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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 한국학자 베르너 사세와 명상무용가 홍신자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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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 템플 - 최현태 2011년 10월 356호

백발의 소년이 황혼의 여인과 손잡고 가야산에 안겼다. 40여년만이다. 해인사 산문 앞 비석거리도 정답고 가야산에 가득한 저 나무들이 정겹다. 60년대 한국전쟁이 끝나고 전국이 민둥산일 때 산사를 품은 곳만이 유일한 숲이었다. 당시의 가야산 숲을 다시 만난 사세는 해인사에서의 하룻밤이 기대되는 모양이다. 사랑이 떠났다고, 노년에 이르렀다고 한숨 쉬던 황혼들에게 사랑의 물길을 열어준 독일인 한국학자 베르너 사세와 무용가 홍신자가 해인사를 찾아왔다. 기왓골을 타고 내라는 낙숫물 소리는 추임새 되어 이야기자리는 흥건하고 해인지편집실 그 넓지 않은 방에 사랑이 가득하다.
생각 사思, 세상 世-사세
사세는 1966년 20대중반에 장인이 기술고문으로 있는 나주 호남비료공장의 기술고등학교 강사로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운명의 장난이지요.’라고 웃는 사세의 한국인과 한국문화에 대한 사랑은 특별하다. 호기심에서 시작한 한국공부가 한국학으로 이어졌다
“어렸을 적부터 미술공부 하고 싶었어요. 다음으로 고고학을 하고 싶었지만 아버지가 반대해서 수출입회사의 샐러리맨으로 일했죠. 너무 재미없었는데 그때 장인이 한국으로 오라는 요청이 있었고 ‘That chance!’하면서 비행기를 탔죠. 4년쯤 나주에서 기술교육 하다가 서울로 올라와 성균관대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면서 논어를 배웠는데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선생님 시키는 대로 논어를 달달 외웠지요. 아이들 학교문제로 독일로 돌아갔지만 논어는 제 공부의 시작이었죠.”
독일 보쿰대학에서 한국학을 공부해<계림유사에 나타난 고려어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향가해석방법론>으로 정교수시험에 합격했다.
“당시 독일에는 한국학과가 없었어요. 보쿰대학 일본학과에서 한글, 한문, 일본어를 동시에 공부했는데 결국 보쿰대학과 함부트크대학에 한국학과를 개설하고 그곳에서 한국학과교수를 지냈지요.”
2006년 함부르크대학을 정년퇴임한 사세는 고향을 찾듯이 한국으로 와서 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 석좌교수를 역임한 그이는 고향이 어디냐 물으면 서슴없이 전라도라 대답한다.
“저는 독일에서 태어났지만 어쩌면 전생의 한국인이 독일로 유배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고향에 돌아왔으니 고향땅에 묻힐 겁니다.”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한<월인천강지곡>을 독일어로 번역한 한국학자인 그이는 세종대왕을 ‘한국의 르네상스인’이라 말하는데 주저하지 않으며 인문학적 지식과 사대부가 갖춰야 할 교양을 지닌 독일인 선비다. 사세는 학자로 사는 동안 젊어서 하지 못했던 그림을 놓지 않았다. 유화로 시작했지만 한국에 살면서 한지의 느낌과 묵향이 좋아 수묵화를 그린다.
“저의 그림은 산수이면서 추상화입니다. 첫 획을 그을 때 무엇을 그려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선을 따라 갑니다. 다음에 그림과 대화를 하면서 선의 방향, 힘, 균형을 이뤄가지요.”
그이의 그림은 선문답이자 수행이라고 할 수 있다. 전시회장에서 만난 사세는 작품을 하나하나 일러주면서 그림에 나타난 산이나 해는 산이기도, 해이기도 하지만 그 또한 아니기도 하다는 알듯 말듯 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그이의 낙관 사세(思世)처럼 그림 속에는 그이가 생각하는 세상, 한국이 담겨있다. 그리고 한국학자라고는 했지만 그를 만나러 가면서 염려했던 사세와의 인터뷰는 당연히 한국어였다.
자유로운 그녀, 꽃 시절인 그들
무용가 홍신자를 수식하는 말은 한두 가지로 부족하다. 그래서 나는 그녀가 쓴 책들의 제목을 나열해보려 한다. <나는 춤추듯 순간을 살았다><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나도 너에게 자유를 주고 싶다><자유를 위한 변명>이 그것이다. 책제목만으로도 우리는 자유로운 그녀의 삶을 짐작할 수 있다. 라즈니쉬의 첫 한국인 제자이며 세계적인 무용가, 명상가로 알려진 홍신자는 스물일곱 늦은 나이에 무용을 시작해 40여년 춤을 추고 있다. 한과 허무를 모두 춤으로 토해낸 그녀는 구도와 명상의 무용으로 치유와 자유를 호흡한다. 해인사에서 펼쳐지는 해인아트프로젝터에도 관심을 보이는 그녀.
“독일에 있는 한국문화원에서 공연할 불교퍼포먼스를 해인사에서 한 번 선 보여도 좋을 것 같아요. ‘Dark & Light...어둠에서 빛으로‘라는 불교적 퍼포먼스인데요. 부처님의 가르침인 8정도를 통해 깨달음으로 가는 길을 표현합니다. 8장의 한지를 펼쳐놓고 붓으로 하는 사세의 작업과 함께 이루어지는 거지요.”
해인사 대적광전이 바라다 보이는 탑마당에서의 홍신자춤사위와 사세의 그림 작업을 상상해본다. 깨달음과 열반으로 이끄는 올바른 여덟 가지 길. 정견(正見), 정사유(正思惟),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느슨해질 것 같은 일상에 신선한 충격이리라. 올해 나이 70의 홍신자와 69세의 사세, 이 두 사람은 결혼식도 한 편의 퍼포먼스였다. ‘홍신자 시집가는 날’이라는 글귀를 넣은 청첩장과 마치 공연 같은 환상적안 결혼식을 올리고 이제 결혼 1년차인 홍신자에게 물었다. 행복하시냐고? 부부싸움도 하시느냐고?
“행복은 나날이라기보다 순간순간 행복하지요. 부부싸움요? 의견 차이가 있으면 대화로 풀어가는 정도죠. 마디를 풀듯이 말이죠. 그리고 서로 원하는 것이 없으면 싸울 일이 없어요. 술 좋아하고 커피 좋아하는 이사람 옆에서 나는 차를 마시면 되니까요.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 문제없어요.”
그녀의 산뜻한 대답 끝에 사세가 한마디 거든다.
“싸우면 땀나서 싫어요.”
호오! 유쾌하다. 둘 다 재혼에 황혼의 사랑으로 짧게 산다 해도 소중한 의미가 될 그들은 여전히 손을 잡고 있다. 꽃 시절이 따로 없다. 하늘 맑은 10월, 홍신자는 제주에서 ‘몸짓’과 ‘명상’을 접목시킨 홍신자국제춤명상축제를 펼친다. 미국에서 돌아온 그녀가 둥지를 틀었던 안성에서 16년간 진행하던 죽산예술제를 제주로 옮겨 살면서 새롭게 시도하는 한마당이다. 명상은 비움이고 춤은 가장 빠른 수단이라고 이야기하는 그이는 이번 축제에 명상지도자인 수드히와 힐링댄서인 아리시카, 나라굿으로 유명한 무형문화재 김금화를 초대했다. 그들이 펼치는 축제한마당은 또 어떨까?
나이 드는 것은 낡아지는 것이 아니라 정화되어 가는 것
사세와 홍신자는 신접살림을 제주 시내를 벗어난 바닷가 마을에 차렸다
“바닷가에 살고 싶었어요. 도시는 사람스트레스를 받는데 제주 바닷가는 공기가 좋아서 다 공원 같고 신성한 분위기에요. 물질세계를 피해서 온 거죠. 바닷가에 살면서 숲으로 옮겨 갈 궁리도 해보구요. 제주에 오면 한 번 들리세요.”
나이 들어 사랑을 하고 함께 산다는 것이 구속이라고도 생각하는 이들에게 파격을 보여준 두 사람, 그들에게서 뜨거움보다는 따뜻함이 느껴진다. 노년의 사랑이 이런 걸까?
“젊어서 한바탕 살았잖아. 이제는 그래 좋다, 서로서로 웬만하면 상대방을 받아들이고, 서로 배려하는 마음이 커지고, 그러잖아요. 서로가 노는 게 닮았어요. 어디 가자 하면 그래 좋다 가자. 여기 해인사도 사세가 가고 싶대서 그냥 따라 온 겁니다.”
나이 든다는 것은 낡아 빠지는 것이 아니라 정화되어 간다는 말을 실감한다.
산사에서의 하룻밤을 좋아라하고 함께 온 지인들이 마주하며 웃는데 사세는 저녁예불 알리는 북소리 꼭 들어야한다며 일행을 재촉한다. 어스름 무렵 도량의 북소리는 가야산을 울리고 사세의 가슴을 벅차오르게 하고 또 다른 이의 마음을 순정하게 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