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도심의 포교당
80년 이후로 포교당(신설) 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현재 전국적으로 100 여개로 추산되고 있는데, 서울이 그 중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여 강남지역만 해도 스무군데쯤 되고 그밖에 공단이나 신홍주택가를 중심으로 꾸준히 새로운 포교당이 늘고 있다.
이들 포교당은 대개 상가나 주택의 일부를 세낸 것을 법당으로 개조하여 사용하고 있어 ‘빌딩법당’이라고 불리우며, 원력있는 스님 한 사람에 의해 시작되는 것이 보통이다. 따라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기 전까지 겪게 되는 어려움이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재정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기존의 사찰에 대한 선입견이 강하게 뿌리박혀 있어 ‘사이비’로 몰리기도 하는가 하면 극성스런 이교도의 방해로 의욕을 잃게 되는 수도 많다. 앉아서 신도가 찾아주기만을 기다리는 식의 자세로는 얼마 못 가서 청산하는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래서 개설은 늘고 있지만 성공(?)하는 예는 많지 않다. 서울에서 이제 웬만큼 자리가 잡한 포교원으로는, 여래원(82년 5월 개원 ; 현진 → 운월), 여의도 포교원(86년 9월 ; 현진), 강남포교원(82년 9월 ; 성열), 은평포교원(83년 10월 ; 지원), 능인선원(지광), 일심선원(지혜), 녹야원(일면), 구룡사(정우), 무애원(설봉), 그리고 ‘불광법회’로부터 출발하여 현재는 잠실에서 기반을 든든히 다진 불광사(광덕) 등을 들 수 있다. 또한 재가 법사들이 운영하는 정토포교원(최 석호), 아현포교원(김 영길), 법운포교원(김 래동)과 같은 곳이 있다.
포교당을 성공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선결 조건은 무엇보다도 운영하는 스님의 확신과 인내심이다. 이에 더하여 그 지역 주민에게 도움이 될 시의에 맞는 포교방법 (이를테면, 은평포교원의 독서실 기능, 능인선원의 영어 불경강의 따위)과 적절한 사후관리가 뒤따라야 한다. 이 세 가지 조건만 이루어진다면 그 포교당의 운명은 오래지 않아 성공적인 궤도에 오를 것이다. 현재 서울에서 성공적이라고들 말하는 포교당의 공통점은, 일부를 제외하면, 중산층 이상이 거주하는 강남이나 서초동 같은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대개 일반, 청년, 어린이 별로 매주 열리는 법회를 중심으로 한 스님의 설법을 주 내용으로 마련하
고 있다. 그러한 포교당과 성격을 달리하는 곳으로 우리법당(철산리 ; 성연), 구로포교당, 부천의 반야포교원, 성남포교원, 부평포교원 들이 있는데, 이들은 공단 노동자나 빈민층을 대상으로 포교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들 포교당이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햇수로 2년 안짝으로, 일반 신도의 법회 중심이 아니라, 지역적 특성을 감안하여 주로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다. 반야포교원 같은 경우에는 정기법회뿐 아니라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교양강좌나 풍물놀이를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등 활동이 활발하다. 또 재정은 완전 공개의 자체 운영 방식이어서 구성원 스스로가 이끌어가는 생활공간의 일부가 되고 있다. 철산리의 우리법당의 경우도 지난 해의 홍수때 피해를 입은 철산리 주민들의 보상문제 해결을 위해 나선다든지 지역 주민의 권익 보호를 위해 앞장서곤 한다.
주민들의 생활이 넉넉치못한 이러한 지역에 설립한 포교당은 애초부터 단순한 법회 중심의 ‘성공’과는 거리가 멀다. 따라서 지역 및 지역민과 일체가 되는 공동체의식이 없이는 함부로 뛰어들 수도 없다. 이런 경우 단기적인 효과를 기대하기는 힘들자만, 이런 지역이야말로 진정한 불법의 전파가 필요한 곳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웬만해서는 스님들이 이런 곳을 포교지로 선정하려들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다.
전체되어야 할 교단 화합
포교당의 수효가 점차 늘어나고는 있지만 대개가 신흥주택지 및 아파트촌과 같은 부유층의 거주 지역에만 몰리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종교 인구는 나날이 늘어나고 있는 반면 도심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사찰은 드물어서 인내와 끈기만 있으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 출가자의 편에서 보면, 자신이 받은 교육 수준에 알맞은 소임이 쉽사리 주어지지 않는 데에다 기존의 사찰에서 겪게 되는 여러 제약에서 벗어날 수있기 때문에도, 좀 고생스럽기는 해도, 성취감을 맛볼 수 있는 포교당 설립을 원하는 예가 많다.
교계에서는 포교당이 늘어나는 것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사찰 같은 분위기가 나지 않아서 거부감이 느껴진다는 사람도 있으며, 그것을 큰 걱정거리로 여기는 사람도 있다. 왜냐면 한국불교는 아직까지 스님 중심으로 의식이 진행되고 사찰이 운영되므로, 포교당이 특히 설법 중심의 구조에서 한 사람에 의존하게 되면 의식의 편협성이 나타날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만일에 그 한 사람의 스님이 없다고 가정할 때 전체는 마비되고 또 스님이 옮겨가면 신도도 따라서 자리를 옮기곤 한다. 운영하는 스님 또한 힘들여 일구어놓은 밭에 자신의 씨를 뿌려 거두고 싶은 욕심(?)에서 외부의 손길을 거부한다. 그래서 사불당화(私佛堂化)의 우려를 낳는다.
또한 같은 지역 안에 있는 포교당들 사이에, 포교당과 기존 사찰 사이에 서로 자기 쪽으로 더 많은 신도를 유치하려는 경쟁의 발생도 예상할 수 있다. 그뿐 아니라 불교는 여러가지 의식이 통일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때로는 간소화의 필요에 따라 저마다 다른 형식의 의식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이곳과 저곳의 의식이 달라서 불교 신도가 다른 절을 찾게 될 경우에 생소한 의식으로 당황하는 일이 종종 있다. 이는 일반 사찰해서도 볼 수 있는 현상이지만, 다소 폐쇄적인 포교당은 신도들 사이에 이질감을 느끼게 할 염려도 있다. 그것은, 일반 사찰과 달리, 포교당은 전통의 배경없이 완전히 새로이 일으켜야하고 또 건물 자체가 사찰의 분위기를 주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확실하고 일사불란한 체계를 요구하기 때문이니 문제가 심각할 수 있다. “포교당마다 하나의 종파가 생긴다”는 말은 비약된 말이긴 하지만 그런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만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경전에서는 ‘포교’라는 불법 홍포의 과제를 중시하면서도 그 전제 사항으로 ‘교단의 화합’을 강조하고 있다. 교단의 화합을 위한 여섯 가지 원칙은 교단 내의 규율과 질서의 일치(同戒和敬), 분배의 원칙(同利和敬), 이념의 일치(同見和敬), 의식 작법의 일치(同身和敬), 용어와 언로의 통일(同口和敬), 총체적 일치(同意和敬)를 말하고 있다. 이러한 교단의 화합 문제는 비단 신설 포교당에서뿐 아니라 한국 불교가 전반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포교당에 주어진 과제
포교당의 설립 붐은 확실히 불교계의 새바람이다. 특히 30대, 40대의 젊은 스님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는 점은 불교의 미래에 상당히 고무적이다. 산사는 산사대로 전통을 유지하면서 위치를 지키고, 포교당은 포교당대로 중생과 함께 호흡하는 식의 조화가 이루어진다면 불교의 밝은 미래를 예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러나 포교당은 아직 초기 단계이고 조화로운 정착이 있기까지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포교당은 오늘의 불교상황에서 크게 환영함이 마땅하지만, 불교가 안고 있는 제반 문제점을, 더 심화시키지 않고, 해결하려는 측면에서 그 방향 설정을 이루어야 한다. 그것은 포교당의 운영자가 바로 미래의 주역들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무엇보다도 ‘교단의 화합과 통일’이란 대전제 위에서 발전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포교당 운동은 혹시 구역과 구역의, 개인과 개인의 폐쇄적인 아성을 쌓고 있지나 않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포교당의 활동은 아직 초기 단계이므로 우려되는 바가 많은 만큼 가능성도 많다. 신도 수가 많아서 포교당이 쉽사리 번창할 수 있는 곳만 포교의 대상으로 삼을 것이 아니라, 어렵고 험난한 지역에 뛰어들어 그 지역과의 공동체를 이룸으로써 진정한 보살도를 펼치는 것이야말로 뜻있는 일이 될 터이다. 그리고, 그런 활동을 통한 포교당의 역할과 업적을 성숙시켜나가는 한편, 상호 조화를 통한 불교 전체의 발전적 미래를 위한다는 큰 짐을 벗어던져서는 안 된다. 진정한 불교 포교를 위해 몸바치는 ‘부루나’가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