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탈밭 강냉이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담밑 봉숭아도 기름을 발라놓은 것처럼 잎사귀가 반들거렸다. 승숙이는 다래끼를 메고 산으로 다니며 약초를 캤다. 잔대뿌리는 독을 뽑아내고 마음을 가라앉게 한다고 했다.
외숙모는 오래도록 병을 앓아오면서 집안 식구들에게 미안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농사꾼에게 토지가 없으면 얼마나 살아가기 힘든지를 알면서도, 그 땅을 팔아가며 약을 먹어도 조금도 낫지 않았다. 이젠 못골 논 서 마지기만 남기고 돈이 될 수 있는 건 다 팔고 없었다.
“그 병은 부자병이어서 집안을 말짱 말려놓고는 죽는 병이야”
동네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말했다. 그게 맞는 말인지 모른다. 어쩌면 나머지 논마지기까지 다 팔아 쓰고는 죽을 것만 같았다.
“여보, 날 그만 버려둬요. 이젠 살아날 것 같지 않으니 못골 논만은 팔지 말아요.”
외숙모가 외숙부에게 애걸하다시피 해서 네 식구의 생명줄이 되는 논만은 팔지 않고 있었다.
‘승숙이도 가을엔 시집 보내야지요. 잘못하면 처녀로 늙게 하겠어요.”
그러나 열아홉 살의 승숙이는 오빠가 돌아와 장가가야만 저도 시집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러는 오빠 승호는 그림자조차 나타나지 않고, 뜬소문 한 마디도 듣지 못했다. 어디서 죽어 버렸는지 참으로 답답하고 애간장이 마르는 일이었다.
모과나무골의 전쟁은 이이들의 소꼽놀이처럼 싱거웠다. 산너머에서 전에보다 좀더 큰소리로 대포소리, 총소리가 났지만 그렇게 마음쓰이는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틀 후, 갑자기 붉은 깃발을 앞세운 해방군들이 마을에 나타난 것이다. 귀에 익지 않는 군가소리와 낯설은 군복에 당황했지만 이내 사람들은 마음을 놓았다. 인민해방군들은 하나같이 친절하고 착했기 때문이다.
짐짓 그렇게 보이기 위해 그러는지는 몰라도 어쨌든 판순이는 제 세상을 만난 듯했다. 장터 국민학교가 인민학교로 바뀌고 모든 게 다 인민의 것이 되었다. 해방군들은 노래를 좋아하고 모이기만 하면 수많은 노래를 배우고 불렀다. 점득이와 판순이는 그들이 부르는 노래를 금방 따라 부르며 손뼉을 쳤다. 그러나 점례는 왠지 가슴이 두근거리고 무서웠다. 어른들이나 아이들이나 모이는 곳마다 붉은 깃발 옆에 나란히 붙어 있는 소련 깃발과 그 소련 나라의 높은 사람의 사진이 싫었다.
점례는 점득이를 데리고 아무도 없는 개울가로 갔다.
“점득아, 너 자꾸 해방군 따라다니며 노래부르지 말어!”
점례는 목소리가 떨려나왔다.
“왜 따라다니면 안 되니?”
“해방군은 소련 나라 편이야!”
“아니야, 해방군은 인민들 편이다.”
“바보야, 일부러 그러는 거야. 너도 만주서 올 때 소련 군인 봤지?”
“그래.”
“그 소련 군인하고 해방군하고 똑같은 옷을 입었잖니? 소련군도 조선 해방군이라 했어.”
“하지만, 승호 형도 인민을 해방시키러 간다고 했는 걸.”
“승호 오빠도 어쩌면 속았는지도 모른다.”
“아니야, 승호 형은 절대 소련 군사 편이 아니라고 했어.”
“그러니까 속았다는 거야. 너도 소련 나라 국기하고 소련나라 대장님 사진을 보고도 모르니? 소련 나라 편이기 때문에 그렇게 나란히 붙여놓은 거야.”
점례는 점득이 어깨를 꽉 불잡고 흔들며 말했다. 점득이는 그 말에 갑자기 기가 죽은 듯했다. 그러나 이내 점득이는 점례 누나의 손을 뿌리쳤다.
“나, 인민군 아저씨한테 약속했어. 나도 이 담에 인민군대가 된다고…”
“그건 니가 아직 어려서 몰라서 그랬으니까 괜찮어. 이젠 어디 가지 말고 집에서 엄마 일을 거들자꾸나.”
하지만 바깥은 자꾸 뭔지 움직이고 들뜨게 했고 사람들은 바쁘게 오고갔다.
7월 두 번째 일요일이었다. 인민군들은 일요일도 쉬지 않고 조국 해방전선에 보낼 식량과 물자를 위해 부지런히 일을 했다. 그러나 장터 마을 예배당 목사님은 어김없이 교회문을 열고 종을 울렸다. 조그만 예배당엔 인민군들이 들어 오고부터 사람들이 많이 줄었다. 인민군들은 교회는 인민의 적이라 했고 정신을 흐리게 하는 아편 같은 것이라 했다.
인민군 대장이 목사님을 찾아와서 인민해방을 위해 함께 일하자고 했다. 그러나 목사님은 교회를 반대하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공산당과는 함께 일할 수 없다고, 절대 따르지 않았다. 목사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해 끝까지 남아서 지키겠다고 했다. 그래서 일요일 날이면 종을 올리고 예배를 드렸다.
하얀 두루마기를 입고 강단에 서신 목사님은 당당하고 깨끗했다. 탄실이는 그런 목사님을 존경했고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예배드리는 시간을 빠뜨리지 않았다.
예배당 뜰에는 낙엽송이 가지를 뻗고 촘촘한 잎사귀를 푸르게 달고 늠름하게 서 있었다. 보리매미가 울고 나팔꽃이 피어 있었다. 사도신경을 외고 찬송기를 불렀다. 그리고 목사님은 길게 기도를 했다. 스무 명쯤 되는 교인들은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꿇어 앉았다.
그런데, 목사님이 출애굽기의 성경을 몇 줄 읽어나갈 때였다. 예배당 문이 열리면서 인민군 여남은 명과 장터 마을사람 몇이 성큼성큼 들어섰다. 목사님은 읽던 성경을 잠깐 그치고 패를 들어 그들을 보았다. 그러나, 다시 침착하게 다음 성경을 읽어나갔다.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셨으므로 그들을 보내기를 즐겨 아니하고…”
“목사님 !”
인민군 하나가 커다란 목소리로, 그러나 예의를 갖추어 불렀다.
“…”
목사님은 말없이 자기를 부른 인민군을 바라보았다. 몇번 보았기 때문에 낯익은 인민군이었다. 앉아 있던 교인들은 목사님과 뒤에 서 있는 인민군을 번갈아 쳐다보며 가슴을 조였다.
“목사님, 방금 전선에서 물자 보급에 어려움이 있다고 연락이 왔읍니다. 교인들을 동원시켜 주십시오.”
그 인민군이 또박또박 분명하게 말했다.
“지금 우리는 예배를 드리는 중입니다. 응할수 없읍니다.
목사님이 설교할 때처럼 차분하게 대답했다.
“안 되면 강제로 데리고 가겠읍니다.”
“그럴 수는 없읍니다. 하나님이 벌을 내리실 것입니다.”
“하나님도 인민을 위한 일에는 나쁘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건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말입니다. 예배야말로 인간을 해방시키는 가장 큰 방법입니다.”
“그게 바로 인민을 속이는 독약입니다.”
인민군은 말하면서 목사님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다른 인민군을 향해 소리쳤다.
“시간이 없소. 어서 데리고 갑시다.”
“안 되오!”
목사님이 강대상을 주먹으로 “쾅!” 하고 내리쳤다.
군인들은 몰려들어 아홉 사람의 남자 교인들을 사납게 끌고 나갔다.
“그만두시오!”
목사님이 강단에서 뛰어내려와 명령을 하는 인민군의 앞을 막고 버티어 섰다.
“막지 마십시오. 인민을 위해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됩니다.”
인민군이 대들 듯 차갑게 말했다.
“사람을 전쟁터에 몰아넣는 짓이 어찌 인민을 위하는 짓이오?”
여자 교인들 몇이 “주여!”를 외치며 울음을 터뜨렸다.
인민군은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목사님에게 말했다.
“집안에 강도가 와서 물건을 훔치고 사람을 죽이는데 어떻게 맞서 싸우지 않겠읍니까”
“우리 조선엔 이젠 강도는 없소. 강도가 있다면 이렇게 무례한 짓을 하는 당신네들이 바로 강도인 거요.”
목사님은 발을 한번 마룻바닥에 쿵 하고 굴렸다.
“강도가 없다니오! 조선에서는 수천 년 동안 강도가 설치며 인민을 괴롭혔읍니다. 외국의 침략이 끊이지 않았고 나라 안에서는 탐관오리들이 가난한 인민들의 피를 짜서 저들의 배를 살찌우는, 그야말로 이름 그대로 강도의 나라였읍니다. 일제 36년 동안 나라를 잃은 인민들은 왜놈들에게 빼앗기고 왜놈의 압잡이에게 빼앗기고 고향을 떠나 타국으로 흩어져 살지 않았읍니까. 배가 고파 굶주리다 못해 어린 자식을 노비로 팔고 기생으로 팔고, 그렇게 죄없는 어린 것들이 부모형제와 헤어져 고통을 겪었읍니다. 그런데 지금 일본이 쫓겨나자 미국이 삼팔선을 긋고 남쪽 땅을 강제로 손아귀에 잡고 물러나지 않았읍니다. 일제의 앞잡이는 다시 미제의 앞잡이가 되어 인민은 뼈를 깎는 고통을 겪고 있는데, 어째서 조선에 강도가 없다고 하십니까. 우리는 모든 강도가 물러날 때까지 싸울 것입니다…”
탄실이가 교회 마룻바닥에 엎드려 울다가울다가 가까스로 정신을 차려 고개를 들었을 때는 인민군도 없었고 나머지 교인들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목사님만이 구석쪽 강단 밑에 무거운 목소리로 기도하며 꿇어앉아 있었다.
탄실이는 조용해진 교회 안을 둘러보고 나서 다시 눈을 감았다.
‘…배가 고파 굶주리다 못해 어린 자식을 노비로 팔고 기생으로 팔고, 그렇게 죄없는 어린 것들이 부모형제와 헤어져서 고통을 겪었읍니다…’
그렇게 말하던 인민군의 목소리가 귀에서 쟁쟁하게 되살아나고 있었다.
눈물이 또다시 볼을 적셨다.
“아버지!”
탄실이는 엎드려서 그렇게 불렀다. 하나님 아버지가 아닌, 병들어 죽은 아버지를 부른 것이다.
“예수님! 예수님…!”
탄실은 왠지 걷잡을 수 없이 마음이 혼들리고 생각이 엇갈렸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이야기에서 강도 만난 사람을 구해 준 것은, 제사장도 거룩한 레위인도 아니었다. 가장 천대받고 업수이여기던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우리는 모든 강도가 물러날 때까지 싸울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그 인민군의 말이 예수님의 말과 너무도 닮아 있었다. 탄실은 한없이한없이 눈물이 나왔다.
“…아버지…예수님…”
그리고는 아버지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기생이 되었던 자기의 모습을 남의 일처럼 그려보고는 흐느껴 울었다. 또다시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누가 탄실이 어깨를 흔들었다. 눈을 떠보니 목사님이 곁에 서 있었다.
“탄실이, 이제 말세가 되었구려. 이런 때일수록 마음을 굳게 먹고 흔들림없이 침착해야 합니다. 그만 울고 돌아가서 쉬십시오.”
탄실은 눈물을 닦고 일어섰다.
목사님의 말을 듣고 따르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탄실은 목사님의 말씀에 길들여져 있었기 때문에 건성으로 일어서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일어나서 또 건성으로 인사를 하고 교회를 나왔다.
아직 여름 햇볕은 따갑게 최고 뜨거운 열기가 들판을 태우고 있었다. 탄실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그냥 성경책을 가슴에 껴안고 들판쪽으로 향해 걸음을 옮겼다.
건너편 신작로엔 소달구지와 함께 짐을 진 사람들이 줄을 지어 걸어가고 있었다. 해방군이 싸우는 전선에 물자를 공급해 주려고 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스스로 앞장서서 도와주는 이도 있었지만 억지로 끌려나온 사람도 많았다. 아직은 어떻게 될지, 이 길이 정말 인민을 해방시키는 바른 길인지, 잘못 된 길인지 가늠하지 못했다.
“여러분들, 해방은 제 스스로가 해야 합니다. 자유는 누가갖다 주는 것도, 대신 얻어 주는 것도 아닙니다. 인민들 스스로가 떨쳐 일어나 투쟁의 대열에 앞장서야 합니다. 조국 해방전선에 다 함께 몸바쳐 싸웁시다.”
탄실은 인민학습회에 나가서 듣고 보았던 일이 모두 옳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스스로 나서게 하는 것이 아니라 억지로 부추기는 경우가 더 많았다.
탄실은 길게길게 줄지어 걸어가는 소달구지와 짐을 지고 가는 사람들을 하염없이 보다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타박타박 타박네야
너 어드메 울고 가니
우리 엄마 산소등에
젖먹으러 냐는 가지
탄실은 걸으면서 가슴이 미어지도록 외로움을 느꼈다.