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율⋅론(經⋅律⋅論) 삼장三藏의 불법佛法을 새겨 담은 팔만대장경이 첫 번째로 조성造成된 1011년으로부터 다시 1000년을 맞이하였다는 것을 기념하는 거국적擧國的인 축제로서의 \'대장경 천년 세계문화축전\'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한 준비로 총림의 대중들은 안거철의 용맹정진에 못지않은 분주하고 설레는 몸과 마음으로 모두들 다른 것을 뒤돌아볼 여념餘念이 없는 것을 느끼면서, 한 마음 한 뜻으로 정성과 의지를 기울인다는 갸륵한 의미를 새겨 본다.
살아 숨 쉬는 지혜의 산실産室이자 보고寶庫인 팔만대장경의 천 년의 해를 맞이하면서 팔만대장경을 조성하던 뜻과 정성을 이어받아 지혜의 장場을 펼치고자 하는 \'대장경 천년 세계문화축전\'으로 사회와 국가적인 불안과 국민의 안위가 보장되지 못하고 있는 현시대의 상황에서 국가의 안녕과 국민의 복덕을 위한 호국불교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팔만대장경의 조성에 담긴 정신을 계승하고 실천하는 사부대중四部大衆과 불자佛子들이야말로 불자로서의 역할과 소명에 대해서 지침이 되고 표상表象이 된다고 할 수 있으며, 이러한 \'대장경 천년 세계문화축전\'에 동참함으로써 우리 모두의 위상位相과 정체正體를 대내적으로 확인하고 또한 대외적으로 공표하는 법석法席과 도량道場이 되리라는 것을 확신確信한다.
경전經典과 율장律藏과 논서論書로 이루어진 팔만대장경을 만나기 위해서는 직접 독송讀誦하거나 혹은 연구하거나 혹은 선지식善知識의 설명을 듣는 등의 다양한 경로를 통하게 된다. 그 가운데에 신심信心이 돈독敦篤한 불자들은 큰스님의 법문과 설명을 통해서 팔만대장경의 내용을 효과적으로 체득體得하게 되는데, 경전과 불법을 학문적인 연구와 이해의 대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법문을 통해서 깊은 사유思惟의 자리를 갖게 되고, 그러한 사유가 바탕이 되어서 심사숙고의 생각과 확고한 이해를 도모하게 되고, 사유와 이해가 이루어진 다음에는 자기 스스로 실천과 수행으로 팔만대장경의 이치와 도리를 체험하고 증명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문(聞, 법문을 듣는 단계)과 사(思, 들은 내용을 다시 생각하여 이해하는 단계)와 수(修, 이해한 내용을 직접 실행하는 단계)의 삼혜三慧 이다. 듣는 슬기로움, 생각하는 슬기로움, 실행하여 닦는 슬기로움, 그러므로 듣고 생각하는 문과 사는 실행하여 닦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과정이며, 무엇을 어떻게 닦아야 할 것인가에 문과 사의 초점이 맞추어지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학문을 연구하는 입장에서 팔만대장경에 접근하는 자세와 서로 구별되는 것이다. 학문의 경계에서가 아니라 실행과 수행을 위한 문과 사를 통해서 혜慧의 완성인 지智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반복해서 듣게 되면, 보다 깊은 사유와 이해를 도모하게 되고, 나아가서 진실되고 진정한 보살행을 통해서 깨달음의 지혜(불지 佛智)에 이르게 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문聞과 사思를 통해서 수修, 닦을 때에 진정한 지혜가 완성된다. 닦지 않는 문과 사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저 학문에 지나지 않는다. 학문으로 경전과 불법을 연구하는 입장에서는 수행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것은 지식知識일 뿐이지 지혜智慧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지식이 아닌 지혜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문과 사를 통한 수가 필수적인 조건이다.
지智와 혜慧를 구분하여 설명하자면 지여일혜여월智如日慧如月, 지는 태양과 같고 혜는 달과 같은 것이다. 지는 불지로 부처님의 경지에서 증득하는 지혜이며, 혜는 도리를 바르게 변별辨別하는 작용을 의미한다. 부처님의 지혜를 말할 때에는 불지이며, 중생의 측면에서 지혜를 설명할 때에 삼혜라고 하는 것이 이런 뜻에서이다. 지에 도달하기 위한 혜이며, 지는 혜의 완성이며, 혜는 지를 증득하기까지의 과정인 것이다. 불지를 증득하기 위한 수행적인 측면에서는 혜가 중요하다. 혜가 선행되어야만 지가 비로소 가능하기 때문이다.
『화엄경華嚴經』「야마궁중게찬품夜摩宮中偈讚品」에서 혜림보살慧林菩薩은 부처님을 만나기 어려움을 말하고, 부처님을 견문見聞하는 공덕, 부처님을 친견하고 부처님의 법문을 듣는 공덕이 무량하다는 것을 찬탄하는데, 삼혜 가운데에 문혜가 첫 번째 단계가 되는 혜이며, 이러한 혜가 숲처럼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혜림보살이 출현出現하게 된 것이다.
또한 공덕림보살이 선사유삼매善思惟三昧에 들어가서 열 가지 수행을 실천하겠노라는 의지와 각오를 선언하는 것으로 삼혜를 순차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무수한 삼매 가운데에 선사유삼매에 들어갔다는 것은 부처님을 친견하고 부처님의 법문을 들음으로써 문혜가 이루어지고, 문혜를 바탕으로 원만한 수행의 구족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사혜의 사유가 필수적인데, 보살의 사유야말로 사유 가운데서 최상最上과 최승最勝으로 훌륭한 선사유가 될 것이며, 수승殊勝한 선사유를 통해서 원만한 보살행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수혜란 곧 보살의 수행으로, 은의恩義, 은혜와 의미를 모르고 서로 함부로 해치고 원망하고 한탄하며 사견邪見이 증대하고 왕성해져 정도正道를 모르고 번뇌가 가득 차 어리석음과 어두움에 덮여 있는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서 보살행을 닦는 것이다. 진흙탕을 외면한다면 연꽃이 피어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중생을 외면한다면 진정한 보살이 아니다. 화사하게 피어난 연꽃의 입장에서는 더러운 진흙탕이 뿌리를 깊이 내릴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인 것과 같이 중생의 입장에서는 고통과 괴로움이 가득찬 사바세계가 보살의 안목으로 보자면 보살행을 실천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무한한 가능성의(수행을 통해서 불도를 완성할 수 있는, 혜에서 지를 증득하는) 정토인 것이다.
\'대장경 천년 세계문화축전\'에 참여하는 모든 인류가 종교와 국적과 인종과 남녀와 노소의 구분 없이 누구라도, 문사수의 삼혜를 한 자리에서 한꺼번에 닦아 지를 완성하는 지혜의 장을 향해서 산문山門을 활짝 열어젖힌 총림叢林에 감개가 무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