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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전방 강원도 화천에 소재한 군법당 보현사 방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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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향기 - 지용┃중앙승가대학 2011년 10월 356호

지난 추석 연휴기간을 이용하여 강원도 최전방에서 군법사로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강원도반인 서천(해인강원 49기)스님을 위문하러 2박 3일 동안 화천에 다녀왔다. 이 글은 글을 읽으시는 모든 인연 있는 분들께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군포교의 최일선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며 애쓰고 있는 도반스님에게 많은 격려와 용기를 주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쓴 글이다.
지난 9월 11일 김포에서 학교를 출발하여 고속전철을 이용하여 춘천에 도착해 고불고불한 국도를 따라 시외버스를 타고 화천에 도착했다. 다시 시내버스를 타고 군법당이 있는 보현사근처의 검문초소에 다다르니 해가 이미 어두워진 상태였다. 이번이 세 번째의 방문이지만 매번 올 때마다 정말 너무 먼 오지라는 생각을 갖게 만드는 지역이다.
도착해서 때늦은 약석공양을 간단히 마치고 나니 군법당에서 멀지 않은 관사에 기거하시는 1대대장이 멀리서 찾아온 나를 보러 일부러 들르셨다. 초면이 아니라 간단한 인사를 하고 차담을 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행히도 대대장님이 불교신자라 도반스님이 군법사로 포교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고 하기에 도반으로서 특별히 감사의 말을 전했다.
민통선을 지나 찾아간 15사단 38연대는 휴전선의 정중앙에 위치한 비무장지대로 GP 경계근무가 부대의 주된 임무로 군사작전 지역으로는 아주 중요한 곳이다. 화천지역은 전체가 민간인 보다 군인이 더 많이 사는 군사 최전방지역이다. 이 지역은 최전방에서도 다른 지역에 비해 복무환경이 유난히 열악하기로 소문이 자자한 곳이다.
연대 군 법당으로 사용하고 있는 보현사는 많은 차량의 먼지와 매연, 소음이 끊이지 않는 대로변에서 십여 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얼핏 봐서는 도저히 법당이라고 보기 힘든 재래식 옛 병영 막사를 연대 법당으로 사용 중이다. 그나마 올해 초파일에 내가 재학중에 있는 학교의 도반스님들이 십시일반十匙一飯으로 거둬준 얼마간의 등 공양금으로 병사들과 직접 외벽을 칠하고 연꽃을 그려놓아서 법당이라고 느낄 수 있는 정도였다.
이번 방문 동안에는 설상가상으로 식수로 사용하는 상수도 물탱크의 모터가 고장이라 해우소는 고사하고 식수마저도 끊겨 조금 떨어진 부대의 사병식당에서 물을 길어다가 해결하고 왔다. 연대법당이 이렇다 보니 예하대대의 법당은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대부분 군 법당은 부대 내에서 가장 노후한 막사를 임시방편으로 사용 중이다. 그런 법당도 없는 부대 장병들은 이웃부대로 가서 법회를 보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그날 법당에서 바라 본 부대 영내에 위치한 적벽돌로 새로 지어져 있는 교회건물이 유독 커 보였다.
서천스님은 현재에 법회가 있는 일요일이 되면 연대뿐만 아니라 인근에 있는 4곳의 부대에서 법회를 보고 있다고 한다. 하루에 네 곳 이상의 부대를 방문해 법문을 하고 나면 몸은 녹초가 되어 다음 월요일까지 하루 종일 앓아누운 적도 있다고 한다. 그래도 군법사로서 병사들과 조금이나마 가까워지기 위해 부대에서 하고 있는 각종 훈련에 빠짐없이 동참하고 있다고 한다. 법회운영은 매달 나오는 법사보시금과 군종교구에서 분기별로 지급되는 초코파이를 갖고 꾸려가고 있다고 한다. 이곳은 최전방 경계근무지역의 특성상 이동거리가 멀어 차량유지비에 많은 지출이 되어 병사들에게 나눠줄 간식거리를 구입하고 나면 다음 달 생활비를 걱정해야 된다고 한다. 또한, 크고 작은 각종 훈련이 많아 훈련때마다 참여하는 모든 장병들에게도 각종 간식거리를 주다보니 더욱더 어렵다고 한다. 특히, 물량공세을 앞세운 타종교의 공격적인 포교활동을 볼 때면 상대적 허탈감이 들어 정신적으로 위축되는 일이 종종 있다고 한다. 이런 일을 겪게 될 때면 병사들에게 스님으로서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그래도 일요이면 법회에 참석하고 있는 많은 장병들을 볼 때마다 많은 힘이 생겨 군법사로서의 생활에 많은 자부심과 긍지를 갖게 되고 보람을 찾고 있다고 한다.
대대장님과의 차담이 끝날 무렵에 내일은 장병들과 같이 부대내에서 추석 합동 차례를 지낼 계획이라고 하시며 법사스님과 꼭 참석해 달라는 당부의 말에 흔쾌히 승낙을 했다. 긴 시간 대중교통을 이용한 여행에서 오는 피곤함에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추석날 아침 예불을 마치고 서둘러서 간단한 조식공양을 했다. 수도가 고장이라 군 장병들이 사용 중인 부대내에 있는 목욕탕에서 삭발 목욕을 했다. 부대장실에서 각급 장교들과 인사를 마치고 사병들 식당에 마련된 차례상 앞에서 부대장을 포함한 모든 군 장병들의 추석 합동 차례를 지냈다. 합동차례에 동참한 것은 이번 방문의 또 다른 깊은 시간이었다.
합동차례를 마치고 서둘러서 인근지역의 ○ ○포대로 군법사인 서천 스님과 함께 법진 스님을 면회갔다. 법진 스님은 올 여름 산철을 마치고 해인승가대학 2학년에 재학 중에 입대해 일반병으로 군 복무중이다. 서천 스님한테 법회 때에 우연히 만나서 소식을 듣고 있다가 화천에 온 김에 들여다보려고 출발 전부터 계획되었던 일이다. 군복무하는 것에 대한 위문 격려차 해인강원선배로서 서천스님과 동행했다. 포대 군종병도 면회를 신청해 함께 데리고 공양을 하면서 군생활에 대해 물어보니 “해인사 치문반 시절보다는 그래도 병영생활이 적응하기 쉽다고 한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이전에 어느 선배스님으로부터 들었던 “스님들은 해인강원을 졸업만 해도 ‘인욕忍辱보살’의 경지에 오른다”는 말씀이 새삼 떠올랐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어디서나 이렇게 수처작주隨處作主하는 것이 고달픈(?) 치문반을 무탈하게 회향廻向한 복덕福德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잠시나마 나의 치문반시절의 추억을 떠올려 보았다. 문득 해인사 강원시절의 도반들이 그립다. 가야산을 지키고 있는 노송들과 홍류동 계곡의 물소리와 가야산의 마애부처님, 그리고 도반들과 포행 하던 이름 없는 오솔길마저도 그립다.
그렇게 짧지만 즐거웠던 면회시간을 마치고 서천스님하고 난 간식거리와 음료수를 장만하여 적근산 정상에 위치한 경계근무 막사로 병사들 추석위문을 갔다. 다행이 부대장의 배려로 어림잡아 빨리 걸어도 세 시간 이상 걸리는 험하고 힘든 길을 군용짚차(일명 레토나)를 타고 가는 호사를 누렸다. 붉은 산삼 즉 적근赤根이 많이 난다 하여 적근산이라 불리게 된 이곳은 해발 1073m의 높은 산으로 휴전선 155마일 정중앙에 자리하고 있다. 험한 산길과 한 겨울 영하 30도까지 떨어지는 체감 온도, 잦은 폭설로 인해 생활하기가 녹녹지 않은 곳이다. 반갑게 맞이하는 장병들과의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다음을 기약하며 산을 내려왔다.
정상에서 선임병의 안내를 들으며 휴전선 비무장지대와 남·북방 한계선을 발아래에서 바라다보니 새삼 북한땅이 가깝다는 생각에 오싹함을 느꼈다. 적근산 정상의 경계초소 방문은 내 눈으로 직접 북녘땅을 바라보며 분단의 현실을 다시 한번 체감할 수 있었던 귀한 시간이었다.
부대막사에서 몸을 씻고 대대장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니 되레 감사하다며 이번에 가을부터는 부대가 GP경계근무에 들어가니 겨울에 다시 한번 방문해 달라는 요청에 흔쾌히 승낙을 하였다. 보현사에서의 마지막 밤은 도반스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보냈다.
다음날은 도반스님이 평화의댐을 둘러보자고 했지만 아침부터 내리는 가을을 재촉하는 비와 귀경길의 교통혼잡을 우려해 다음을 기약하며 일찍 서둘러서 화천을 떠나왔다. 떠나오는 버스안에서 서천 스님한테 “군법사로 복무하는 동안 제대하는 병사 중에 부처님께 귀의하여 군복 입은 채로 출가出家하러 해인사로 달려가는 그런 귀한 인연을 만들어 달라”고 하는 소망의 메시지를 보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 각지에서 군포교와 전법활동에 애쓰시는 군법사스님들의 건강과 소구소원 원만성취를 기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