리가 있갔소. 그래도 이 재미로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오. 이 묘한 법 맛 에 나가라고 해도 안나가고 있었으니….

강원 생활의 끝자락에서 재미난 일은, 도반을 보고만 있어도 미소가 지어지고 웃음이 난다는 것이다. 웃고 싶지는 않은데, 미소는 나온다. 미소가 나오다 보면 언제가 한번은 웃게 된다. 같은 길을 가는 이들이 살갑게 곁에 있어주기 때문일까. 싫지만 싫지 않은, 재밌지만 재밌지 않은 생활이 강원 생활이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