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러한 대역사를 시작한 연유와 목적에 대해서 다소 실망감을 갖기도 했다.
팔만대장경은 고려 고종 23년부터 38년까지 16년간에 걸쳐 제작되었다. 몽고의 침입으로 수도 개경이 불타고 왕실이 강화도로 피난한 상황에서 만들어졌다.
오랑캐의 침입에 쫓겨 임금이 섬으로 도망간 풍전등화의 상황에서 장장 16년에 걸쳐 국가적 대사로 팔만대장경 제작을 추진했다니…그럴 시간이나 여력이 있으면 창칼이라도 한 자루 더 만들고 군사라도 한 사람 더 훈련시켜야지 경판에 불경을 새겨 무슨 수로 나라를 지키고 전란에서 나라를 구한단 말인가?…
당시 불법의 세계를 잘 알지 못했던 내 좁은 소견으로 일의 순서에 대해 의구심을 가졌던 것이었다.
그로나 이러한 오해가 풀린 것은 많은 시간이 흐른 뒤 원효元曉 대사에 관한 책을 통해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사상을 이해하고 난 뒤였다. 원효가 해골물을 마셨다 토해낸 뒤 깨달았다는 일체유심조. 모든 것은 마음의 작용에 달렸다는 화엄의 중심사상은 내게도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오랑캐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고자 경판에 불경을 새긴 조상들의 지혜가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그 후 일체유심조의 사상은 내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되고 지침이 되었다.
2008년 광우병 파동 당시 나는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으로 촛불정국의 한 가운데에 있었다. 나날이 확산되는 광우병의 공포에서 국민들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촛불정국은 쉽게 사그러들지 않았다. 성난 국민들, 내 이름에 앞뒤에 따라붙는 ‘매국노’, ‘광우병 오적’등의 수식어. 어찌 보면 내 인생의 가장 힘든 시기를 보냈다.
그런 때에 나를 지탱해 주고 힘이 되어준 것이 바로 \'일체유심조\'였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마음을 어떻게 갖느냐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질 수 있다….
나는 위기를 기회로 생각했다. 먹거리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이 최고조에 달한 이때야말로 오랫동안 우리나라 식품계의 고질병이었던 둔갑판매를 뿌리 뽑아 유통질서를 바로잡을 절호의 기회라 생각했다. 그러한 ‘유심唯心’에서 원산지표시제를 전국의 모든 음식점으로 확대하고 전력을 다해 정착시켜 나갔다.
이 후 장관의 자리에서 물러나와 100일간의 일정으로 전국을 순례하던 안동의 도산서원에서 활짝 핀 토종매화를 보며 중국의 황벽 선사가 지었다는 한시 한 수를 접하고 나는 또 하나의 깨달음을 얻었다.
不是一番寒徹骨불시일번한철골, 爭得梅花撲鼻香쟁득매화박비향
뼈를 깎는 추위를 만나지 않았던들, 매화가 어찌 코를 찌르는 향기를 얻을 수 있으리오.
뼈를 깎는 추위가 있어야 매화가 코를 찌르는 향기를 얻는다는 선사의 교훈은 내게 새로운 길을 제시해 주었다. 그때부터 나는 전국의 농촌 현장을 찾아다니며 경험과 노하우를 전파하고 희망의 향기를 전하는 전국 순회 특강을 시작했다. 자리에 관계없이 농업을 위하고 농업을 살리는 것이 본연의 업이요 사명이라는(유심唯心 ; 추위는 단지 추위가 아니라 박비향의 응축과정이라는)’유심唯心이 있었기에 2년여 동안 행복한 마음으로 전국 150여곳을 순회할 수 있었다.
양극화에 청년실업, 경기침체, 물가불안, 사회갈등….
서민들의 삶이 갈수록 피폐해지고 먹고 살기가 점점 더 힘들어진다고 한다. 어려운 때에, 역경의 시기에 우리는 더욱 마음의 뿌리를 굳건히 해야 하지 않을까?
일체유심조.
모든 것이 내 마음 하나에 달려 있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누구는 행복을 느끼고 누구는 불행을 느낀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행복한 마음을 갖는 것. 그것이 상황을 바꾸고 삶을 바꾸는 출발점이 아닐까 싶다. 좋은 시절이 있으면 어려운 시절이 있다. 어려운 시절이 있으면 또한 좋은 시절이 있는 법이다. 전란의 한가운데서도 팔만대장경을 새긴 조상들의 지혜를 마음에 간직하며 꿋꿋하게 역경을 이겨내고 새로운 희망의 향기를 전하는 우리가 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