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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밝으면 반드시 목적지에 도착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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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고 청정한 수행을 위한 법문 - 조계종정 해인총림 방장 법전 스 2011년 12월 358호
목인무장 석녀가가木人撫掌石女呵呵해도
인차과한 회재염시人蹉過寒灰再燄<時로다
장승이 손뼉을 치고 석녀는 깔깔대며 웃는데
사람은 꺼진 재가 다시 타는 줄도 모르고 지나가는구나.
조주 선사가 물었습니다.
“사중득활시 여하死中得活時 如何오, 죽었다가 살아나는 때는 어떠하오?”
이에 투자대동投子大同 선사가 대답했습니다.
“불허야행不許夜行이라도 투명수도投明須到니다. 야간통행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해도 날이 밝으면 반드시 목적지에 도착해야 합니다.”
취미무학翠微無學 선사의 법을 이은 투자대동 스님은 뒷날 허름한 초가집을 암자삼아 정진하 며 살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당대의 대선지식인 조주 선사가 근처 동성桐城지방을 들르게 되었 습니다. 마침 길을 가던 중에 투자와 마주쳤습니다. 그렇지만 서로 알아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 쳤습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예감이라는 것이 있기 마련입니다. 저만치 멀어진 조주 선사는 가던 길을 멈추고 되돌아와서 꾀죄죄한 그를 붙들어 세워놓고선‘혹시나’하고 물었습니다.
“혹시 투자산의 주인 아니시오?”
하지만 투자는 그 물음에 일절 대답을 하지 않고 다짜고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차와 소금을 살 수 있는 돈을 한 푼 주십시오.”
그 말에 너무 실망한 조주는 대꾸도 하지 않고 가던 길을 재촉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투자가 머물고 있다는 초가집을 묻고 물어서 겨우 찾았으나 빈집이었습니다. 마루에 앉아 주인이 오 길 기다렸습니다.
한참 후에 투자 스님은 기름병을 손에 쥐고서 암자로 돌아왔습니다. 그리하여 먼저 와서 기 다리고 있던 조주와 만나게 되었습니다. 아까 시장거리에서 본 사람이었음을 서로 알아차리 게 되었습니다.
먼저 조주가 쏘아붙이듯이 신경질적으로 한 마디 날렸습니다.
“오래 전부터 투자의 명성을 익히 들어왔는데, 와서 보니 한갓 기름 파는 노인네에 불과하 군요?”그 말을 들은 투자 역시 날카롭게 대답했습니다.
“그대는 단지 기름 파는 늙은이만 보았을 뿐 투자는 알지 못하는군요?”
그 말에 조주는‘아차!’하면서 정색을 하였고, 이어서 서로 본격적인 선문답이 오고 갑니다.
“어떤 것이 투자입니까?”
“기름 사려! 기름 사려!”
계속 화살같이 예리한 물음이 이어집니다.
“죽었다가 살아나는 때는 어떠하오?”
“야간통행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해도 날이 밝으면 반드시 목적지에 도착해야 합니다.”
이것이 투자 선사의‘사중득활死中得活’화두의 전말입니다.
생生의 한편에 얽매여 사死를 보지 못하거나 사死의 한편에 얽매여 생生을 보지 못한다면 이 것은 제대로 된 화두를 들고 결제하는 납자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럴 경우 살아 있는 공 부인이 아니라 죽은 송장인 까닭입니다. 그렇지만 죽어도 제대로 죽기만 한다면 거기에 또 살 길이 열리는 것이 이 공부길입니다. 죽은 듯이 막힌 경계에서 다시 생동하는 활로가 열리는 까 닭입니다. 그래서 임제종의 부산법원浮山法遠 선사는 죽은 듯이 고요함의 극치에서 다시 일어 나는 본분의 작용인‘사중활死中活’을 후학들에게 제시했던 것입니다.
《임제록》에는“죽거나 살아나는 것이 서로 순환하여 따르기 때문에 공부하는 사람은 반드 시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가령 주인과 손님이 만나서 서로 말이 오고 갈 경우, 때로는 상황 에 응하여 구체적인 형상을 나타내기도 하고, 몸과 마음의 활동전체를 작용으로 삼기도 하 며, 혹은 기연과 방편에 따라 기뻐하거나 노여워하기도 하고, 반쪽의 몸만 드러내기도 하며, 때로는 사자를 타기도 하고 코끼리를 타기도 한다”고 하여 사활순연死活循然의 도리를 명백하 게 밝혀놓고 있습니다.
죽었다가도 살아나고 살았다가도 죽는 등 사활은 언제나 서로 맞물려 있습니다. 그래서 죽음 속에도 살 도리가 있고 살아 있는 가운데서도 죽는 도리를 만들기도 합니다.
죽는 공부가 되는 까닭은 결국 죽은 화두(死話頭)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죽은 화두는 바로 사 구死句인 까닭입니다. 형상도 없는 도를 뒤쫓아 가는 어지럽도록 수많은 무리들이 죽은 화두를 붙들고 토끼가 걸려들기만을 기다립니다. 그리하여 썩은나무 등걸을 지키고 있는 것과 똑같이 그 화두에 얽매여 있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그래서 수산성념 선사에게 어떤 납자가 물었습니다.
“모든 작용作用을 잃었을 때는 어떻습니까?”
“썩은 물에는 황룡黃龍을 가두어 놓지 못한다.”
“움직이고 변화한 다음에는 어떻습니까?”
“푸른 눈의 달마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물론 죽은 화두라고 하는 것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공안과 화두가 참구하 는 사람과 방법에 따라 사화두死話頭가 될 수도 있고 또 활구活句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일정한 테두리나 선입견에 사로잡혀서, 모든 언어와 이론의 속박을 벗어나는 화두 본래의 활 발발한 기상을 잃어버릴 경우 저절로 죽은 화두가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설사 이러한 사화두 라고 할지라도 바르게 제대로 참구하는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언제든지 다시 살아나는 법입니 다. 결국 다시 말하자면 화두가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인 것입니다. 와룡은 고인 물에는 모 습을 나타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고여서 썩은 물속에 어떻게 용이 잠겨 있을 수 있겠습니까? 누가 제대로 어떻게 참구하느냐에 따라 활구가 되기도 하고 사구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또한 묶을 끈도 없는데 스스로 묶이며, 또 본래 활기찼던 사람이 묶여서 죽은 사람이 됩니 다. 억지로 법도를 만들어서 멀쩡한 화두를 죽은 화두로 만들어버립니다. 편벽되고 삿된 것에 집착하고 의지함으로써 깨달음을 열어주는 근거가 전혀 없게 된 것입니다. 사는 법만 알고 죽 는 법을 모른다고 하는 것은 사는 법조차도 죽게 만들 것입니다. 치우친 공부법은 제대로 공부 하는 법이 아닙니다. 그런 까닭에 화두를 가지고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요, 반대로 화두를 쥐 고서 죽으려 하면 살길이 열릴 것입니다.
결제라고 하는 것은 죽는 가운데 살길을 찾는 일입니다. 해제 때 돌아다니던 걸음걸이를 죽 이고, 원숭이처럼 사방으로 내달리는 번뇌를 죽이고, 잡으려고 하면 할수록 치성해지는 망상 을 죽이는 일입니다. 그런 죽음 속에서도 미꾸라지같이 도망가는 화두를 챙기며 살길을 찾는 일입니다. 죽음 속에서 살길을 찾기 위해 우리는 이렇게 결제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결제 첫날 부터 마지막 날까지 항상 명심해주시기 바랍니다.
사중득활고래희死中得活古來稀
활중득사인무수活中得死人無數
죽었다가 살아나는 자는 옛날부터 드물었고
살려고 하다가 죽은 자들은 부지기수로다.

2555(2011) 신묘년 동안거 결제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