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정월
규연(가명)아, 네가 12살이 되던 새해에 지영이 이모(가명)가 엄마의 꽃신을 빌려 갔단다.
이모는 다음날 은사님 댁에 신년인사를 드리러 가는데 한복에 구두를 신는 것은 싫다면서 “언니, 혹시 고무신 같은 거 있어?”하면서 다 늦은 저녁 불쑥 찾아왔지. 사실 이모는 엄마가 비단 꽃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 엄마가 수줍은 새색시가 되어 그 꽃신을 신고 네 아빠와 함께 신행길을 걸었거든. 이모는 엄마의 결혼도, 엄마의 드레스도 부러워하지 않았지만, 비단 꽃신만은 부러워했어. 규연아, 이제 너도 알겠지만, 그 꽃신은 다정한 정이 흐르는 물건이었기 때문에 엄마 마음에도, 이모 마음에도 들었던 거야. 그날 이모는 작정을 하고 꽃신을 빌리러 온 거였어. 엄마는 이모가 얄미웠어. 지척에 살면서 이것저것을 빌려 가는데 돌아오는 일은 거의 없었고, 간혹 돌려주기도 하는데 다시 돌아온 물건을 보면 받지 못했을 때 보다 속이 더 상하곤 했단다. “참, 언니, 꽃신 있지! 지금 생각이 났네!” 네 이모 입에서 꽃신이라는 말이 나왔으니 안 빌려줄 도리가 없게 되었지. 규연이, 너도 조금은 알잖니, 이모 성격을. 더구나 엄마는 동생에게 져 주는 언니였단다. 이모에게 비단 꽃신을 내주면서 “곱게 신어야해, 모레 꼭 돌려 줘야해. 안주면 안 돼!” 신신당부를 했지.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아 “규연이가 지 결혼할 때 신는다고 했어!”라고 까지 했단다. “그래, 규연이가 10년 쯤 후에 색 바랜 신 신고 딴∼딴따따 걸으면 퍽이나 좋겠수.”하더니 제풀에 까르르 웃으면서 현관을 나서던 네 이모의 뒷꼭지가 얼마나 밉던지.
그 때는 아무도 몰랐지. 이모가 죽은 엄마를 대신해서 결혼을 하는 딸에게 아껴두었던 선물을 주게 되리라는 것을.
2011년 칠월
규연아, 12살에 엄마를 잃은 네가 결혼을 한다니 이역만리 브라질이면 어떠냐 싶었다. 좀 힘들기는 하지만 네 식구가 다 가기로 했다. 남편과 아이들은 설레는 눈치지만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이모는 네 결혼식에 갈 준비를 하는 동안 내내 시도 때도 없이 이곳저곳에서 울었다.
브라질로 떠나기 전날, 새벽이 다 되도록 혼자 짐을 싸면서 울었다. 짐 하나를 챙겨놓고, “언니가 죽은 지 몇 년이 됐다고 새장가를 가! 엉엉.” 아닌 거 뻔히 알면서도 형부가 야속했다. 짐 둘을 챙겨 놓고, “그 어린 것이 가족 떠나 무슨 이민이야! 브라질이 뭐야! 어-엉엉.” 항상 어린아이로 꿈에 나타나는 네가 사무쳤다. 짐 셋을 챙기고 또 울었다. “언니, 언-어니!” 암 선고를 받고 몇 달 만에 죽은 네 엄마가 그리웠다. 울다 지쳐 더 이상 울음도 나오지 않을 때, 짐은 다 챙겨졌고, 드디어 짐 맨 위에 결혼식 날에 입을 한복 상자를 넣었다. 그러다가 미처 고무신을 준비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한복에 구두를 신을 수는 없었다. 이모는 옷장 속 깊숙이 넣어 놓은 네 엄마의 비단 꽃신이 생각났다. 순간 네 결혼식에서 언니의 유품을 신는 것이 운명처럼 느껴졌다. ‘그래. 내가 언니대신 엄마 역할을 하라는 거야.’ 비단 꽃신을 한복 상자 위에 넣었다.
하지만 결혼식 날 너의 한복 드레스를 본 순간 그리고 한복 드레스 밑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구두코를 본 순간, 언니의 꽃신을 신어야하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알게 되었다. 왜 내가 꽃신을 돌려주려고 했는데도 돌려줄 수 없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이모는 너의 결혼식에서 심부름을 하는 역할을 맡은 사람인 것을 깨달았다. 죽은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신부 앞에 그 어머니가 신부였을 때 신었던 꽃신을 두 손에 받쳐 주는 것이 그날 이모가 해야 하는 일이었다.
“괜찮아요. 이모신이잖아요.”
“사실 네 엄마거야. 이모가 빌려 신었는데 ….”
이모는 끝까지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잘 참고 있는 네 앞에서 절대로 울어서는 안 되었다.
꽃신은 네 발에 딱 맞았다. 너는 그 꽃신을 신고 사랑을 약속하는 곳으로 걸어 들어갔다.
2011년 칠월
“엄마, 엄마, 엄마…”
얼마나 많이 “엄마”를 길어 올려야 엄마가 내 가슴 한가운데 만들어 놓은 슬픔의 우물이 마를까?
엄마 때문에 세상에 죽음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죽음보다 더 외로운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홀로 남아 있다는 것.’ 엄마가 사라진 날부터 의자를 내 옆에 가져와 앉아서는 “무슨 일이야?”라고 물어 주는 그 한사람이 없어진 거예요. 엄마가 없는 밤부터 내 꿈 이야기는 내 마음 속을 가득 채우지만 “무슨 꿈을 꿔?”라고 웃어주는 그 한사람이 사라진 거예요. 너무 외롭고 무서워서 죽고 싶었어요. 아니 엄마를 단 한번만이라도 다시 만나고 싶었어요. 그래서 나는 줄곧 밤마다 엄마가 예전에 나에게 가르쳐주려고 했고, 나누어 주려고 했고, 간직해주려고 했던 것들을 기억해 내었어요. 낮이 되면 엄마와 나의 기억은 온갖 것으로 바뀌어져 내 앞에서 나를 이끌어 가곤 했어요. 나는 그렇게 죽은 엄마를 내 마음속에 살려 놓았어요. 그래서 엄마의 어린 딸은 엄마가 꿈꿨던 여인으로 자랐어요.
엄마 때문에 내 행복은 슬픈 빛깔 이예요. 결혼식 날도 그랬어요. 울음을 참느라고 목이 너무 아팠어요. 한 남자와 함께할 기대만큼이나 내 ‘그 한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커 둘 중 어느 누구에게도 웃어줄 수도 울어줄 수도 없었어요. 아마 엄마가 나에게 꽃신을 보내주지 않았다면 내 결혼식은 브라질의 장례식 같았겠죠. 엄마가 반전을 가져왔어요. 내가 소원했던 것이 내가 주인공이 되어서 축하받는 날 이루어 진거예요. 엄마를 한번만 만나는 거요! 그래요, 현명한 엄마 딸이 엄마의 영혼을 보기를 원했겠어요? 아니면 엄마가 환생이라도 하기를 원했겠어요? 이모가 성스러운 의식을 치르듯이 꽃신을 두 손에 공손히 받쳐 저에게 주었을 때, 내가 그동안 소원했던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는 것을 알았어요. 엄마가 나를 버리지 않았다는 사소한 증거라도 원했던 거예요. 내가 혼자 남아 있지 않다는 작은 믿음이 중요했던 거지요. 그런데 엄마의 꽃신은 제가 얼마나 작은 소원에 목말라 했는지를 알게 해주었어요. 엄마가 아꼈던 꽃신을 신는 순간 이 세상에서 어머니였던 사람들은 죽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어요. 내 가슴 속 슬픔의 우물에 황금 물고기가 헤엄치고 있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 이상하게 여겨졌어요.
엄마의 꽃신은 거실 소파에 앉으면 저절로 눈에 들어오는 곳에 놓여 있어요. 엄마와 내 기억이 소녀를 여자로 키웠듯이, 엄마의 꽃신은 이제 나를 ‘죽지 않는 어머니’로 키워낼 거예요.
2999년 정월
규연아, 너를 혼자 두고 떠나려는 그 때, 너의 눈물 한 방울이 깊은 강물이 되어 내 심장을 흘렀어. 그러자 내 안에 무엇인가가 빌었단다. ‘천년 후, 우리를 다시 만나게 해 주세요. 제가 아이의 딸이 되고, 아이는 제 어미가 되게 해 주세요. 제가 아이에게 주려고 했던 사랑을 아이에게서 받게 해주세요. 아이가 제게서 받으려했던 사랑을 저에게 주게 해 주세요. 회한 없는 사랑을 하게 해 주세요. 아이가 어미가 되어 어미를 잃는 슬픔을 저에게서 겪게 하지 마세요. 제가 아이의 딸이 되어 지금 이 아이의 슬픔을 갖겠습니다.’
규연아, 엄마는 살아서는 성이 되어 너의 생명을 키우고 싶었고, 방패가 되어 너의 생명을 지키고 싶었어. 네가 아니었다면 엄마는 죽어서 무엇이 되었을까? 엄마는 살아있는 자들이 볼 수 없는 밤하늘의 가장 바깥에서 외로운 딸이 잠든 새벽의 들판을 천년동안 지킬 거야.
엄마는 밤하늘의 너의 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