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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불교문화재 및 불교수행처의 공적 접근가능성과 범위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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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최근영┃KBS 다르마 PD 2011년 12월 358호

저는 지난 2009년 <아라한, 완전한 행복>과 올해 <대장경 천년 특집, 다르마>를 제작, 방송했습니다. 취재하는 동안 나라 안팎의 불교문화재와 수행처를 방문할 수 있었던 것은 큰 영광이었고 또한 개인적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인도 북부의 한정된 지역을 맨발로 탁발하시며 설법하신 부처님의 가르침이 오늘날, 전 세계로 퍼져 있다는 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것은 감격스러운 일이었습니다.

2008년에는 미얀마의 바간을 방문했습니다. 바간은 13세기경 조성된 5천여개의 탑이 있는 옛 도시입니다. 마을 전체가 불교문화재입니다. 최근에는 국가적으로 관광사업을 활성화시키고 있어서 고급카메라를 든 서양관광객들도 많이 찾습니다. 바간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맨발의 아이들이 아무렇지 않게 탑을 오르내리며 놀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철조망도 울타리도 없습니다. 접근이 너무나 자유롭고 어떤 곳은 실제로 무너져 내리고 있는 곳도 있습니다. 성주괴공의 변화가 자연스럽게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파고다 안에 중요한 불상이 모셔져 있다든가 규모가 크고 중요한 파고다의 경우는 관리인이 있고 입장하는 문이 제한된 곳도 있습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바간의 탑들은 접근이 매우 자유롭습니다. 미얀마의 경제력이나 행정력이 탑을 일일이 관리할 만한 수준에 이르지 못한 이유도 있을 것입니다.

스리랑카는 미얀마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부처님의 치아사리가 모셔져 있다고 알려진 캔디의 불치사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공항에 있는 것과 같은 검색대를 통과해야 했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당시 스리랑카가 타밀반군과의 대치상황에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직접 가보진 못했지만 아누라다푸라의 유명한 아난다상 같은 경우는 보존을 위해 지붕과 울타리를 쳐 놓았는데 그 지붕과 울타리가 오히려 미관을 해친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스리랑카는 사회가 안정되고 경제력이 증가하면서 문화재 보호를 위해 시설물을 덧씌우고 있지만 그것이 접근성과 미관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는 것은 고려해야 할 사항인 것 같습니다.

올해 초에는 인도의 성지들을 취재했습니다. 4대성지 중 부처님의 출생지는 가지 못 했고 깨달음을 성취하신 보드가야, 첫 설법지 사르나트, 반열반하신 쿠시나가라를 갈 수 있었습니다. 보드가야에 진입하는 곳도 검색대가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관리가 철저하진 않았습니다. 부처님이 그 아래서 깨달음을 이루셨다는 보리수의 경우도 사람들이 수시로 와서 만지고 깃발을 걸고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만에 하나 나쁜 마음을 먹은 사람이 훼손하려고 한다면 어렵지 않을 만큼입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동안 수많은 불자들이 방문하고 신심을 다지는 과정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제가 취재한 기간에도 많은 사람들의 진심어린 경배의 분위기를 보면 거기에 어떤 장벽이나 보호물을 설치한다면 오히려 그 환희심에 방해가 될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사르나트와 쿠시나가라는 후대에 남겨진 파고다와 건물, 불상이 있을 뿐이고 상징적인 장소이기 때문에 보드가야보다 더욱 자유로운 접근이 가능한 곳입니다. 물론 입장료를 내고 입장해야 하는 곳이긴 하지만 안에 들어가면 불탑을 만지거나 불상을 만지는 것에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습니다. 탑이나 불상에 금박을 붙여 장엄을 하면 복이 온다고 믿는 지역의 불자들은 아무렇지 않게 탑과 불상에 다가가 여기저기 금박을 붙입니다.

불교문화재 외에 많은 불교수행처도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영국에서는 아마라바티라는 사원에서 2주 이상 머물며 취재를 했습니다. 이곳 스님들의 국적은 15개국 이상으로 여러 인연을 거쳐 태국 아잔 차 스님 계열의 전통 아래 출가한 스님들입니다. 대개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호주 등 서양인들입니다. 이곳의 취재허락을 얻기 위해 사전방문이 있었고 비구스님 한분,비구니스님 한분과의 면담이 있었습니다. 사원 설립 초기 영국공영방송인 BBC의 취재가 있었던 이후로 좀처럼 카메라 취재를 허락하지 않던 곳이었지만 저희들의 촬영의도를 충분히 들으시고 나서 어떤 공감대가 형성된 것 같았습니다. 스님들의 전체 예불이나 좌선, 공양 등 사원의 공식활동들을 취재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고 화면에 노출되기를 꺼리는 분도 없었습니다. 한국이라는 먼 나라에서 방송되니까 얼굴이 노출되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셨을 수도 있고 서양인들의 문화적 특성상 가족 모르게 출가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화면에 거부감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당연히 그렇겠지만 개인적 신상이나 탁발 등의 개인활동을 취재하기 위해서는 스님 한 분 한 분과 교감이 있은 후에야 가능했습니다.

불교문화재와 수행처의 접근성과 보존의 문제는 쉽지는 않아 보입니다. 접근이 쉬울수록 손이 타고 때가 타고 위험이 항상 상존합니다. 그러나 검색대를 세우고 울타리를 치고 유리벽 안에 가둬 두고 먼 발치에서 스윽 보고 지나친다면 확실히 감회가 덜 하긴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신심이란 꼭 그런 곳에 의지해서 일어나는 것은 아닐 겁니다.

제가 방송제작을 통해 접하게 된 불교문화재와 유적지, 그리고 수행처들이 모두 다소간 다른 수행을 하고 다른 말을 하고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는 것은 저에게 또다른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부처님이 반열반하시고 2500년이 지난 오늘날,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법을 만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먼 나라에서도 클릭만 하면 인터넷을 통해 법을 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교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지는 많은 가르침 중에 부처님의 본뜻, 올바른 법이 무엇인지는 좀 더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