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다녀오시는가 봐요?”
“네, 저 위에 있는 절에 다니러 왔지요.”
사실 택시 운전사는 우리 모녀가 모텔골목에서 나오는 것을 보았다. 우리 가족이 다니는 절은 신촌에 있다. 처음에는 절 입구에 모텔이 하나, 둘 생기더니, 이제는 절 주위 사방팔방이 모텔이다. 큰 행사 때마다 법당 문을 활짝 열고 신도들이 입을 모아 경을 읽노라면, 마치 사바세계의 결정판인 모텔을 향해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는 듯 한 착각이 들곤 한다.
“아, 그 골목 위로 절이 있었군요. 몰랐네요. 저는 기독교 신자지요.”
나는 속으로 택시 잘못 탔구나 싶었다. 이 기사 양반이 ‘불신지옥’류의 전도를 할까봐 걱정이 되었다. 다행히 어머니와 같이 있으니 알아서 하시겠지 싶었다. 이 택시에 올랐을 때, 나는 이 택시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이 세상에서 제일 깨끗한 택시 같았다. 깨끗함에 대해서 강박증이 있는 나에게도 놀라운 정도로 모든 것이 깨끗했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택시 안의 정결은 따뜻한 청결이었다. 통상 정결한 것들은 냉정하기가 쉽다. 내 집에 온 친구들이 콘도 같다고 하는 것이 그 이유 때문이다. 내가 ‘청결’에서 하수라면, 운전기사는 고수였다. 그런데 그가 내 첫인상을 깰 것이 틀림없는 선교를 하려고 운을 떼고 있는 것이었다.
“보살님, 제가 어떻게 하느님을 만나게 되었나 말씀드려도 될까요? 선교는 아니고요, 노보살님 인상이 너무 좋으셔서 그저 제가 살아온 인생 한자락을 말씀드리고 싶네요.”
우리를 보살이라고 부르는 고단수였다. 절대로 길이 막히는 일 따위는 없어야한다. 어머니는 사탕발림에 넘어가 그가 살아온 인생이 궁금하다고 맞장구를 치셨다.
“제 어머니는 무당이셨지요. 제가 국민학교를 다닐 때 쯤 무병을 앓으셨던 것 같아요. 아버지는 저희 어머니에게서 자식을 10명이나 보았지만, 어머니에게 못된 병을 옮겨줄 정도로 팔난봉꾼이셨죠. 남편도 없이, 어려운 살림에, 줄줄이 딸린 자식을 여자 혼자 어떻게 건사했을까를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핑 돕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무병을 앓으셨나 싶습니다.
어느 날, 해가 중천에 떴는데도 자고 있는 어머니를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처음에 저와 동생들은 어떤 미친 여자가 누워 있는 줄 알았죠. 맨발로 어디를 어떻게 돌아다녔는지 군데군데 찢기고, 머리는 헝클어지고, 곳곳이 흙투성이고…. 동네 사람들이 어머니가 이상하다고 언질을 주었는데 드디어 어머니가 미치는구나 했습니다. 그날 밤 잠자는 척 하면서 어머니를 지켰지요. 어머니는 자다가 벌떡 일어나더니 제정신이 아닌 사람처럼 집을 뛰쳐나갔지요. 재빠르게 일어나 어머니를 쫓아가는데, 어머니가 인간의 걸음걸이로는 갈수 없는 보폭으로, 성큼성큼 가는 것이 마치 축지법이라도 쓰는 것 같았어요. 저 멀리 내달리는 어머니를 보며 엄마, 엄마하고 목이 터지게 불렀지만 어머니는 하얀 점처럼 줄어들더니 사라졌지요. 이런 일이 거의 매일 일어나더니 끝내 어머니는 반년동안 집을 나가셨지요.”
“그럼 반년 후에 무당이 되어 돌아오셨겠네요?” 나도 모르게 이야기에 빨려 들어가 맞장구를 쳤다.
“돌아오신 어머니는 예전 어머니와 다르지 않았어요. 동네 사람들은 어머니가 내림굿을 받았다고 했는데 어머니는 굿을 하지도, 점을 보지도 않았지요. 근데 마을에서 어떤 청년이 도둑으로 몰려 경찰서에 붙잡혀 가게 되었는데, 어머니가 그들을 막아서면서 ‘그 청년은 누명을 썼다. 마을 뒷산 몇 번째 소나무 밑을 파 보아라. 거기에 없어진 돈 뭉치가 있다’라고 했고, 사람들은 어머니에 대해 익히 알고 있기에, 혹시나 해서 파 보았는데, 웬걸 옷가지로 똘똘 싼 ‘소판 돈’이 나온거지요. 당연히 옷의 주인이 범인이었구요. 그런 일이 있은 후부터 사람들은 어머니를 찾아와 점을 보기 시작했지요. 어머니가 무당으로 공식적으로 데뷔하자마자, 나와 동생들도 저절로 무당의 자식이 된 겁니다. 어린 마음에도 얼마나 억울하던지 뒷산 소나무에게 화풀이를 많이 했지요.”
운전기사가 주먹 쥔 오른 손을 올려 보여주었는데, 그의 단정한 외모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울퉁불퉁한 혹들이 달려 있었다.
“무당을 미신으로 취급하고, 어머니를 무시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답니다. 어머니의 첫 굿판은 어려서 죽은, 제 또래 아이의 씻김굿이었는데, 제가 그 날 넋대를 잡게 되었답니다. 굿 판 언저리에서 내 어머니가 추는 춤을 고즈넉이 바라보고 있었죠. 무당이 넋대를 잡고 흔들다가 내 앞으로 오더니 넋대를 내 손에 쥐어주는 것이 아니겠어요. 무당이 된 어머니의 눈은 무서울 정도로 형언해서 도저히 거부할 수가 없었답니다. 넋대가 제 손에 쥐어지자마자 몸 안으로 뜨거운 기운이 폭포수처럼 흐르더니 넋대가 흔들리고, 제 몸도 흔들리고, 저는 저인데도, 죽은 아이가 되어 그 아이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제 마음은 당장이라도 굿판을 업어버리고 그만 두고 싶은데, 제 몸은 굿판 한가운데서 죽은 영혼의 말을 토해내고 있었지요. 굿이 끝나고 저는 뒷산에서 짐승처럼 울었습니다. 어머니를 떠나자, 나와 어머니를 아는 이 사람들을 떠나자, 아무도 없는 곳으로 떠나자. 허공을 향해 외치고 또 외쳤습니다.”
우리 모녀는 눈물을 닦고 있었다.
“중학교 때부터 객지로 나왔지요. 그리곤 교회에 스스로 갔습니다. OO 대학교에 입학해서 서울로 오게 되었고 OO교회를 다녔습니다. 거기서 아내를 만나게 되었지요. 아내는 그 교회 목사님의 딸이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탄식이 나왔다. “이상해, 꼭 그렇게 만나요. 왜 하필이면 교회의 목사님 따님일게 뭐예요!” 세월이 흘러 이미 그 따님은 기사님의 아내가 되었지만 택시 안의 우리 셋은 그 시절 그 고통에 있는 것 같았다.
“그 사람이 교우가 아닌 여자로 느껴지자 내 어머니가 무당인 것을 고백을 했지요. 헤어지고 만나기를 몇 번 했지만 도저히 헤어질 수가 없었지요. 근 10년을 서로가 안타깝게 바라보기만 했죠. 목사님을 설득하는 것보다 이제 어머니를 개종시키는 것이 더 빠를 것 같았습니다. 어머니를 찾아 고향으로 내려가기 전까지 100일 금식기도를 했습니다. 아니 10년을 기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하지만 어머니를 뵙는 순간 아무 말도 못하고 목 놓아 꺽꺽 울기만 했습니다. 얼마를 울었을까. 무당의 눈이 아닌 착한 어머니의 눈이 나를 바라보며 말을 했죠. ‘아드님, 이 어미가 아드님 한을 왜 모르것소. 내 마음에 한이 뿌리깊이 박혀 어미를 부박하게 흔들 때, 성주님이 내 몸에 드셔 내 한을 춤으로, 말로, 기도로 풀어 주셨소. 어미는 성주님께 대한 보답으로 떠도는 영혼과 사람들의 한을 풀어주었소. 선무당인 어미를 찾아든 그 무엇과 누구에게도 허투루 대한 적이 없소. 아드님, 한을 놓고 가시오.’ 그날 어머니는 못난 아들을 위해 성주의 깃발을 내리셨지요. 그리고 몇 년 후 돌아가실 때는 아들이 죽어서 갈 예수님 곁에 먼저 가 계시겠다며 개종을 하셨지요.”
우리 모녀는 가방에서 휴지를 꺼내 눈물, 콧물을 닦았다. 그 와중에 택시는 이미 아파트 현관 앞에 서 있었다. 택시에서 내려 서로 모르는 사이가 된다는 것이 아쉬웠다. 아파트 진입로 사라지는 택시의 꽁무니를 바라보면서 미처 하지 못한 말을 했다.
“오늘밤 저도 한 시인처럼 말이 별이 되는 꿈을 꿀 거예요. 거짓에도 믿음이 담기게 하는 말이 반짝이는 꿈을요. 미친 지껄임에도 진실이 담기게 하는 말이 하늘로 올라가는 꿈을요. 병든 외침에도 희망이 담기게 하는 말이 꺼지지 않는 꿈을요. 이런 말이 별이 되지 않는다면, 별에서 들려오는 그 많은 말들은 어디서 온 걸가요? 고마워요. 택시별. 오늘 밤, 새로운 별이 솟은 이유를 알게 해 주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