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엔 스님의 그림이 몇 점 걸려 있다. 붉고 푸른 색이 화폭을 가득 메우는데 그것이 묘하게도 마음을 들뜨게 하지 않고 온화하게 만든다. 마치 뜨듯한 불덩이가 몸 안에 들어앉는 듯하다. 그리고 굴곡진 선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부정형의 면들은 자연의 숨결을 닮았다. 그러니 그것이 또 한번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 아마도 그것은 수행자의 그림이기 때문이 아닐까.
“화두를 잊어본 적이 없어요. 그 밑천이 없으면 그림도 못 그리지요.”
화단에서 자리매김을 한 스님은 여러 차례의 전시회를 가졌는데, 전시회 때마다 인사말이 간단하다.
“이게 제 얼굴이고 제 마음입니다.”
바쁜 마음에 바쁜 걸음이 나오듯 정성스런 마음에서 정성이 담긴 그림이 나오기 마련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것이 진심인지 아닌지 단박에 알아보기 마련이다. 그러니 수행자의 그림앞에서 우리의 마음이 따뜻해지고 편안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그런데도 스님은 화집의 한켠에 이렇게 적어두었다.
‘삼라만상이 다 그림인데 무엇을 또 그릴 것이 있겠는가 / 古人의 먹빛은 검되 맑고 희어 보이는데 / 내 그림은 번뇌만 흩어진 듯 하네 / 언제나 군더더기 다 떨어져 / 한 붓을 들어 만 사람의 마음을 적실 수 있으려나’
사람들은 스님이 그림을 그린다고 하니 특별하게 바라보고, 스님이 그림을 그리니 바쁘지 않느냐고 곧잘 묻는다. 그러나 스님에게 있어 그림을 그리는 일은 차를 마시고 마당에 나가 풀을 뽑는 것과 같은 일상생활의 일부일 뿐이다. 그림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을 택한 것일 뿐이다. 그리고 스님으로 충실히 살면서 나머지 시간에 그림을 그리니 바쁠 리도 없다.
“나는 수행 삼아서 그림을 그리지는 않아요. 기도 할 땐 기도에 충실하고 그림을 그릴 땐 그림에 충실할 뿐이죠.”
일상생활도 자기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수행 아닌 것이 없다지만, 스님은 스님 생활 외의 다른 생활을 한다는 게 되레 부끄럽다. 열심히 그리다보면 그것이 수행이 될 수는 있겠지만 수행 삼아서 그림을 그리진 않는다는 말씀이다. 그저 스님은 차 마시듯 그림을 그릴 뿐이고, 그 모든 순간에 충실할 뿐이다. 그러다보니 전시회를 하고 나서의 어떤 평가에도 흔들림이 없다. 전시회가 끝나면 또 바로 일상으로 돌아가 기도하고 목탁치고 풀 뽑아야 하니 거품이 들어갈 여지를 두지 않는다. 거품이 빠질 때까지 기도도 그림도 제자리를 찾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달콤한 평가일수록 더 경계한다. 그것은 욕심을 비울 때에 가능하다.
“어부가 강에 그물을 던진다고 해서 그 강의 고기가 절대 다 안 잡혀요. 빠질 건 빠지고 걸릴 건 걸리지요.”
좋은 얘기를 듣는다고 해서 금방 대가가 되는 것도 아니고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란 말씀이다. 그것은 그저 자신이 고기를 다 잡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착각에, 즉 자신에게 속아 있을 뿐이란 말씀이다. 그러니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자신을 늘 유심히 보아야만 한단다.
“끊임없이 자기를 보아야 합니다. 나를 보지 않는 시간은 죽은 시간, 즉 허망한 꿈일 뿐이지요.”
스님은 그림을 전혀 배우지 않았다. 배우려 하지도 않았고 배우고 싶지도 않았다. 배우면 길들여진 집토끼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허나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하셨던 ‘눈과 귀는 열어두고 입은 닫고 살라’던 말씀이 스님에겐 큰 스승이 되었다. 눈으로 유심히 보고 귀로 유심히 듣고 사니 자연스레 균형적인 사고가 생겼다. 그래서일까 유독 법관스님의 그림은 균형감이 뛰어나다.
“난 아직도 그림에 대해선 몰라요. 그저 내 그림은 내 방식대로 균형을 맞추는 작업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모든 것은 균형이 깨질 때 더 이상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그게 언제쯤일지는 모르겠지만 몇 년 후엔 그림에서 손을 놓을 생각이다. 명예나 이익을 좇은 것이 아니니 원래의 마음, 열심히 수행하는 쪽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저 이따금 먹으로 그림을 그려 윗목에 놓아두었다가 오가는 사람들에게 한 장씩 주는 낙이나 있으면 그만이겠다.
“스님이 스님답게 살아야지요.”
늘 자신을 보며 충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씀이다. 아내는 아내답게 남편은 남편답게, 인간은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는 말씀이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혼자이지 못 하고 무리 속에만 있으려고 하니 서로에게 기댈 뿐 자신을 바라볼 겨를이 없다.
“철저하게 혼자일 때 가장 자유롭고 수행이 잘 되지요. 인간은 철저하게 외로워야 합니다. 바람 소리 들어봤어요?”
스님과 차를 마시는 내내 창밖에선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어제도 바람이 윙윙대는 소리에 잠을 못 이루었고 오늘도 바람이 창문 틈을 지나느라 쉭쉭 소리를 냈다. 그런데 스님은 말씀하신다. 그것은 바람 소리가 아니라고, 그저 바람이 어딘가에 부딪히는 소리일 뿐이라고.
“자신이 아주 고요해지고도 고요해져서 바람 소리보다도 더 고요해지면 그 때에 바람소리를 들을 수 있겠지요. 그러니 바람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얼마만큼 수행을 해야 하겠어요. 끊임없이 내 자신을 보며 고요해져야지요. 그러면 관세음보살님처럼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스님은 찻잔을 내려놓으면서도 문을 열고 나가면서도 캄캄한 가을밤의 어둠으로 사라지는 내게 합장을 하면서도 밖의 소리가 없는 안으로 안으로 들어가신다. 이제 나는 바람 소리를 들었다는 말을 함부로 하지 못 하겠다고, 바람이 세차게 부는 밤길을 오래도록 걸으며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