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여름 내 지겹도록 온 비 때문인지 이렇다 할 가을비 치레도 없이 시나브로 날씨가 차가워졌다. 하루아침에 쌀쌀해진 날씨에 두보의 시 한 구절을 흥얼거렸다. “바람 차고 하늘은 높은데 잔나비 울음 슬프고(風急天高猿嘯哀)….” 우리 동네 개울가에는 두보가 들었던 강남의 추적한 잔나비 울음 대신, 얼마 전부터 가을과 함께 온 오리 가족의 소란스러움이 높아진 하늘 속에 함께 머물고 있다. 불과 이틀 만에 여름에서 가을로, ‘더워’에서 ‘추워’로 기온이 빠르게 낙하하고 보니 계절이 무상하다는 말이 내 입에서 기어이 나오고 만다.
무상無常, 무아無我, 공空과 같은 개념은 불교의 핵심이 되는 것들이다. 이러한 개념들은 직접적으로 사용되기도 했지만, 경전에서는 이처럼 추상적인 개념들은 비유를 통해서 구체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예를 들자면 『마하반야바라밀경摩訶般若波羅密經』의 “모든 법은 허깨비와 같고, 불꽃과 같고, 물속의 달과 같으며, 허공과 같고 메아리와 같고, 건달바성과 같고, 꿈과 같고 그림자 같고, 거울 속에 비친 모습과 같고, 화현과 같다.”와 같은 구절이 그러하다. 구체적인 비유의 대상들을 눈으로 읽고 입으로 곱씹으면 지금의 현실이 꿈속의 그림자나, 타오르는 불꽃 속의 검은 그림자, 거울 속 메아리와 같이 느껴지면서 무상한 감정이 참으로 여과 없이 전해진다. 하지만 선에서는 그 양상이 완전히 다르다. 일상에서 쉽게 만나는 이미지나 부조리한 언어, 역설이나 알고리즘을 통해 전광석화電光石火와 같이 내려꼿는다. 그래서 평범한 우리 같은 사람들 마음에는 와 닫지 않고 어리둥절하고 있기 마련이다. 표현 방법 역시 마치 여름에서 가을로 추락하는 계절만큼 찰라지간이므로 한 생각이 여러 시간에 머물 여지를 허락하지 않는다.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찰나간의 순수성을 추구한다는 관점에서 선화를 그리는 필법은 세밀하거나 정교한 붓질을 피하고 오히려 매우 빠르게 전개 된다. 그 중에서도 선화 표현방식의 묘미를 드러내는 것이 바로 발묵법發墨法이다. 발묵법이란 먹에 물을 많이 섞어 넓은 붓으로 윤곽선 없이 그리는 혹은 번지게 하는 기법으로 전통적인 윤곽선 방식에서 많이 벗어나 있는 방식이다. 윤곽선을 강조하지 않고 번지게 하는 기법이다 보니까 먹과 물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면서도 붓질이 아주 능숙해야만 가능하다. 그러면서도 발묵을 통해서 얻어지는 우연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것은 그림에서도 먹의 요소를 강조하는 기법이면서 일필휘지一筆揮之라는 단어에 어울리는 느낌이 강한 표현이다. 이처럼 발묵법은 찰나간의 순수성이라는 선의 종지宗指를 먹이라는 매채를 통해 그림으로 전달할 때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다. 절대로 일정치 않은 먹의 우연한 농담에서 얻어지는 깊이는 선 수행에서 던져지는 화두의 역할과 흡사하다. 그래서인지 유불을 막론하고 선수행이 유행하던 남송대 화가들 사이에서는 이와 같은 발묵법이 그림에 많이 사용되었다. 대표적인 예로서 선화가로 유명한 양해(梁楷, ?~1210년 경)의 <발묵선인도發墨仙人圖>를 들 수 있다.
이 그림은 굵은 붓에 먹을 듬뿍 묻혀 붓질의 질감을 살리고 먹의 농담을 이용하여 그린 인물화로 인물의 윤곽선은 최소한 자제하고 소위 몰골법沒骨法을 사용하여 그린 것으로 거친 붓질의 질감이 주인공인 선인仙人의 자유로움과 묘하게 대응되는 그런 그림이다. 이미 우리는 양해의 <이백행음도>를 감상한 바 있다. 두 작품 모두 감필의 묘미를 보여주는 걸작이지만 <이백행음도>가 몇 개의 선線으로만 그려진 것이라면 이 작품은 면面의 변화로 선인이 지닌 특징과 풍모를 잘 드러내고 있어 대조를 이루고 있다. 선인은 도가道家의 대표 격으로 채택된 인물로 도가에서 지향하는 자연과의 동화同化를 거칠면서도 자연스러운 발묵의 필법을 통해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자신의 옷섶을 풀어헤치고 있는 선인은 이미 사회적인 관계를 떠나 본연의 상태로 돌아간 경지를 드러내었는데, 양해라는 화가의 다양한 시도들은 남송대에 이르러 도교와 불교 사이의 갈등구조가 어느 정도 해소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상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