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새해 시작과 함께 보내 주신 시집 다시 흰감자꽃 피어도 고향에 갈 수 없겠지 그대는과 새벽 산사 모퉁이의 약수물같은 글 잘 수지(受持)하여 머리맡에 놓아 두고 저의 마음들 지키게 하고 있읍니다.
시집 중에서 “진달래꽃 꺾어/머리에 이고/그대 목소리 들으러/나는가노라”로 시작되는 시 ‘작은 연가 7’을 읽고 저의 내면 마당 한켠에 자리잡은 꽃밭이 참으로 초라하다는 느낌을 가졌읍니다.
스님의 꽃향기 담긴 글처럼 과연 저의 꽃밭에 핀 꽃들이 주위 이웃들에게 따스함을 동반한 순수 언어 행위의 꽃들로 바쳐질 수 있는 것들인지 저 스스로를 깊이 반조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스님의 마음밭에 피어 있는 진달래꽃 꺾어 누군가를 위해 바치려 하는 따스함이 어둠을 소멸시키는 아름다움으로 제게는 인식되었읍니다. 아니 여기 사바의 언덕에 사는 저에게 순수의 언어나 행위의 꽃들을 피우게 하며 그 꽃향기가 사바의 언덕 곳곳에 가득하게 하라는 가르침으로 들렸읍니다. 아무래도 순수의 언어 행위가 우리 곁에 성성히 살아 있게 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지혜로움이 폭풍의 바다를 지키는 등대처럼 밝게 빛나야 가능할 것입니다.
저는 지혜롭다는 것은 모래사장을 핥고 가는 파도와 같다는 생각을 했읍니다. 맑은 물방울이 나뭇잎 위를 구르다 그 보다 작은 흐린 물방울을 만나면 금방 흡입시켜 정체(淨體)로 만들어 가듯 말입니다.
무명이 들끓는 사바의 모래사장. 그 모래틈 사이에 낀 무명의 때를을 닦아내는 지혜의 파도를 여기 사바의 언덕을 방황하는 우리는 늘 기다리고 있읍니다. 지혜스러움의 파도, 그것이 바로 스님의 글 가운데 살아 있는 순수 언어 행위를 뜻하는 것이겠지요.
우리 무명의 강이 끝나고 지혜로움의 파도가 일렁이는 정토(淨土)의 바다위를 날으는 새들이라면 얼마나 기쁨 가득한 일이겠읍니까. 그러나 우리는 정토의 바다에 이르지 못하고 흐린 강 속 어딘가에 뿌리내리고 만 연약한 수초(水草)인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혼탁의 강 속 제가 흐린 강 속에 모두와 함께 공존하며 강 속의 모든 것들에 대해 어느 것 하나 맑고 투명하다는 생각을 일으키지 못함은 어리석음을 쌓는 일일 뿐이겠지요.
여기 사바의 강 속에는 책꽂이에 꽂힌 책처럼 사회 정치 경제 문화종교 들이 즐비합니다. 그 중에서도 정치는 큰 관심거리로 우리를 휩싸고 있읍니다. 그런데 이 정치하는 이들에게 지혜의 꽃들이 꺾인 지 오래랍니다.
그들은 상자 하나를 두고 사는 것 같습니다. 무엇이든 안에 넣으면 자기 원하는 대로 되는 요술상자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자신이 누군가를 위해 무엇이 되고자 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을 위해 누군가가 자신의 무엇이 되어 주기를 바라는 사고 방식에서 표출되는 것이라 할 수 있읍니다.
많은 사람을 나룻배에 싣고 강을 건너는 사공에게는 아무런 사고없이 강을 건널 수 있는 사명감이 필요합니다. 사공의 아주 절실한 사명감처럼 정치하는 이들에게도 그 땅에 살고 있는 이들을 위해 무엇인가 기어이 해내야 한다는 진실되고 뜨거운 가슴을 지녀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무엇입니까.
나룻배의 키를 잡고저 하는 데만 마음 좇고 있으니.
그러나 강 속 모두는 아무 말없이 방관자의 입장일 뿐입니다.
우리는 이 시대를 무명시대로 불리우게 하며 이처럼 살아가는 한 후인들로부터 부끄러운 역사의 동참자로 오래 오래 거명(擧名)될 것이 분명합니다.
스님, 지금 이 같은 저의 아픈 토로(吐露)는, 우리를 감싼 흐름에 엄청난 개혁이 시도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아니라, 모두의 자각이 절실해야 함을 저의 살점 뜯어내는 아픔으로 동감자(同感者)들에게 건네고 싶은 마음에서입니다.
무엇이 어두운 시대에 서 있는 우리라는 나무들을 자각케할 것인가가 중요한 사실이 됩니다. 역시 스님의 글에 스며있는 것처럼 지혜스러움을 바탕으로 지어지는 순수한 언어 행위의 집들에 의해 자각은 이루어질 것이라 확신하고 싶습니다. 이 집들은 종교의 영향을 크게 받아왔고 받아갈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어차피 종교는 본질적으로 우리 내면을 정화하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을 테니까요.
그러면 그 동안 종교가 우리들에게 무엇을 제공하고 또 우리를 어떻게 수용해 왔는지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읍니다. 무조건적인 어떤 도움을 제공받기를 희망하고 편안한 수용을 기대해 오지는 않았습니다.
종교를 나무가 자랄 수 있는 토양에 비유할 수 있다고들 말합니다. 저도 그 비유함에 뜻을 같이 합니다. 이런 경우 우리는 나무의 처지에 놓일 것입니다. 숲 속의 나무가 아무렇게나 뿌리내려 잎 푸르르며 열매 맺을 수는 없읍니다. 오염되지 않은 산소와 좋은 햇빛을 공급받으며 양질의 토양이 갖추어질 때 싱싱하고 듬직한 모습으로 서 있게 됩니다.
종교는 끊임없이 우리라는 나무를 향해 이상적인 환경을 제공하며 깨우침을 주지만 우리는 제대로 건져내지 못하고 흐르는 물같은 시간들만 신속하게 떠나보내 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가끔은 종교의 실각(失脚)도 우리를 우울하게 하고 사회의 전반적인 틀에 균열을 만들게 하는 경우도 많았읍니다.
부끄럽게도 많은 이들이 종교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무리한 것을 요구하고 기대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그 요구가 무리하다 하더라도 종교는 그것들에 대해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됩니다. 특히 부처님 말씀 따르는 저로서는 불교의 옳고 그름들을 한 조각도 놓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부처님 말씀 전하는 스님들 모여 사시는 교단의 모습은 종교가 지녀야 할 양질의 토양이 아닌 박토(薄土)의 모습이 되어 다가설 때도 적지 않았던 것이 감출 수 없는 사실입니다.
무명(無名)으로, 무소유(無所有)로 살아야 할 스님들의 모습이 유명과 소유의 나락(奈落)에 있으면서 길 잘못 든 우리들을 버려둔 것이 한 두번이 아니었읍니다.
항상 바램합니다.
그 같은 스님의 모습이 아닌, 눈 푸른 스님의 모습이기를 우리는 바랍니다.
고해(苦海)를 뒤흔드는 폭풍같은 사자후(獅子吼)로 종교의 표상이 되어 정치하는 이들은 물론이거니와 우리 모여사는 사회의 모든 것들 마음의 지주(支柱) 되시어 여기 이 곳 정토라 일컫게 하신다면 무어라 마음의 그윽함 표현 하겠읍니까.
우리 머무는 사바세계는 날로 부질없는 것들의 뒤범벅이 되어가고 있읍니다.
문득 어느 날 밤 손을 꼬옥 잡고 저에게 주시던 스님의 말씀 생각납니다. “우리 무엇이든 설명하지 않고 사는 법 터득합시다”라는 말씀 접하고서, 요즈음 너 나 할 것 없이 말로써 다 설명하려는, 그리하여 우리들 사이에 부질없이 떠도는 말들 너무 많게 만든 한 사람으로서 부끄러움 떠올렸답니다. 바로 부질없는 말이 순수함 사라져 버린 언어이며, 순수함 메말라버린 행위를 나타내는 것이었겠지요.
정말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대중을 향해 꽃을 들었을 때 가섭(迦葉)존자의 미소처럼 이심전심(以心傳心)의 의미로 가슴을 통해 전하고 인식하며 살아갈 수 없을까요. 석가모니 부처님과 같이 꽃을 들어보이는 선지식 스님과 가섭존자의 지혜로운 미소의 응답을 깨닫는 우리를 이 시대는 요구하고 있다고 봅니다.
무엇을 수용하려 함보다 극단적인 거부가 난무하는 현실.
불필요한 부정이 필요한 긍정보다 수승한 현실.
이 백척(百尺)이나 되는 장대 끝에 선 우리는 오직 자신있게 한 발자욱 옮기는 법 가르쳐 줄 선지식을 마음 모아 인연하고 싶어합니다. 인연하여 높이 모심이 아니라 또 하나의 자신처럼 언제나 우리 생의 굽은 등줄기 어루만지는 귀의처로 계셔 주길 우러러 청하는 것입니다.
스님은 산에 마애불(磨崖佛) 되어 계시고 우리는 도시의 부랑자(浮浪者) 중생으로 있으며 산과 도시 사이에 끝내 넘지 못할 암흑 속 같은 벽 하나 만들어 놓고 있다면 조금도 불행의 늪에 빠진 미물(微物)과 다를 바가 없으리라 믿습니다.
스님.
이 곳 도회(都會)의 언저리마다 살 속 헤집는 듯한 눈보라들이 무수한 집들의 문을 두드리고 갑니다.
혹한의 도회에 살고 있는 우리들, 저도 스님의 귀한 글처럼 따스함 담긴 꽃들을 꺾어 추위에 잠긴 이들 위해 바칠 수 있도록 정진하려 하오니 우리들 위해 추위 가르는 매서운 바람의 경책을 내려주십시오. 그리고 스님의 따스한 지혜의 손길 오므려 산 속 바위 틈에 숨겨두지 마시고 우리 중생들 곁으로 오셔서 누구나 편안함 누릴 수 있게 활짝 펴 주시길 발원합니다.
저의 발원은 스님 한 분께 올림이 아니라 도(道)의 깊음 이루기 위해 고행하시는 모든 스님들께 올림이요, 아울러 저 혼자의 마음이 아니고 고해 건너는 배에 실린 모든 중생들의 마음이랍니다.
겨울이면 늘 스님 산방 모서리에 부처님 법음(法音)처럼 쌓이던 문풍지 소리, 그 소리 들으시며 두서없이 써 올린 저의 때 묻은 마음들 기쁨으로 거두십시오.
부처 이루어 중생 건지소서.
불이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