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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판전의 건물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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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경이야기 - 성안┃팔만대장경 보존국장 2011년 10월 356호

장경판전은 4개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해인사중수기’에는 장경판전을 세조가 경상감사에게 40여 칸 규모로 다시 짓게 하려 했으나 세조와 왕비 정희황후가 세상을 떠나게 되어 이루어지지 못하고, 성종 때 이르러서 인수, 인혜의 두 왕대비의 후원으로 비로소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특히, 학조 대사가 중창한 이 불사는 해인사의 역사상 큰 획을 긋는 불사였다. 그것은 희랑 대사가 해인사를 중창한 이후 가장 규모가 큰 중창이었고 해인사 가람의 면목을 일신한 것으로서 지금의 해인사 가람 배치의 틀은 이때에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성종 19년(1488)에 세워진 판전은 30칸 규모다. 지금 판전 일곽에 앞뒤로 나란히 위치한 수다라장과 법보전은 각각 정면을 구성하는 도리칸 15칸, 측면을 구성하는 보칸 2칸 규모의 건물인데, 위의 기록은 두 건물의 도리칸 만을 합산하여 30칸이라고 지칭한 것이다. 백불암문집百弗庵文集에서는 장경판전이 전후에 있고 30칸이며 각각의 건물은 15칸으로 4개의 판가가 설치되어 있는 것으로 보았으며, 명암집明庵集의 가야산록伽倻山錄에는 장경판전이 백여 칸이라고 언급하였다. 용산집龍山集의 유가야산록遊伽倻山錄에서는 장경판전이 2개의 건물로 되어 있고 각 건물은 80여 칸이며, 금단청으로 되어 있다고 언급하였다. 또한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의 가야산기伽倻山記에서 장경판전을 보안당으로 표현하였으며, 남북으로 2개의 건물로 되어 있고 각 건물은 전면 15칸, 측면 3칸으로 총 90칸으로 보았으며 내부 중앙에는 3층 판가가 설치되어 있는 것으로 언급하였다. 기타 임하필기林下筆記에서는 장경판전이 120칸, 연제문집淵齊文集에서는 2개의 큰 건물과 각 15칸, 행정문집杏亭文集에서는 상하 건물로 120칸 등 여러 문헌에서 약간씩 다르게 언급되어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지금과 같은 수다라장과 법보전에 대한 언급은 분명하며 각 건물은 전면 15칸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지금의 해인사 장경판전이 1488년 건립되었다는 사실은 1943년 법보전 지붕의 기와를 교체할 때 홍치원년(弘治元年, 1488)이라고 양각陽刻된 암막새가 나옴으로써 더욱 확실해졌다. 장경판전 일곽은 길이가 50미터가 넘고, 깊이가 10미터가 넘는 길쭉한 마당 둘레로 배치된 네 동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판전 일곽의 앞쪽에 해당하는 대적광전 쪽에 위치한 긴 건물은 수다라장이고, 뒤에 있는 안쪽의 긴 건물은 법보전이다. 이 두 건물의 동 ․ 서쪽 양끝 사이에 있는 작은 두 동의 건물은 각각 동사간전, 서사간전인데, 이 두 건물의 건립 연대는 불확실하다. 판전의 대하여 1964년 10월 9일 보수공사 때 발견된 법보전 상량문을 통하여‘천계사년세차갑자사월天啓四年歲次甲子四月 염일대장전상량念日大藏殿上梁’ 천계 4년인 인조 2년(1624)에 중수하였으며, 장경판전의 건물 이름을 ‘대장전大藏殿’이라고 쓴 사실을 알수 있다. 그밖에 장경판전으로 들어가는 보안문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사주문이고, 1965년에 건립한 ‘장주실’이라 불린 판전 관리실은 원형회복을 위하여 2010년 7월 12일에 철거되었으며, 퇴설당과 조사당으로 출입할 수 있는 협문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